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응급실 뺑뺑이’ 이유 아는 정부, 응급 대책 서둘러야
119에만 맡긴 병원 타진 시스템 허점
사법 리스크도 응급진료 위축 불러와
부산의료원 응급실 전경. 정종회 기자 jjh@
부산지역에서 병원 치료 중 쇼크 상태에 빠진 10세 아동이 119 구급차에 실려갔으나 병원 12곳으로부터 응급실 수용을 거부당한 끝에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필 사고가 알려진 날에는 대통령이 보건복지부의 업무보고를 받던 도중 직접 ‘응급실 뺑뺑이’를 질타하고 있었기에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대통령의 공개적인 질타가 이어지자 보건복지부는 사태 발생의 원인을 해명하고 해결책 마련에 허겁지겁 나서는 모양새다. 현장에선 오래 전부터 의사들의 과도한 법적 책임 부담 등 응급 진료 기피 현상에 대한 원인을 꼬집어 왔으나 정부가 이에 대한 대처에 소극적으로 임해왔다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해당 아동은 감기 치료를 위해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찾았다가 수액을 맞는 과정에서 알레르기 쇼크가 발생했다. 사고가 아니라 그 나이 또래가 흔히 앓는 감기 치료 과정에서 응급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는 상급 종합병원 12곳에 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의료진 부족’ 등의 이유로 모두 퇴짜를 맞았다. 구급차에 실린 지 40분이 지나서 환자 비수용을 전제로 응급 처치만 가능하다는 병원으로 옮겼으나 그 사이 아동은 심정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를 두고 부산지역 소아과 전문의 수급 악화로 발생한 일이라는 지적들이 나오지만 특정 필수 의료 인력 부족 때문만으로 보기엔 사정이 간단치가 않다.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먼저 “응급실 뺑뺑이로 119 구급차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병원이 구급대원이나 가족보다 치료에 낫기 때문에 응급 조치라도 하고 다른 병원을 수배해 전원하는 게 정상이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이에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환자와 병원을 매칭하는 컨트롤타워, 광역상황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정부 부처 스스로도 119 구급대원에게만 병원 타진을 맡겨 놓은 현 시스템의 허점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구급대원이 응급 환자의 처치와 병원 물색 전화를 모두 담당해야 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하는 부분이다.
응급실 뺑뺑이의 근본 원인은 진료 거부 병원들이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들듯이 필수 의료 분야 인력 확보난에 있다.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는 의료사고로 인한 사법 리스크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대한종합병원협회도 18일 응급 진료에 한정해서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민형사상 면책이 가능한 법적 특례조항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이는 지역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는 지역의사제를 도입함으로써 지역의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필수 의료 공백을 메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국민이 길 위에서 헤매다 죽어가는 사태를 막는 것보다 시급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정부의 발빠른 대책 시행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