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오직 관객만 생각… 다음 세대도 즐길 수 있는 영화 만들 것”
신작 ‘어쩔수가없다’ 스크린 개봉
박 감독 특유의 미장센 보는 재미
블랙코미디 웃음·처연한 비극 교차
인간 욕망·불안 전면에 그린 작품
박 감독 “관객과의 소통 가장 중요”
박찬욱 감독이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CJ ENM 제공
“우울하다고 비극이 강해지는 건 아니죠.”
박찬욱 감독은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국제관객상 수상으로 이미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은 이 작품은 지난달 24일부터 한국 관객을 만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20여 년간 준비한 작품”이라며 “주인공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관객에게 스스로 묻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미국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 ‘액스(The Axe)’를 원작으로 한다.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된 한 남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감독은 이 남자가 벌이는 비극적 소동을 통해 인간 내면의 불안과 산업 구조의 변화, 현대사회의 균열을 두루 비춘다. 영화 속 AI(인공지능) 발달로 인한 정리해고와 실업, 고용 불안정이 일상화된 사회의 모습은 동시대 현실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박 감독 특유의 정교하고 선명한 미장센은 평범한 인간이 타락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교외 전원주택의 평화로운 풍경으로 시작한다. 골든레트리버 두 마리가 뛰어노는 마당, 가족과 함께 장어를 구워 먹으며 보내는 평화로운 시간은 만수 가족에게 앞으로 닥칠 일들과 극도로 대비된다. 블랙 코미디적 웃음과 처연한 비극이 교차하는 이 작품은 불안정한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박 감독은 “감독과 배우도 고용 불안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전까지 저도 영화를 못 찍을까 막막했던 시절이 길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몇 편 흥행이 실패하면 투자자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전작인 ‘헤어질 결심’과 대비는 분명하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이 시적이고 여성적인 영화였다면 이번은 산문적이고 남성적인 영화”라며 “여백과 정적 대신 꽉 찬 장면과 동적 전개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슬픈 이야기를 우울하게만 다룬다고 비극성이 강해지진 않는다”며 “웃음이 배어들 때 오히려 연민과 허망함이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헤어질 결심’이 서래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억압된 존재의 구원과 회복을 그렸다면, ‘어쩔수가없다’는 만수라는 남성을 통해 추락하는 삶과 파국을 보여준다. 전작이 절제된 감정선을 강조한 데 비해 이번 작품은 욕망과 불안을 전면에 내세우며 블랙코미디적 색채로 밀도 있게 드러낸다.
박 감독은 칸영화제, 베네치아 영화제 등 세계 영화계에서 두루 인정받는 한국 대표 감독이다. 칸영화제에서는 2004년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걸 시작으로,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 2022년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 등을 받았다.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올해 베네치아 영화제에 초청되는가 하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주목을 받았다. 국내외에서 거장으로 평가받지만, 박 감독의 목표는 여전히 관객과의 소통이다. 그는 “오직 관객만 생각한다”면서 “사랑받고 이해받으며, 다음 세대까지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