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새 하늘길·바닷길이 부산에 보내는 신호
박지윤 삼미재단 이사장·㈜삼미건설 부사장
부산의 하늘길과 바닷길이 다시 열리고 있다.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추진이 본격화하고 있으며, 진해 신항 역시 초대형 항만 구축이라는 과제를 안고 가시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두 사업은 부산의 해상과 항공 관문 기능을 각각 재편하며, 도시의 관문 구조를 동시에 변화시키는 핵심 사업이다. 항만과 공항이라는 국가 핵심 인프라를 같은 시야에서 다시 고민해야 하는 도시는 현 시점 국내에서 부산이 유일하다. 바닷길과 하늘길이 같은 방향으로 열리고 있는 이 변화는 단순한 국가 핵심 인프라 건설 추진을 넘어, 부산이라는 도시의 성격과 진로가 전환하고 있음을 알리는 중대한 신호다.
이 중대한 변화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더 크게 성장하겠다’는 선언일까, 아니면 ‘경쟁에서 살아남겠다는 다짐일까. 오히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부산은 앞으로 어떤 도시로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부산 시민은 어떤 삶을 누리게 될 것인가. 항만과 공항은 언제나 도시의 산업구조뿐만이 아니라 도시민의 생활 방식과 공간 질서를 함께 바꾸어 왔기 때문이다.
가덕신공항·진해 신항 동시 가시화
공항·항만이 도시 압도하지 않기를
산업보다 삶 꾸리는 계기 만들어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많은 해양도시들이 먼저 통과해 온 선택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는 초대형 항만과 세계적 허브 공항을 갖춘 도시지만, 항만 기능을 도시 한복판에 붙들어 두지 않았다. 물류 기능은 외곽으로 이전하고, 해안선은 시민과 관광객에게 돌려주었다. 산업으로서의 항만이 물러난 자리에는 마리나베이샌즈라는 도시의 새로운 중심 풍경이 만들어졌다. 그곳에서 바다는 더 이상 일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르고 걷고 기억하는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항만과 공항은 국가 경쟁력을 키웠고, 도시는 시민의 삶의 반경을 넓혔다.
일본 고베 역시 시사점이 분명하다. 대지진 이후 고베는 항만과 도시를 동시에 재건해야 했다. 포트아일랜드 해상공항과 재정비된 항만은 산업 기능을 회복하는 데 기여했지만, 고베가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것은 시민의 바다 접근권이었다. 산업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도록 해안 공간을 다시 설계했다. 그 결과 고베의 바다는 산업의 상징이자 시민의 생활 공간으로 공존하게 됐다. 항만과 공항이 도시를 압도하지 않고, 도시가 바다를 다시 품는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두 도시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항만과 공항을 키우는 목적이 도시를 더 많이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도시를 더 오래 지속시키기 위함이라는 점이다. 이들 도시는 ‘더 많은 물동량’이나 ‘더 많은 항공편’만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대신 항만과 공항이 도시의 일상을 잠식하지 않도록 기능과 위치를 정교하게 재배치했다. 그 결과 바다는 다시 시민의 풍경이자 기억의 장소가 됐다.
OECD 해양도시들의 전환에서 중심에 놓인 기준은 효율보다 삶의 질이었다. 항만과 공항은 도시를 위해 존재해야지, 도시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공유됐다. 도시의 기반이 무너지면 산업 인프라도 지속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진해 신항 개발은 부산에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기항이 진해로 분산되면, 부산 앞바다는 더 이상 모든 산업의 무게를 홀로 떠안지 않아도 된다. 북항 재개발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고, 영도·오륙도·이기대와 같은 해안 공간은 시민과 관광객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산업의 바다에서 생활의 바다로, 부산 해안선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덕신공항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혀야 한다. 공항은 단순한 교통 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위상과 시간 감각을 바꾸는 인프라다. 부산에서 바로 세계로 출발할 수 있다는 감각, 서울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공간적 독립성은 시민의 이동 방식과 도시의 미래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덕신공항의 활주로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방향을 가늠하는 선이다.
진해신항과 가덕신공항은 부산의 해상·항공 관문 기능을 병행적으로 재편하며, 도시 구조에 중첩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 부산 시민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부산은 더 이상 산업을 버티는 도시가 아니라, 삶과 선택을 끌어당기는 도시로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호다.
부산의 하늘길과 바닷길이 다시 열리고 있는 지금은 하나의 출발선이다. 그러나 이 변화가 단순한 인프라 확장으로 남을지, 시민의 일상과 도시의 품격을 함께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항만과 공항을 어떻게 짓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가 도시의 공간 구조와 시민의 삶 속으로 어떻게 연결되는가다. 바닷길과 하늘길이 열리는 도시 부산은 지금, 성장의 크기와 함께 도시의 쓰임을 선택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