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상 초유의 한인 근로자 구금, 한미 외교 시험대
미국 투자 기업에 불법 체류 단속 날벼락
석방 교섭 다행이나 재발 방지책 필요
6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연합뉴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한국인 300여 명을 체포해 충격을 주고 있다. 그 장소가 미국의 요구로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합작 배터리 공장 현장이었고, 시기적으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5000억 달러(약 700조 원) 투자가 발표된 뒤여서 뒤통수를 맞은 듯한 허탈함을 느끼는 국민이 많다. 또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양손이 묶인 채 연행됐고, 이들이 끌려 간 포크스턴 구금 시설은 위생 환경이 열악해서 과거 정부 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모욕감까지 확산되고 있다. 다행히 정부 협상으로 석방 교섭이 이뤄졌지만 이 사태의 원인 파악과 재발 방지책은 과제로 남았다.
이번 단속은 장기간 기획됐고, ICE뿐 아니라 국토안보수사국, 마약단속국, 조지아주 순찰대까지 참여했다는 점에서 우발적으로 보기 어렵다. 군용 차량과 헬리콥터까지 동원됐고, 체포자 수가 역대 최대 규모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불법 체류자 단속을 넘어 외교적·경제적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미 언론들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 내 사업 운영의 정치적 현실을 우려하게 되면서 관세 후속 협상은 물론 대미 투자 향방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단속을 강행하고 있으나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에 대한 이례적인 대규모 단속의 배경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동맹국이자 최대 투자국 중 하나인 한국의 기업과 근로자를 다루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례함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혹여 그간 관행이나 편법 의존이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닌지는 짚어 봐야 한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현지에서 숙련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 단기 방문 비자나 ESTA(전자여행허가)만 가진 한국인 직원을 투입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 체포된 직원 다수가 단기 비자나 ESTA 소지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노동법과 이민법을 어긴 것이라면 곤란하다. 투자를 명분 삼아 법을 무시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투자 전에 미국 정부와 협상해 취업 허가 비자를 확보하지 못했던 대목이 뼈아프다.
우리 정부의 신속한 협상으로 구금된 한국인 직원들은 행정적 절차를 거치면 석방돼 전세기편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석방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선 미국 측에는 동맹국 국민을 강력 범죄자처럼 다루며 예고 없이 체포·구금한 데 대해 항의하고, 해명과 재발 방지책을 요구해야 한다. 외교 경로를 총동원해 한미 경제 협력의 기반이 신뢰 위에 세워져야 함을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기업이 현지 비자·노동 규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준수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사전 비자 협상 등을 지원해야 한다. 국민적 자부심을 지키면서 한미 경제 협력이 원활히 지속될 수 있는 묘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