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동결-축소-폐기' 로드맵 북 비핵화 견인할 수 있나
이 대통령 유엔서 한반도 평화 구상 밝혀
한미 조율로 안보 위협 돌발 요인 없애야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한을 비핵화하는 것이다. 현재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올 1월 기준으로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는 5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유엔총회에서 북한과의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혔다. 특히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동결’, 그리고 ‘축소’를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3단계 비핵화론’도 재차 강조했다. 문제는 이 로드맵으로 북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의 구상을 뒷받침할 한층 정교한 외교 전략이 절실하다.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교류 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면서 남북은 물론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평화 구상 실현을 위한 3단계 비핵화론을 소개한 뒤 남북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 존중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기만전술을 수없이 목격했다. 심지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1일 한국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암시하면서 강하게 위협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류 협력 등 원칙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핵 고도화를 발빠르게 추진 중인 북한에게 시간만 벌어주는 위험천만한 도박이 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은 확고하다. 미국, 영국 등 주요 7개국 외교장관들은 23일 공동 성명을 통해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북한에 어떤 외교적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런 움직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미국과의 대화 조건으로 ‘북한 비핵화 목표 폐기’를 요구한 것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기도 하다. 22일 한미일 외교장관 성명도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이 대통령의 평화 구상은 제재보다는 교류 협력에 방점을 찍은 느낌이 강하다. 이 대통령의 구상이 북한에 핵을 용인한다는 뉘앙스를 줄까 우려스럽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현재 가장 걱정되는 것은 북한과 미국이 한국을 패싱한 채 테이블에 앉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올해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전후해 북미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럴 경우 한국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새로운 북미 로드맵이 등장할 수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원칙을 무시한 채 돌발적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합의한다면 우리의 안보 위협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핵은 우리 앞에 닥친 가장 중대하고 현실적인 위협이다. 한층 세밀한 한미 정책 조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