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피노키오
짐 다인, 희망으로 나아가는 소년, 브론즈, 670×437×930cm, 2013. 김경진 제공
지난여름 해운대 센텀을 지나다 커다란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짐 다인 작품인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소년’이라는 제목이 붙은 공공조형물이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모습인데 얼굴은 약간 험상궂다. 이것을 떠올리게 된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흔한 표현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는 시기라 지나간 많은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짐 다인은 미국에서 1935년 태어난 팝 아티스트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1958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로 청계천에 소라처럼 생긴 조형물을 설치한 클래스 올든버그(Claes Oldenburg), 백남준과 전위음악으로 활동했던 존 케이지 등 여러 예술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 짐 다인은 이들과 당시 미국에서 주류였던 추상표현주의를 탈피하려는 시도로 ‘해프닝’을 발표하면서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부모가 철물점을 운영했던 영향인지 툴박스, 해머, 실내 가운, 신발과 같은 생활 속의 사물을 화면으로 끌어들였고 특히 하트는 그의 대표적인 소재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일상 혹은 일반적인 관습이나 관념대로 사물과 사건을 이해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전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표현한다. 이런 그의 방식은 우리에게 친숙했던 사물을 이상하고 낯설게 만들어 오히려 더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 하트는 전 세계 공통으로 따뜻한 이미지를 가진 기호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고, 제작한 수많은 작품에서는 그런 온기는 찾기 어렵다.
동서대 센텀캠퍼스 광장에 세워진 대형 조형물 피노키오에서도 짐 다인의 이런 독특한 예술 형식을 엿볼 수 있다. 동화 속 피노키오는 비록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지만 대개 어렸을 적 우리는 그 동화에서 기괴하거나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피노키오 얼굴이 귀엽거나 친숙하기보다는 어딘지 어색하고 다가가기 힘든 인상을 받는다. 이 점이 바로 짐 다인의 예술 형식이다.
그러나 그건 짐 다인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고 우리는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위풍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힘차게 팔을 흔들며 발걸음 옮기는 피노키오를 보며 다가오는 새해를 꿈꾸는 것도 우리 권리이다. 앞에 어떤 일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다시 또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할 존재이다. 비록 동화 속 주인공이지만 나에게 희망을 준다면 약간 험상궂은 얼굴로 표현되었어도 상관없다. 푸시킨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을 가진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라는 브래디 미카코의 책이 눈에 든다. 책꽂이에서 몇 년째 그대로인 이 책을 이번 주말에는 읽으려 한다. 또 속는 셈 치고 말이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