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스템 미비가 화 키운 국정자원 화재, 전자정부 민낯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배터리 옮기다 발생… 국민 생활 먹통
시민 피해·불편 최소화에 역량 집중을

28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가 소화수조에 담겨 있다.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연합뉴스 28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가 소화수조에 담겨 있다.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연합뉴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정부 전산망 647개가 일제히 멈춰 섰다. 민원 서비스에서 행정 업무, 금융·교육·의료 시스템까지 줄줄이 먹통이 되면서 국민의 일상과 생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이 사용하는 정부24, 국민신문고, 우체국 금융망부터 교육부와 병원 시스템, 부산시의 민원 서비스까지 전국 곳곳의 디지털 행정이 순식간에 마비됐다. 주민센터 민원창구는 줄줄이 마비되고, 각종 행정 업무가 지연되면서 시민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국가 전체 정보 시스템이 한순간에 멈추는 초유의 사태로 디지털 행정의 근간이 화재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지난 27일부터 이어진 전산 장애는 전국을 뒤흔들었지만 부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국가정보자원 전산시설 화재로 부산민원120, 여권 발급, 정보공개포털, 인감증명서 발급 등 시민 생활에 필수적인 행정 서비스가 일제히 중단됐다. 부산시는 시민들에게 전화 문의 후 오프라인 창구 방문을 당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서비스 마비는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고충으로 이어졌다. 병원에서 모바일 신분증이 먹통이 돼 발길을 돌리거나 여권 재발급 신청이 막혀 항공권 예약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는 등 평범한 일상이 순식간에 멈춰 버렸다. 부동산 관련 서류 발급과 우체국 ATM 서비스마저 중단됐다. 시민 피해를 차단할 최소한의 장치조차 없었던 셈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화재가 화재를 막기 위한 작업 도중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2022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 정부는 전산실 내 리튬 이온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한데 바로 그 과정에서 불이 난 것이다. 민간 기업에는 서버 이원화와 다중 클라우드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던 정부가 정작 자기 발등은 지키지 못한 꼴이다. 원인은 분명하다. 정부 전산망이 대전 본원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었고 물리적·시스템적 안전장치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탓이다. 한 건물에 시스템이 과도하게 몰려, 배터리와 서버 간 거리도 60㎝에 불과했다. 국가 운영의 신경망이 이처럼 허술하게 관리됐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전자정부’를 자랑하던 국가의 기본 서비스가 불길 앞에 무너진 이번 사태는, 그 허술한 인프라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전산망 이중화와 재해 복구 체계를 빈틈없이 재정비해야 한다. 데이터 백업은 위기 시 즉각 가동될 수 있도록 보강하고 중앙 시스템 의존도가 높은 지방정부 피해 방지를 위해 지역 분산형 데이터센터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디지털 구호가 아니라 사고에도 일상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했듯 신속한 복구와 국민 불편 최소화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재발 방지책을 제시해야 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