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블록체인특구 장점 살리면 ‘창업 생태계’ 꽃핀다”[심준식이 만난 블록체인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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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부산기술창업투자원 서종군 대표

화려한 금융인 경력 제쳐두고 ‘부산행’
지역 스타트업 지원 제도 파편화 현실
창업 많아지면 생태계 형성도 용이해
부산은 물류·수산·해양·ICT가 경쟁력
디지털자산과 블록체인 생활 곳곳에


부산기술창업투자원 서종군 초대 원장. 비온미디어 제공 부산기술창업투자원 서종군 초대 원장. 비온미디어 제공

[편집자주]‘심준식이 만난 블록체인 히어로즈’는 블록체인 전문 매체 비온미디어의 심준식 대표가 디지털자산 시장의 리더들과 나누는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 미래 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부산이 아시아 디지털자산 허브로 성장하기 위한 길을 모색합니다.


“원장이 쓴소리하고 다닌다고 혼나겠네요.”

서종군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이하 부산창투원) 초대 원장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부산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부탁하자 나온 반응이다. 하나증권부터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그리고 한국성장금융 투자총괄 전무까지. 누가 봐도 화려한 서울 금융가 경력을 가진 그가 지난 2월, 부산행을 선택했다.

“제 커리어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번도 자본시장을 떠난 적이 없다는 거죠. 그중에서도 비상장 시장,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해왔어요.”

그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부산 창투원은 기존 조직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새로 만드는 조직입니다. 제 그림을 그리고 키워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부산까지 오게 됐습니다.”


■부산 스타트업의 민낯: “수도권도 실리콘밸리에 비하면…”

그렇다면 부산의 현실은 어떨까? 서 원장의 진단은 냉정했다.

“수도권도 실리콘밸리나 중국 선전에 비하면 낙후돼 있습니다. 부산은 수도권보다 또 뒤처져 있고요. 수도권과 부산을 실리콘밸리와 비교하면…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싶어요.”

하지만 그는 단순히 비관만 하지 않았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냈다.

“가장 어려운 건 ‘생태계’가 약하다는 겁니다. 개별 기업도 조금 있고, 지원도 약간 있지만 100개 중 2개 있다는 뜻이죠. 완전히 파편화돼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생태계는 복잡하지 않았다. “창업자가 돈 버는 일, 기술 개발과 상품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투자자를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비즈니스 파트너, 세무회계, 법률 전문가를 원하는 시점에 만날 수 있는 것. 그게 생태계예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생태계가 없으니 기업이 안 생긴다? 기업이 없으니 생태계가 안 만들어진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답을 알고 있어요.”

서 원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창업자가 먼저입니다. 스타트업이 많이 만들어지면 그와 관련된 투자자들과 전문가들이 그걸 중심으로 모이게 돼 있어요. 최근 들어 변화가 감지됩니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부산에 될 수 있나’라는 부정적 시각이었죠. 지금은 ‘부산에 있는지 한 번 찾아볼까’ 정도까지 왔습니다.”

그의 말에는 희망이 묻어났다.

“있는지 찾아보자는 것 자체가 이미 비즈니스가 형성될 수 있는 텃밭은 가꿔졌다는 의미입니다.”


■음원을 금융화하다 - 뮤직카우 투자 비하인드

한국성장금융 시절, 그가 발굴한 기업 중 하나가 뮤직카우다. 2018~2019년께,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비즈니스였다.

“음원을 금융화한다? 당시엔 굉장히 생소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봤어요. ‘금융과 기술을 연결하는 게 핀테크라면, 음악과 금융을 연결하는 것도 핀테크 아닌가?’”

그는 핀테크 펀드로 뮤직카우에 초기 투자를 단행했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글로벌하게도 처음 시도하는 비즈니스였습니다. 지금은 미국 시장까지 진출했죠.”


■플랫폼의 진짜 비밀: 데이터베이스가 답이다

창업가들에게 추천하는 책으로 그는 랜디 코미사의 <승려와 수수께끼>를 꼽았다. 제목부터 흥미롭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건 명확합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반드시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는 거죠. 단순히 중개만 하는 건 진짜 플랫폼이 아니에요.”

그는 부산 기업 ‘급구니드’를 예로 들었다. “단기 알바 매칭 플랫폼인데, 창업할 때부터 데이터베이스화를 했어요. CEO가 7일짜리 일자리를 찾으면 과거 이력을 바탕으로 딱 맞는 사람을 추천하는 거죠. 쿠팡이 내 구매 이력으로 상품을 추천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비온미디어 심준식(왼쪽) 대표와 부산기술창업투자원 서종군 원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비온미디어 제공 비온미디어 심준식(왼쪽) 대표와 부산기술창업투자원 서종군 원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비온미디어 제공

■부산만의 강점: 물류, ICT, 그리고 바다

“부산 스타트업의 경쟁력요? 물류 플랫폼입니다.”

항구도시 부산의 특성상 물류 기반 플랫폼 비즈니스가 발달했다는 설명이다. “컴포즈커피도 그렇고, 대부분 플랫폼 비즈니스로 성공했어요. 센텀 중심의 ICT 기업들도 있고, 수산·해양은 말할 것도 없죠. 병원이 많아서 바이오·헬스케어 쪽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산만 보면 가능성 없다: 글로벌이 답이다

“부산만을 위한 스타트업은 크게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말은 단호했다. “출발은 부산에서 하더라도 수도권 고객을 잡고, 글로벌 고객을 잡아야 합니다. 디지털자산 관련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예요. 부산에서 부산만을 위한 서비스는 크게 밸류를 쳐주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창투원은 글로벌투자팀을 별도로 구성했다. “핵심은 해외 자본이 부산에 자주 와서 부산 기업을 투자 검토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뉴욕이 경제 수도지만 실리콘밸리가 벤처의 메카인 것처럼, 지리적 문제는 중요하지 않아요.”


■디지털자산 시대, 부산의 기회와 과제

네이버의 두나무 인수 소식에 그는 이렇게 평가했다.

“세상에 어떤 판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년 전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고, 모바일이 10~15년 지배했듯이 앞으로는 디지털자산과 블록체인이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할 겁니다. 대세예요.”

하지만 부산의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특장점이 잘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구라는 장점이 살아나야 생태계가 조성되고, 그래야 경쟁력 있는 기업이 나오고 투자도 이뤄집니다.”


■3년 후, 부산이 달라진다

“3년 후엔 이런 말이 나왔으면 합니다. ‘부산에서 스타트업 하면 잘 케어한다더라.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 없겠네. 비용도 경쟁력 있고.’”

서 원장의 비전은 명확했다. “수도권에 버금가는 생태계를 만들어 또 하나의 국가 경쟁력 자산으로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입니다.”


■혼자 가면 길, 함께 가면 역사

인터뷰 말미, 그는 한국성장금융 설립 때부터 간직한 문구를 꺼냈다.

“혼자 가면 길이 되고, 같이 가면 역사가 된다.”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길은 조그마한, 나 혼자 또는 몇 사람이 갈 수 있는 것이지만 같이 힘을 모으면 큰 역사가 됩니다. 하나의 변화를 일으키는 거죠.”

“부산 창업가 여러분, 혼자 외롭게 하지 마세요. 창투원과 같은 기관, 민간 투자자들이 여러분을 응원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여러분은 창업하고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하세요.”

새로운 시작을 위해 부산을 선택한 한 남자. 그가 그리는 부산 스타트업의 새로운 역사가 지금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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