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블록체인 도시 부산의 미래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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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특구 지정 후 6년여
항만 정보공유 플랫폼 등 성과 불구
산업생태계 진전은 여전히 더뎌
법제화 앞둔 STO 시행 계기
장외거래소 유치 시장 활성화로
첨단 도시 도약 발판 만들어야

우리 사회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하기 시작한 게 2017년 즈음의 일이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과 함께 ICO(암호화폐 공개) 붐을 통한 코인 광풍이 몰아친 시기였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코인 투자 열풍은 경제적 불안과 부동산 가격 급등, 기성세대에 비해 불리한 사회적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대중의 관심에 민감한 정치가 이를 그냥 두고 봤을 리 없다. 2018년 6월 13일 실시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암호화폐 도입이 이슈로 등장했다.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는 암호화폐와 핀테크를 결합한 지역화폐 ‘G코인’ 발행을 공약했다.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 내에는 ‘블록체인랩’을 신설하겠다고 했다. 당시 무소속으로 나선 원희룡 제주도지사 후보는 ‘제주코인’ 발행과 함께 블록체인 특구 조성을 공언했다. 오거돈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가 부산형 사회복지 코인인 ‘B코인’ 공약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미래 첨단산업으로 포장된 후보의 이미지는 선거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내에서도 암호화폐 열풍을 둘러싸고 ‘신산업 육성 파’와 ‘투기 과열 방지 파’의 논쟁이 팽팽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범정부 차원에서 거래소를 통한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특별법을 준비 중”이라고 밝혀 논란에 불을 붙였다. 유시민 작가가 한 토론회에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논쟁을 벌인 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난해하고 우아한 사기”라며 특유의 대중적 언어로 전문가를 제압하려 했던 것도 그런 논란의 연장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 산업 육성 필요성은 정부 내에서도 꾸준히 제기됐고, 중소벤처기업부는 2019년 7월 부산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제주와 경기뿐만 아니라 서울까지 가세한 특구 유치전이 부산의 승리로 끝난 데에는 유재수 당시 경제부시장의 역할이 컸다. 정통 금융 관료 출신인 그는 부산시 블록체인특구 추진단장을 맡아 특구 지정과 사업을 주도했다. 그렇게 부산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위변조가 불가능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첨단 신산업을 키우는 ‘신뢰 도시’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 6년여 세월 부산에서는 물류, 관광, 공공안전, 금융, 부동산, 의료 등의 분야에서 블록체인 실증 사업이 진행됐고 항만 정보공유 플랫폼, 맞춤형 AI 의약품 등에서 의미 있는 혁신의 결과물이 축적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커피 이력 추적 등도 커피 도시 부산에서 눈에 띄는 시도다. 부산시가 앵커 사업으로 의욕적으로 추진한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비단)는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민간 주도로 출범했고,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블록체인 위크 인 부산’도 블록체인 인식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은 세계적 블록체인 도시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다양한 시도와 혁신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산업생태계 조성은 미미한 수준이다. 기존 산업과의 폭발적 시너지도 아직 보이지 않고 시민의 일상 속 블록체인 도시로서의 경험이나 공공 서비스 등도 체감하기 쉽지 않다.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방향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은 크립토 윈터와 서머를 거치며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떠올랐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선언하고 현물 ETF를 제도화함으로써 블록체인 산업에 불을 질렀다. 스테이블코인과 암호화폐 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담은 지니어스법도 만들어 생태계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마침 국내에서도 늦었지만, 토큰증권(STO) 근거 규정이 담긴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STO는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자산 형태 증권으로 기존 전자증권만으로 담기 어려웠던 부동산, 미술품, 음원 저작권 등 실물자산과 권리를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STO 가이드라인을 공개한 지 3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야 법제화를 앞두게 된 데에는 정치권의 직무 태만이 한몫했다. 어쨌든 STO 도입은 국내 블록체인 생태계에 새로운 전환점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재 금융 당국은 장외거래소 인가를 진행 중인데 3개 컨소시엄이 신청한 상태다. 부산에서는 한국거래소 컨소시엄이 도전장을 던졌는데 블록체인 특구에 유통 플랫폼이 허가돼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사실 STO는 가이드라인 설정 당시부터 블록체인 특구 사업 안에서 논의됐어야 하는 사안이다. 이제 블록체인 특구 부산이 보여 줘야 하는 것은 더 이상 담론이 아니라 산업화의 경험과 실질적인 생태계의 진전이다. STO 시장 선점과 활성화가 그 새로운 출발일 수 있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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