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세계적인 항구도시 부산에 '이것'이 없다
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한일 의원연맹 자문위원
다양하고 역동적인 장면 보유한 부산항
바다의 시선으로 바다 활용 노력 필요
AI도 아는 가치 정작 시민들도 잘 몰라
부산항 통해 경제 성장 활로 적극 찾길
요코하마는 일본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다. 특히 요코하마항은 아름다운 항구로 오래전부터 각인돼 있다. 항구 풍경을 조망할 방법은 많지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 요코하마 유람선 여행이라고 한다. ‘시바스’라는 수상버스를 타면 요코하마 베이 브리지와 밤에 더욱 아름다운 붉은 벽돌의 아카렌가 창고, 숲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육지에서 발품을 팔면서 쫓아다니는 여행과는 품격이 다른 재미와 감상을 느낄 수 있으니 요코하마를 찾는 관광객에게는 필수 코스처럼 알려져 있다.
요코하마항뿐 아니다. 세계적인 미항에는 그 도시 풍경을 가장 미학적으로 보여주는 여행 수단으로 유람선과 여객선이 꼭 있다. 바다의 시선이 없는 항구는 세계적인 미항이 될 수 없다는 역설이 그래서 가능하다. 그렇게 바다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으로 여행자들은 도시를 오롯이 기억한다.
홍콩, 샌프란시스코, 시드니 등도 다르지 않다. 홍콩은 특히 초고층 금융 스카이라인이 수평으로 길게 이어져서 유람선 선상에서 사진을 찍지 않으면 다 담기 어렵다. 해 질 녘 레이저쇼에 흥분한 마천루 풍경이 사진에 담겼다면 그 여행자는 유람선을 탔다는 증거가 된다. 항구도시는, 특히 세계적인 항구도시는 바다의 시선으로 바다를 활용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
며칠 전 재미 삼아 AI에게 물었다. 바다에서 사진을 찍기에 좋은 부산 해안선 포인트를 추천하고 언제, 어떻게 촬영하면 좋으냐는 질문이었다. AI는 짧은 시간에 태종대, 오륙도, 다대포 해안과 갯벌, 광안대교, 해동용궁사 암벽 등을 손꼽았고 촬영 기법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중에서 태종대는 육지에서도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AI는 바다에서 바라보는 풍경, 특히 수직 절벽과 거친 파도가 쉴 새 없이 부딪히고 교감하는 사진을 배 위에서 촬영하라고 조언했다. 오륙도는 실루엣이 아름다운 군도다. 오륙도 하면 부산, 부산하면 오륙도가 연상될 정도로 부산 시민들에게는 친숙한 표상 같은 존재다. 그러나 서면 로터리를 장식한 그 표상이 로터리 철거와 함께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순간, AI는 일출과 황혼 때 흐릿한 도시 풍광을 배경으로 군도의 실루엣을 역광으로 조심스럽게 담으면 오륙도를 왜 부산의 표상으로 옛사람들이 첫손에 꼽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 광안리 해수욕장과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한 광안대교의 야간 조명 사진은 해변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일 테다. 다대포 해안과 갯벌은 이미 수많은 사진작가의 작품에 스며들었다. 대형 선박과 크레인, 컨테이너가 조화를 이루는 역동적 장면은 부산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사진 포인트라고 AI는 알려줬다.
부산은 요코하마나 홍콩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역동적인 장면을 보유한 항구도시다. AI조차 부산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정작 부산 사람들이 품 안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는 거들떠보지 않은 감천문화마을, 영도 흰여울이 ‘재발견’되는 시대다. 새로운 세대의 감성으로, 바다의 시선으로 부산의 관광 자원을 추슬러 보면 좋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산은 유람선 운항과 경영이 여의치 않은 항구도시다. 그나마 크고 작은 유람선과 요트가 그 자리를 힘겹게 메우고 있지만, 부산을 대표할 만한 유람선은 아닌 것 같다. 외국 관광객의 사진에 담겨서 오랫동안 기억될 선박은 아직도 없다. 특히 고급 유람선 운영은 쉽지 않은 도전 과제다.
유람선과 여객선이 없어서 운영이 중단된 ‘부산항연안여객터미널’은 부산의 바다 시선을 깡그리 삭제한 증거다. 대형 유람선이 2척이나 동시에 기항할 수 있는 시설이고, 건물 그 자체로도 훌륭한 관광 자원이지만 관광객을 이곳으로 끌어모으고 시민 자존심을 높여줄 유람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과업을 수행할 선사와 선박을 유치하겠다는 노력을 부산항만공사와 부산시가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도 없다.
바다에서 관광 자원을 찾겠다는 의지가 없으니 정작 잘 지은 시설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도시를 모방하는데 한눈팔지 말고, 차라리 AI에게 물어서라도 그 답을 찾기를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은 바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북 안동 출신의 정치인이다. 그러나 부산의 잠재력으로 바다를 지목했고, 경쟁 도시의 거친 항의에도 불구하고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감행했다. 해수부 이전을 통해 해양 행정의 응집력을 높이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부산 발전의 원동력을 확보하자는 의도라고 이해한다. 그것이 북극항로 개척의 전초기지가 될지, 남북 관계를 새롭게 개선할 모항이 될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부산항을 통해 경제 성장의 활로를 찾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도시인 부산으로선 그것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시나브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