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통일교는 어떻게 대권을 꿈꾸게 됐나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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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부장

한일해저터널 집요하게 추진하던 통일교
근래 대권까지 운운하며 전방위 로비전
권력 노리는 종교의 '발호'는 정치의 위기
상대 인정하고, 타협하는 본령 일깨워야

한일해저터널이 특정 종교세력을 배후에 둔 뭔가 음습한 사업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두 나라를 바다 밑 터널로 연결해 물류를 일으키고, 동북아 대표 경제권을 만든다? 일견 그럴 듯하고, 실제 부산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이 ‘진짜 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 한 번쯤 했을 것 같다. 이 구상을 이끌어가는 한일해저터널 연구회만 봐도 부산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만한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느닷없는 ‘금품 로비’ 의혹이 터지기 전까지 한일해저터널은 멀쩡한 외양을 갖춘 지역의 오랜 비전 중 하나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산에서 한일해저터널 논쟁이 어떻게 전개돼왔는지 살펴봤는데, 내가 아는 건 빙산의 일각임을 깨달았다. 문선명 총재가 1981년 전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 평화 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하고, 그 출발점을 한일해저터널로 설정한 이후 통일교 신도들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현실화에 주력해왔다. 영불해저터널을 모델로 100년이 걸릴 각오로 끈덕지게 이 일을 해왔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힘든 헌신성이다.

통일교는 그 동안 각종 포럼, 이벤트를 만들어 전문가들을 포섭하고, 여야 정치인들을 한일해저터널의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평화 도로’, ‘피스로드’ 등을 키워드로 연결된 이 네트워크에는 전직 장·차관, 대사, 교수 등 화려한 인맥이 포진해있다. 정치인들에겐 표를 언급하고, 금전적 후원을 얘기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다루는 뒷배경에는 항상 통일교의 그림자가 자리했다

초기에만 해도 반일 정서와 맞물려 일본의 대륙 진출 길을 터준다는 반대 논리가 우세했던 한일해저터널은 2010년대 중반부터 부산시장 공약으로 추진되는 데까지 위상이 커졌다. 정당이 하나의 정책을 두고 이 정도로 노력을 했다면 못 이룰 게 없었을 것 같다. 흥미로운 지점은 한일해저터널의 ‘스피커’들이 1년 전부터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북극항로 개척을 피스로드와 연계한 새 비전으로 적극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궤도에 오른 한일해저터널의 성과에 고무된 것일까? 통일교는 얼마 전부터 이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리 목표는 청와대에 보좌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우리에게) 국회의원 공천권을 줘야 한다”, “국회의원 공천, 청와대 진출 등 기반을 다져가면 2027년 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지 않겠나”. 4년 전 통일교 간부들이 나눈 대화라고 한다. 지금 보니 마냥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겠다. 한일해저터널에 보인 집요함, 성실함이 이어졌다면 지금쯤 권력 핵심부에 통일교 인맥 몇 명은 거뜬히 진입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독생녀’라고 주장하는 교주 1인을 신적 존재로 여기는 비정상적인 종교 세력이 권력의 정점에서 국가 정책을 흔들 수 있다면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근래 들어 종교가 헌법에도 적시된 정교 분리라는 오랜 원칙을 깨고 현실 정치에 개입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즈음에는 가히 ‘발호’(跋扈)라고 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극단화하는 진영 대립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넘보는 이들 종교 세력 중에는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유사 기독교 종파가 두드러진다. 문제는 전광훈 류의 사이비 종파를 넘어 차별금지법 등을 매개로 일부지만 소위 정통파 기독교단까지 이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1948년 ‘제정 헌법’부터 이어진 정교 분리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퇴행이다.

이런 종교의 퇴행은 정치의 타락이 길을 열어준 측면이 있다. 결집된 소수 강경 지지층이 당내 언로를 장악하고, 반대파에는 문자 폭탄과 댓글로 집단린치를 가해 이견의 싹을 잘라버린다. 민주 정당을 표방하지만, 그 배타성이 일부 종교 집단의 행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특히 당원이 주인이라는 논리로 매달 1000원 내는 당원들을 누가 많이 모집하느냐에 당내 권력의 향배가 갈린다. 막강한 인적, 물적 동원력을 가진 사이비 종교가 합법적인 루트로 정당을 장악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 셈이다. 내부 권력 전쟁에 매몰돼 극단 세력과의 결탁도 마다 않는 정당의 비틀린 자화상이 이번 통일교 사태를 통해 또 한 번 여실히 드러났다.

통일교 사태는 우리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또 다른 위기 신호다. 자정 기능을 상실한 정치와 순수성을 잃은 종교가 기묘하게 결합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 극단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추구하는 여야 정당 내 상식적인 사람들의 각성과 분발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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