[밀물썰물] 동네 목욕탕의 추억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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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의 전설 조훈현과 제자 이창호의 숙명적 대결을 다룬 영화 ‘승부’. 15세 제자가 스승의 왕좌를 빼앗자 사제간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반전은 당시 ‘국룰’이던 ‘주말이면 목욕탕’에서 찾아온다. 사이좋게 등을 밀어 주는 동안 어색함은 비누 거품처럼 녹아내린다. 부산 금정구 부곡동에서 영업 중인 목욕탕에서 촬영된 이 장면은 부산의 골목 어디서나 흔했던 한 시대의 풍경을 소환하고 있다. 예전에는 낯선 입욕객끼리도 등밀이 품앗이가 흔했는데, 이처럼 등을 맡기는 행위는 개방성과 유대감의 발로다.

부산에서 탄생한 ‘등밀이 기계’와 함께 타지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거대한 원통형 굴뚝이다. 급탕 연료였던 석탄과 뒤를 이은 벙커C유는 검댕을 내뿜어 도시 미관과 생활 환경을 해쳤다. 그래서 굴뚝 설치가 의무화됐는데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적벽돌로 나지막한 사각 연통을 쌓은 반면, 부산 등 남해안에서는 원통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부어 만드는 고층 구조물로 발전했다. 이유는 산복(山腹) 지형에 주택가가 형성된 데 있다. 배연 설비가 웬만큼 높지 않으면 매캐한 매연과 분진이 고지대를 휘감기 일쑤였다. 2009년 부산시 조사에 따르면 6m가 넘는 굴뚝이 604개, 이중 50m가 넘는 초고층이 7개나 있었던 이유다.

고층 건물이 드문 시절 주택가에 띄엄띄엄 솟아오른 거대한 굴뚝은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 왔다. 붉은색 목욕탕 마크와 알록달록한 나선에 ‘해수탕’ ‘라돈탕’ 문구가 도드라진 것은 부산의 독특한 경관이었다. 1990년대 전기와 LNG 가스가 보급되자 굴뚝 역할은 사라졌다. 게다가 아파트 생활로 목욕 습관이 바뀌고,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대중목욕탕과 찜질방은 존폐 기로에 섰다. 지난해 조사에서 부산의 442개 굴뚝 중 228개는 폐쇄된 상태다. 철거비 부담 때문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4일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최근 경남 김해의 폐업 목욕탕이 카페나 고깃집, 맥줏집으로 변신해 MZ 세대의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대중목욕탕이 생소한 세대라면 대욕탕에 앉아 취식하는 것 자체가 이색 경험일 테다. 연전에 부산에서도 복고풍 감성을 자극하는 목욕탕 개조 주점이 등장해 젊은 세대가 몰렸다. 붕괴 위험이나 흉물로 방치되지 않고, 도시재생 사례로 활용되고 지역의 문화로 재해석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쓰임새가 사라졌다고 해서 추억까지 사라져야 하는 건 아니다. 생활 문화유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거기엔 한 시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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