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대면서도 구명조끼 벗어준 해경…유족 "왜 혼자 출동했나" 분통
부력조끼 벗어주는 고 이재석 경사. 인천해양경찰서 제공
갯벌에 고립된 노인을 구조하려고 밀물에 비틀대면서도 자기 구명조끼까지 벗어줬다가 숨진 해양경찰관의 유족이 사고 당시 해경의 부실 대응 의혹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취재 등에 따르면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소속 고(故) 이재석 경사(34)의 유족 A 씨는 11일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 동구 장례식장에서 "당시 당직자가 두 명이 있었는데 왜 사촌 동생만 현장에 출동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재석이만 혼자 나간 이유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립자 구조 시 2인 1조가 원칙인데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며 "재석이 동료들도 '한 명만 출동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의아해했다"고 덧붙였다.
인천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 7분 대조기를 맞아 순찰하던 드론 업체가 갯벌에 사람이 앉아 있는 영상을 확인한 후 영흥파출소로 연락했다.
이후 이 경사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혼자 현장으로 이동했고 오전 3시께 발을 다친 채 고립된 중국 국적의 70대 B 씨를 구조하던 중 물이 허리 높이까지 차오르자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 B 씨에게 줬다.
9분 뒤 드론업체는 영흥파출소에 물이 많이 차 있다며 지원인력 투입을 요청했고 1분 뒤 영흥파출소 직원들이 현장으로 나갔다고 인천해경은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유족 A 씨는 "물이 찼다는 얘기를 듣고 즉시 추가 인원을 보냈으면 재석이는 살아 돌아왔다"며 "시스템이나 매뉴얼 상 절대 일어날 사고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촌 동생의 죽음이 개인의 희생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제2의 이재석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유족들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11일 인천 동구의 한 장례식장에 갯벌 고립 노인에 구명조끼 벗어주고 숨진 해경 고(故) 이재석 경사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이 경사는 이날 오전 3시 30분께 인천 옹진군 영흥도 갯벌에서 70대 A씨가 고립됐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투입돼 구조 작업 중 실종됐다. 연합뉴스
이 경사는 이날 오전 3시 30분께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갯벌에서 고립된 B 씨를 구조하다가 실종됐다.
당시 B 씨는 어패류를 잡다가 밀물에 고립됐고 발 부위를 다쳐 거동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직전 촬영된 현장 영상에는 이 경사가 손전등과 재난안전통신망 단말기를 든 채 자기 부력조끼를 벗어 B 씨에게 건네는 모습이 담겼다.
이 경사는 거친 물살에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도 계속해 무전을 하고 상공에 비행 중인 드론을 향해서는 양손으로 원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후 갑자기 불어난 바닷물에 휩쓸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날 오전 9시 41분께 영흥면 꽃섬에서 1.4㎞ 떨어진 해상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해경 헬기에 의해 구조된 B 씨는 저체온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박정미 부산닷컴기자 like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