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상을 잠시 멈추고, 차에 집중하며 내면을 다스려 보세요”
최귀례 예향다원 대표
어린 시절 일본 문화 가까이 경험
결혼·육아 중 부산여대서 차 공부
2004년 동래구 온천동에 다원 개원
“다도 알리는 공간 더 많이 나누고파”
“다도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다도를 통해 사람들은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차를 마시는 행위에 집중해 삶의 본질을 되새길 수 있죠.”
최귀례 씨는 예향다원(부산 동래구 온천동) 대표와 부산시인협회 부이사장이라는 명함 두 장을 건넸다. 그의 삶을 차와 문학이 관통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 평 마당이 봄을 짓고 있다/새 옷으로 잘 차려입은 담장/담장 아래 우아한 차 꽃 종알종알 피었다…아지랑이처럼 마당을 향해 새어나오는 차향/다원 마루에는 고즈넉한 작설 차 향기….’ 그는 자신의 시 ‘예향다원의 봄’에서 다원을 이렇게 묘사했다.
최 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꺼냈다. “일본교육을 받은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본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일본학을 전공했어요. 은행원이셨던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골동품과 그림, 보성녹차에 대해 알게 되고 흥미를 가지며 성장했습니다. 차나무 사진과 한약 봉지 안 찻잎들을 꺼내 보이며 아버지를 설득하고 설명하던 어른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보성다원 사람들이었겠죠. 그때 붉은 색 황토 위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던 차나무 사진과 찻잔에 따라놓은 순한 풀빛의 차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대학 졸업 논문으로 소설 ‘센노리큐(千利休)의 여자들’을 번역하며 우리 전통다도와 일본 다도에 더욱 빠져든 최 씨는 40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차를 공부하게 됐다. “결혼을 하고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차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아, 부산여대 차문화과 1년 과정과 이후 개설된 다도학과 정규과정을 매주 1~2회 수강했습니다. 여기선 주로 우리 전통 다도를 배웠고, 일본식 다도는 혼자 일본어를 익히고 현지를 여행하며 직접 부딪히고 배웠죠.”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차 문화는 다른 점이 많았다. 약 2000년 전 중국에서 시작돼 동아시아 국가로 전파된 다도는 중국 송나라 때 번성하며 상류층의 문화로 자리잡았고, 한일 양국은 이 시기에 중국의 차 문화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신라 화랑들을 중심으로 번져 고려, 조선시대까지 귀족과 서민, 농민들도 즐겼다고 하지만 현재는 크게 대중화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16세기 다도 스승 센노리큐에 의해 차 문화가 체계화됐다.
“양국 모두 격식과 절차가 강조되며 고유의 문화와 융합해 발전해왔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은 말차를 앞세워 차 산업과 문화의 범주를 넓혀가고 있는 반면 우리는 차 대신 커피 문화가 대세여서 개인적으로 매우 아쉽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차에 훨씬 진심이에요. 일본 다도는 물의 온도와 사발의 조화, 말차가 내는 거품, 다기의 소리와 온도, 함께 즐기는 다식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고 즐기려 합니다.”
이처럼 일본 다도를 파고들었던 최 씨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껏 자신만의 다도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하고, 예향다원을 열었다.
“2004년에 처음 문을 열었어요. 수년간 흠모했던 주택을 운 좋게 매입할 수 있었고, 다다미를 올린 다실을 만들고 일본식 정원을 정성 들여 꾸몄죠. 다원을 가지려고 젊을 때 그렇게 돈을 벌었나 싶었을 정도로 감개무량했습니다. 문학잡지를 읽고 나무와 꽃을 보며 생각에 잠기고 글을 쓰고 내면을 다스렸어요. 다원에 있을 때 가장 나답고 편안했습니다.”
하지만 최 씨는 다원을 돈벌이에 쓰고 싶지는 않았다. 돈 받고 차를 파는 방식은 싫었다. 차는 함께 나눌 때 더 의미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상대로 다도 예절 수업을 재능기부 형식으로 꾸준히 열기도 했다. 최근에는 좋은 사람들을 초대해 차를 마시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여름 최 씨가 팔을 다치면서 수개월 째 다원이 방치되고 있지만, 곧 다시 손을 볼 예정이다.
“제 삶을 거치며 모으고 가지며 애지중지했던 것들이 한데 모여있는 공간, 예향다원이 어느덧 문을 연지 20년이 넘었네요. 함께 나눌 때 더 의미가 크기에, 그동안 애지중지 가꿔온 다원을 더 많이 공유하며 차를 알리는 곳으로 쓰고 싶습니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