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던 취객 치고 간 40대 운전자, 무죄 뒤집힌 까닭은?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음주 사고 후 도로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
“고라니인 줄 알았다” 밟은 뒤 그대로 귀가
“이례적 상황, 도주 의사 없어” 무죄 취지
항소심 “다시 현장 방문 미필적 고의” 인정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법원이 술에 취해 심야 시간 도로 한복판에 누워있던 피해자를 그대로 밟고 가버린 40대에게 무죄 취지의 선고를 내렸다가 항소심에서 그 판단을 뒤집었다.

창원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이주연)는 도주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거창지원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원심인 거창지원은 지난해 10월 A 씨 사건에 대해 공소 기각,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A 씨는 2023년 8월 20일 새벽 경남 합천군 한 편도 1차로에서 싼타페를 몰다가 진행 방향의 도로 위에 누워 있던 20대 B 씨를 밟고 지나간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고로 B 씨는 허벅지 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지만, A 씨는 별다른 구로 조치 없이 그대로 현장을 벗어났다.

당시 B 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79% 면허 취소 상태로 렉스턴스포츠 칸 화물차를 운전하다가 도로 옆 배수로에 빠지는 단독 사고를 내 비상등을 켠 채 차량 밖에 나와 도로에 쓰러져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A 씨 측은 “차가 고라니를 충격했다고 생각했을 뿐, 사람을 역과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도주할 의지도 없었다”고 항변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A 씨가 실제 2019년 12월 사고 지점 인근에서 고라니를 충격해 보험 처리를 받은 사실이 있고 야간에 농촌 이면도로에 사람이 누워 있는 상황 자체가 이례적인 점 등을 고려해 도주의 의도가 없을 것이라 봤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도주)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야 할 것이나, 공소사실에 포함된 치상 부분은 차량이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공소 제기를 할 수 없기에 최종적으로 검사의 공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검사 측은 1심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를 즉각 제기했다. A 씨에게 미필적으로나마 사람을 역과하고 도주한다는 고의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도주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가 있다며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항소심은 “화물차가 비상등이 켜고 배수로에 빠져 있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고 차량에 강한 충격도 느꼈다면 본인이 밟은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해야 했지만 A 씨는 주거지까지 계속 운전했다”며 “주거지에 도착해서는 블랙박스를 확인하지 않고 다시 사고 현장에 들러 수습 상황을 살펴보고 집으로 돌아간 점도 석연치 않다”고 판시했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