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의 ‘업비트 추격 드라마’ 결말은? [비즈앤피플]
디지털자산 시장, 추격과 제동 사이
점유율 격차 올해 초엔 51%P
이달 중순엔 25%P까지 좁혀
수수료 무료, 상장 확대로 공세
월드코인 상장 호재 모두 흡수
오더북 공유, 레버리지 서비스 등
논란 잇따라 터지며 추격에 제동
네이버, 두나무 편입 '빅딜' 진행 중
디지털 금융시장도 지각변동 예고
클립아트코리아
나훈아와 남진, 최동원과 선동열. 세간은 이들을 세기의 라이벌이라고 부른다. 1등을 가려내야 하는 경쟁 사회에서 라이벌과의 경쟁은 개인의 발전을 이끌어내고, 더욱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하지만 라이벌을 이기는 것에만 몰두한다면, 근본적인 성장이나 본래의 목표를 잊고 독이 되는 자충수를 선택하기도 한다.
최근 이러한 사례가 디지털자산 업계에서 발생했다.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은 시장 점유율을 급속도로 확대 중이었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업비트에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광폭 행보를 보이던 빗썸에 제동이 걸렸다. 무리한 영업활동과 금융당국의 대표이사 소환 등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할 순간에 빗썸은 각종 논란 해명에 총력을 쏟아부어야 할 처지가 됐다.
■점유율 격차 50%P서 절반으로 ‘뚝’
25일 가상자산 시황 중계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이달 중순(1~14일) 기준 업비트와 빗썸의 평균 거래대금은 각각 3조 2780억 원, 1조 9390억 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시장 점유율은 각각 61%, 36%로 나타났다. 업비트가 60%대로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두 거래소 격차는 과거에 비해 대폭 좁혀진 상태다.
올해 1월 기준 양사의 점유율 격차는 51%포인트(P)로 절반 넘게 차이를 벌렸다. 이후 빗썸은 격차를 점차 좁히면서 △5월 39.5%P △6월 35%P △7월 40.5%P △8월 36%P △9월 25%P로 업비트의 독주 체제를 흔들었다.
특히 지난 9일에는 빗썸의 시장 점유율이 45%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날 월드코인(WLD)이 하루 만에 95% 급등하자, 투자자들의 거래량이 몰리면서 빗썸의 점유율이 단숨에 폭등했다. 같은 날 업비트도 뒤늦게 월드코인을 상장했지만, 빗썸이 홀로 월드코인 호재를 모두 흡수한 꼴이 됐다.
업비트는 지난 수년간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시장에서 왕좌의 자리를 지켜 왔다. 2023년에는 점유율이 90%에 달하기도 했다. 업비트와 빗썸의 양강구도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였다. 사실상 업비트의 1강 체제에 국회와 금융당국은 시장 독점에 대한 견제성 발언을 심심찮게 내뱉었지만, 자유시장 경쟁에서 고객들의 선택이란 명분에 막혀 매번 백기를 들곤 했다.
그러나 빗썸의 약진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업비트의 행보에서도 위태로운 독주의 균열을 감지할 수 있다. 보수적 상장 전략을 유지하던 업비트가 빗썸의 점유율 추격에 맞서 거래지원 종목을 늘리고 있어서다.
가상자산 평가 플랫폼 애피와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빗썸의 거래지원 종목 수는 406개다. 업비트(260개)보다 1.5배 많은 수준이다. 다만 이달 기준 업비트가 신규 상장한 가상자산은 11개다. 같은 기간 8개를 상장 지원한 빗썸을 추월했다. 이는 업비트가 상장 확대 기조로 돌아섰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월드코인의 시세 급등으로 빗썸의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자, 업비트도 이례적으로 월드코인을 즉시 상장했다는 점에서 점유율을 의식한 결정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프로게이머 페이커와 함께한 업비트의 브랜드 캠페인(위)과 빗썸의 거래 수수료 무료 이벤트 안내 이미지. 두나무·빗썸 제공
■수수료까지 포기했는데…당국 ‘제재’ 위기
빗썸은 지난 18일부터 ‘수수료 무료’ 카드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벤트 종료 시점은 별도 안내 시까지 잠정 진행이다. 빗썸의 수수료 무료 전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10월부터 약 4개월간 모든 가상자산 거래에 수수료를 전면 면제한 바 있다. 거래 수수료는 거래소 수익과 100% 직결된다. 당시 빗썸의 결정은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수수료 무료 전략은 효과를 톡톡히 봤다. 10%대에 머물던 빗썸의 시장 점유율은 30%대까지 뛰었다. 이번 수수료 무료 이벤트 역시 업비트와의 좁혀진 점유율 격차를 뒤집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매년 마케팅 비용도 늘리는 추세다. 2022년과 2023년 빗썸의 광고선전비와 판매촉진비를 합한 마케팅 비용은 각각 128억 원, 161억 원 수준이었다. 지난해에는 1922억 원으로 전년보다 10배가 넘는 비용을 쏟아부었다. 올해 상반기는 전년 동기 대비 약 85% 증액한 1346억 원의 마케팅 비용이 투입됐다.
하지만 업계 1위 자리를 넘보던 빗썸에 커다란 암초가 등장했다. 금융당국의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위반 여부 등 악재가 터졌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 22일 빗썸이 호주 가상자산거래소 스텔라와 시작한 ‘호가창’(오더북) 공유와 관련해 빗썸 이재원 대표를 소환 조사했다.
오더북 공유는 거래소 간 매수·매도 주문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즉 빗썸과 스텔라 고객 간 거래가 이뤄진다는 의미다. 거래소끼리 주문을 공유하면 유동성이 커지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특금법은 오더북 공유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두고 있다. 해외 거래소와 고객 주문 내용이 공유되면 국내 고객의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FIU는 오더북 공유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었는지 등의 특금법 위반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결국 빗썸의 점유율 뒤집기는 막을 내릴 위기다. 당국이 빗썸의 특금법 위반 사항을 확인 시 제재를 고려하고 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빗썸 관계자는 “법적 절차를 사전에 검토 후 오더북 서비스를 진행했다”고 말을 아꼈다.
점유율 전쟁에 이어 디지털 금융 시장의 지각 변동도 예고되고 있다. 네이버가 핀테크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을 통해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한 ‘빅딜’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가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포괄적 주식 교환을 승인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 계약이 성사되면 국내 핀테크와 가상자산 시장의 판도가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양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비롯해 디지털 금융 산업에 본격 진출할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연간 80조 원의 결제 규모를 확보한 네이버파이낸셜과 국내 1위, 전 세계 4위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 중인 두나무의 결합은 국내 디지털 산업 지각 변동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국내 최고 수준 블록체인 기술을 보유한 두나무가 발행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네이버 페이 기반 간편결제망에 올리고, 이커머스 양강 구도를 구축한 네이버와 시너지까지 결합한다면 유망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이 당장 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청사진이다. 향후 가상자산으로 쇼핑 결제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네이버와 업비트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현실화된다면, 이들의 스테이블코인 사업은 2030년 연간 3000억 원 규모의 수익 창출이 가능한 사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날 네이버는 “네이버파이낸셜은 두나무와 스테이블코인, 비상장주식 거래 외에도 주식 교환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며 “추가적인 협력 사항이나 방식에 대해서는 확정된 바 없다”고 공시했다.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