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칼럼] <부산일보>와 나
논설위원
지역 대표 언론 창간 80주년
광복·전쟁·산업화 격변 동반자
지면 생명력 짧아 보이지만
독자·지역 관계의 힘 오래 가
오늘 독자, 내일 기사 주인공
신문 이야기에 마침표 없어
‘권력을 남용하여 비위를 은폐하는 버릇을 그대로 두고서는 부패, 부정의 근절은 백년하청… 정치인으로서의 매장은 물론, 사유재산을 즉각 몰수….’
1965년 새해 벽두에 부산일보에 게재된 ‘정치인이라면’ 제목의 세평이 자못 날카롭다. 칼럼의 주인공은 요산(樂山) 김정한 선생. 부산이 낳은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으로만 여기면 요산의 넓은 품새를 놓친다. 그는 권력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실천형 지식인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6년 발표한 ‘사하촌’에서 식민지 백성에 가해지는 구조적인 수탈을 고발했던 요산은 광복 이후에도 현실 참여 작품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는 부산대 국문학과 교수직을 떠나 부산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 중이던 1961년 5·16 쿠데타로 당국의 수배령이 떨어져 쫓기기까지 한다. 논설실 복귀 후에도 비판적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요산이 강단 대신 언론에, 소설이 아닌 현실 속으로 파고든 건 당시 부산일보가 지역민 소통의 유력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요산의 유지는 부산일보 주최 요산김정한문학상이 1984년 제정된 이래 후배 문인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부산일보는 창간 80주년을 맞는다. 신문은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의 격변으로 요동쳤던 시대의 동반자였다. ‘특정 사상이나 주장에 매몰되지 않되, 주관적 견해 없이 기회만 엿보는 기회주의도 거부한다.’ 1946년 9월 10일 창간호에 실린 발행인 칼럼 ‘신문과 소원’은 ‘중정을 관철한다’는 부산일보 사시(社是)의 뿌리였다. 지역에 천착한 80년 역사를 ‘부산일보와 나’라는 관계론에 대입해 보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힘 있는 자들에게는 껄끄럽기 짝이 없는 존재였던 반면, 지역과 약자를 대변하고 기회와 구원의 손길까지 건네는 후견자였다.
정론직필에 충실하면 핍박과 수난을 피할 수 없는 불행한 시대가 있었다. 1959년 진보당 당수 조봉암에 사형이 선고되고 형이 집행되자 인권 침해를 비판하는 칼럼을 실어 호된 곤욕을 치른 게 대표적 사례다. 신문이 발행되자 수사기관이 득달같이 신문사에 들이닥친 것인데, 실은 그전부터 민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한 논조를 문제 삼으려 벼르던 참이었다. 이듬해에는 비판 보도에 불만을 품은 한 대학 교수가 학생들을 동원해 편집국을 점거하고 편집국장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질러 신문 발행이 무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언론 자유가 불편했던 이들에게 부산일보는 눈엣가시였다.
성공과 반전의 인생 드라마가 만들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에 밀려 변방이었던 한국 바둑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주역은 ‘싸움의 신’ 조훈현 기사다. 그 계기가 1974년 부산일보사 주최 최고위전이었다. 당시 일본 유학 중 일시 귀국한 청년 조훈현은 채소 행상으로 생계를 잇는 가정 형편에 충격을 받아 한량 생활을 접고 돈을 버는 프로 기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큰 상금이 걸린 최고위전 우승은 국내 타이틀 석권으로 이어지며 유아독존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황제’가 무너진 곳 역시 최고위전이었다. 1990년 전성기였던 37세 스승은 15세 제자 이창호에게 꺾여 정상에서 추락하고 만다. 청년 조훈현의 포효와 무관의 제왕으로 전락한 순간순간은 부산일보 지면에 생생히 남아 있다. 조훈현 기사에게 부산일보의 기억은 영욕이 겹친다.
까까머리 중2 소년 노무현은 부산일보 사장이 설립한 부일장학회에 선발되고 이후 부산상고로 도시 유학까지 이어진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경남 진영의 깡촌에서 고구마 농사와 취로 활동으로 근근이 생계를 잇던 집안 형편으로 꿈꾸지 못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판사를 그만두고 인권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노 전 대통령은 1981년부터 부산일보 지면에서 생활 법률 상담으로 활약한다. 전셋돈 분쟁, 곗돈 사기 등 서민들에겐 큰 근심거리였지만, 근엄한 법조계에서는 주목하지 않던 일이었다. 빈촌의 소년이 꿈을 잃지 않게 이끌어 준 장학금. 노 전 대통령의 삶에서 부일장학회는 삶의 궤적을 바꾼 인연의 고리였다.
동네 작은 김밥 가게가 부산일보 지면에 맛집으로 소개된 이후 전국 500곳에 체인점을 둔 고봉민김밥으로 발전하고 5억 원 이상의 기부로 이어졌다. 보도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좋은 인연이 선순환되는 사례는 부산일보 신뢰의 바탕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의 유망 업체를 지원하는 ‘기업 살리기 프로젝트’ 기획 등으로 계속되고 있다.
지면의 생명력은 짧아 보이지만, 지면에 담긴 관계에는 시한이 없다. 창간 80년의 진정한 힘은 부산일보가 지역과 독자들과 맺은 관계의 축적에 있다. 질문하고 기록하고 매개하는 보도를 통해 새로운 관계가 탄생한다. 오늘의 독자가 내일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부산일보와 나’의 이야기에는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