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공모전-고등부 해양수필 우수상] 바다를 품은 아이 / 박수현
바다는 언제나 나를 품어주었다. 나의 유년시절은 온통 거제의 바다와 함께였다. 나의 아빠는 거제 지역에 자리 잡은 삼성중공업에서 배를 만들 때 필요한 용접을 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배가 문제가 없는지 시운전을 할 때도 배에 올라 자신이 맡은 분야를 확인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빠가 시운전을 갈 때면 나는 내 한 쪽 어딘가 망가져 작동이 되지 않는 것처럼 절망을 느꼈다. 아빠는 그만큼 나의 어린 시절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나의 또 다른 자아 같았다. 그런 아빠와 나의 공통점은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아낀다는 것이다.
아빠와 엄마는 대전 사람으로 아빠의 직장 때문에 거제로 내려와서 오롯이 둘이서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고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노력에 가장 큰 부분은 나와 내 동생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엄마는 아이들은 자연에서 뒹굴며 책을 보며 꿈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우리 남매를 길렀다. 그런 엄마에게 거제도는 최고의 자연 놀이터였다.
남해의 끝자락에 위치한 거제는 30분만 차로 이동을 하면 어디서든 바다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다른 지역과 다르게 거제에는 모래 해변보다 몽돌 해변이 많고 유명하다. 모래해변과는 다르게 바닷물이 몽돌에 부딪히는 소리는 경쾌하고 리드미컬하다. 농소몽돌, 학동몽돌, 여차몽돌 등 하늘처럼 넓고 푸르른 바다가 많아 부모님은 우리 남매를 차에 태우고 주말마다 바다로 향했다.
그래서 그늘막 텐트는 하루도 빠짐없이 차 트렁크에 실려 있었고 바다로 가는 날에 날씨에 따라 주식과 간식을 챙겼다. 햇볕이 강열한 여름엔 수영복과 비치타월을 챙겨서 몽돌해변에 자리를 잡으면 그 하루는 오로지 바다가 놀이터였다. 바다는 말도 없이 우리를 기다린 것처럼 맑고 넓었다. 그래서 동생과 튜브는 물론이고 물안경과 서핑보드까지 가지고 바다를 가는 날은 우리가 바다를 놓아주기 전에 바다는 우리를 돌려보내지 못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봄과 가을처럼 바람이 좋은 날은 온 가족이 낚싯대를 둘러매는 날이었다. 호래기 낚시나 무늬 오징어 낚시는 낚싯대를 잡아채는 그 녀석들의 힘이 좋아서 활기찼고 고등어나 전갱이를 잡은 날에는 끌어올리는 손의 떨림이 신나서 낚싯대가 부서져라 고등어와 힘겨루기를 한 날도 있었다.
한 번은 낚싯대로 정말 처음 보는 생물을 잡은 적이 있었다. 시커멓고 둥글고 큰 돌멩이처럼 생겼는데 움직이기까지 했다. 도대체 이 괴상한 생명체는 뭔가 싶어 낚시 통 안에 넣고 구경을 했고 엄마는 검색을 했다. 그 시커멓고 둥글고 큰 돌멩이 같은 그 녀석은 군소라는 녀석이었다. 군소는 먹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바다에서 살게 돌려보낸다고 했다. 아빠는 아들이 남들이 잡지 못하는 것까지 잡아 보았다며 엄지를 척 치켜세워주었다. 그리고 그 군소를 다시 바다로 돌려 보내주었다.
아빠는 내가 잡은 그 군소를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다며 나를 낚시의 신이라고 치켜세워 주셨다. 그리고 아빠는 다시 내 낚싯대에 기다랗고 굵은 청개비를 끼워주고 버너에 냄비를 올려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바다와 낚싯대, 그리고 처음 잡아본 군소와 라면이 있는 바다는 나에게 또 하나의 지붕이 없는 집이었다.
