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산업의 바다' 넘어 '시민의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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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삼미재단 이사장·㈜삼미건설 부사장

해수부 이전 통한 해양수도 완성
산업 측면에만 너무 기울어 있어
레저 등 해양시민 저변도 늘려야

9월이 되어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이 보인다. 올여름 부산은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화제로 들끓었다. 바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다. 정부 부처의 이전 자체만으로도 부산이 해양수도로서의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항만과 물류, 조선 등 해양 산업 기반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정책과 투자가 앞으로 어떻게 실현될지가 주목된다.

그러나 진정한 해양수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부산시민이 바다를 체감하고 배우며 즐길 수 있는 시민 중심의 공공성과 교육 프로그램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최근 몇 년간 부산국제보트쇼와 KIMA(대한민국국제해양레저위크) 등 부산에서 개최되는 행사들의 국고 보조금은 삭감되고 있으며, 행사 자체도 단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시민이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레저 스포츠와 교육 프로그램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해운대와 광안리, 다대포 등 부산의 대표 바다는 여전히 ‘관광객 중심’의 소비 공간으로 머물고 있다. 시민이 바다를 생활 속 문화로 체감하도록 정책적 배려를 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

몇 년 전 호주 시드니에서 직접 경험한 본다이 비치의 ‘본다이 서프 카니발’은 이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이 카니발은 1915년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행사로, 서핑과 수상 구조 훈련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역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데 기여해 왔다. 매년 여름 열리는 축제는 단순히 바다를 배경으로 한 단발적 행사가 아니었다. 시민들이 바다를 배우고 즐기며 스스로 안전을 지켜내는 문화가 곳곳에 뿌리내린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파도 속 구조 훈련에 참여했고, 청소년들은 팀을 이루어 라이프 세이빙 경기에 도전했으며, 어른들은 해변에서 열린 해양안전 세미나에 참여하며 안전과 교육의 중요성을 직접 체감했다. 음악과 퍼레이드가 더해진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시민 교육과 공동체 경험이라는 목표는 명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단순한 스포츠 대회를 넘어, 시민들이 바다와 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장이 되었고, 지역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바다는 단순한 관광이나 레저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 생활 속 학습과 공동체 활동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드니는 이러한 시민 중심 해양 프로그램을 각 바다에서 운영하는 동시에, 항만과 물류, 조선, 해양 R&D, 해양 레저 산업을 강화하며 경제적 기반을 탄탄히 하는 산업적 전략도 함께 추진, 두 가지 전략이 조화를 이루며 시민과 산업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적 해양도시’로 자리 잡았다.

부산도 해수부 이전을 계기로 이러한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초·중·고 단계별 바다 교육 과정을 구축하고,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공 아카데미를 운영해 바다 안전과 레저 교육을 정규화해야 한다. 축제와 이벤트는 단순한 관광객 유치용에서 벗어나, 시민이 배우고 즐기는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본다이 사례처럼 안전, 교육, 공동체를 핵심으로 삼는 부산형 해양 축제가 요구된다. 또한 항만과 조선 등 산업 중심 개발과 함께 시민이 바다를 향유할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에 충분한 예산과 정책적 배려를 투입해야 한다.

만약, 시민의 바다를 충분히 확장하지 못하면 부산이 직면할 위험도 분명하다. 산업 중심 이미지가 고착하면 국제적으로 ‘살기 좋은 해양도시’로 성장에 제약과 함께 바다와 시민 사이의 거리감은 심화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바다를 산업적 수단으로만 인식하게 되며, 지역 균형발전과 지속가능성 역시 훼손된다. 관광객 중심 이벤트로 정책이 고착될 경우, 비수기나 경기 침체기에 치명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시민 공감대가 부족하면 행정 신뢰가 약화할 우려가 있다. 결국 산업 중심의 해양수도만 강조하고 시민의 바다를 놓친다면, 부산은 내부적으로 시민 체감이 결여된 ‘반쪽짜리 해양수도’로 남게 될 것이다. 시민의 바다가 부재한 해양수도는 결국 허울뿐인 간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해수부 이전은 단순한 행정 이동이 아닌, 부산이 시민과 바다가 자연스럽게 하나 되는 해양도시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산업적 해양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시민 중심의 해양 레저, 교육, 축제, 환경 관리 프로그램을 확충하는 것이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자리매김하는 핵심 조건이다. 바다는 부산의 정체성이자 미래다. 시민이 직접 체감하고 누릴 수 있는 바다, 즉 ‘시민의 바다’를 만들어 나갈 때, 부산은 단순한 산업도시를 넘어 진정한 해양수도로 도약할 수 있다. 산업과 시민이 균형을 이루는 정책이 실현될 때, 부산의 바다는 생활 속 문화이자 안전한 학습 공간, 공동체의 터전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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