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꺼지지 않는 이혜훈 의혹, 통합 취지마저 퇴색된다
인턴 폭언 갑질에 배우자 투기 의혹
협치 앞세운 발탁, 여야 갈등만 증폭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난 2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했을 당시엔 진영을 넘나드는 통합 인사라는 평가와 지방선거를 의식한 선거 전략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이 후보자가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에게 폭언과 갑질을 일삼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센 상황이다. 공개된 녹취록 속의 폭언은 해명이나 사과로 덮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설령 협치와 통합을 위한 발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취지마저 퇴색됐다.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국회의원이던 2017년 본인의 이름이 언급된 언론 기사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턴 직원을 질책했다. 녹취록엔 해당 직원에게 “말 못 알아듣느냐” “너 아이큐가 한자리냐” “내가 정말 널 죽였으면 좋겠다” 등의 폭언을 하고 고성을 지르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직원은 사안이 발생한 후 보름 만에 의원실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이 후보자 측이 사과했지만 그의 폭언과 갑질은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일을 배우는 인턴 직원에게 심한 모멸감을 준 것은 인성마저 의심케 한다. 특히 가뜩이나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갑질을 일삼는 인물은 장관 자격이 없다.
더욱이 이 후보자는 갑질뿐만 아니라 보좌진들에게 비판 댓글을 지우게 하고 상호 감시를 지시했다는 등의 의혹으로 경찰에 고발된 상태다. 배우자가 인천 영종도 인근 토지를 대규모 매입했다는 ‘부동산 투기 의혹’도 받고 있다. 국힘은 강도 높은 인사청문회를 예고했다. 국힘은 “간사 협의가 시작되면 이틀간 청문회를 진행하는 방안을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틀 청문회’는 이 후보자의 갑질이 큰 사회적 파장을 야기한 만큼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당초 야당 인물이라는 점을 들어 국힘 논리에 반박하는 등 여야 공방만 증폭되고 있다. 통합을 위한 발탁이 되레 통합을 저해하는 셈이다.
기획예산처 발족은 새판을 짜겠다는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따른 것이다. 이 자리에 이념 구분 없이 인재를 파격적으로 발탁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통합·실용 인사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만하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을 총괄하는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에겐 남다른 조정 능력이 요구된다. 특히 본인에게 하자가 없어야 하고 도덕적 완결성도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이 후보자는 이미 기획예산처 장관 직무를 수행하는 데 부적합하다. 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더라도 정권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지명을 철회하거나 이 후보자 본인이 자신의 거취를 하루빨리 결정하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