그런데 이런 재미난 놀이터인 바다에서 놀아도 한 쪽 어딘가 망가진 것 같이 어두운 날이 있었다. 그날이 아빠가 시운전을 가는 날이다. 여러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배를 주문한 회사에 인도하기 전에 바다에 띄워 제대로 운영이 되는지 살피러 나가는 일을 시운전이라고 한다. 아빠 역시도 시운전 부서에 딸린 용접부서였기에 배를 타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동안 배를 타고 나가서 바다 한가운데 떠있어야 했다.
물론 아빠가 시운전을 나간다고 해서 엄마가 우리 남매를 집에만 두는 것도 아니었다. 아빠가 없는 대신 무거운 짐을 제하고 엄마와도 바다를 누비러 다녔다. 하지만 커다란 아빠의 몸을 타고 아빠와 몸으로 뒹굴면서 느끼는 바다를 엄마는 감당하지 못했다. 아빠가 없는 바다 놀이터에서 엄마가 놀아준다고 하지만 엄마는 체력적으로 내 온몸과 바다를 감당하기 힘들어 하셨다. 그리고 여동생도 있어서 오롯이 나와 놀아주질 못했다. 그래서 아빠가 없는 바다는 앙꼬 빠진 찐빵처럼 허전하고 심심한 맛이 났다. 바다 놀이터에 몸을 담근 나 역시 어느 한 쪽이 망가진 것처럼 삐거덕 거리는 듯 했다.
이렇게 아빠와의 추억으로 가득한 바다가 너무 미워 울어버린 날이 있었다. 내가 10살이 되던 어린이 날, 나는 처음으로 아빠가 다니는 회사를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어린이날을 기념해서 아빠가 다니는 회사에서 아이들에게 아빠들의 직장을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아빠의 소중함을 느끼라고 1시간 가량 회사를 둘러볼 투어를 준비한 것이었다.
그날도 아빠는 일이 많다며 출근을 하셨기에 엄마는 나와 내 동생에게 모자를 씌우고 운동화를 신기 손을 잡고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아빠 회사를 구경할 기회는 흔하지 않다. 삼성중공업이란 큰 회사가 많은 아이들을 위해 인력을 배치하고 어린이날 과자 선물과 음료 등을 준비해서 코스마다 나누어 주고 무더운 날씨를 대비해서 아이스크림도 준비하고 풍선도 불어주며 그야말로 축제를 방불케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화려하고 흔하지 않는 그날, 나는 아빠를 보며 펑펑 울었다. 그리고 나의 놀이터이자 또 다른 집인 바다가 미워졌다.
그날 엄마와 나, 내 동생은 출발 신호를 시작으로 사람들을 따라 아빠가 다니는
회사 안으로 들어가 배 만드는 작업을 구경하며 아이스크림도 먹고 풍선도 받아들고 신이 났다. 5월 초지만 더운 날씨에 걷다보니 땀은 났지만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들도 많고 배를 만드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해서 걷는 게 힘들지 않았다. 도대체 저 커다란 쇳덩어리 배가 어떻게 바다에 뜰까? 신기하기도 하고 이런 배를 아빠도 같이 만든다고 생각하니 우리 아빠가 최고의 기술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30~40분쯤 걸어서 3도크 안으로 진입할 때 커다란 불꽃이 펑펑 튀며 쇠를 다듬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눈길을 끌었다. 용접봉을 들고 불꽃을 튀기며 용접을 하는 모습이 마치 태양과 맞설 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처럼 비장해 보이기도 했다. 용접을 할 때마다 튀어지는 불꽃의 색도 달라서 유달리 나는 그곳에서 오래 머물러 구경을 했다. 커다란 용접 장갑과 용접 마스크가 신기했지만 더운 날씨에도 둘러 입은 두꺼운 앞치마가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불꽃이 사그라 들고 마스크를 벗는 사람들 틈에서 아빠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처음엔 아빠의 얼굴인지 몰라 한참을 쳐다보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는 언제나 말끔하고 깔끔한 회사 옷을 입고 환한 얼굴로 “아빠 왔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 아빠를 향해 뛰어가는 나를 안아주셨다. 그런데 용접마스크를 벗은 아빠에 얼굴은 땀인지 비인지 모를 것들이 흘려 내리고 새까맣고 윤기 있던 머리카락은 그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미역을 붙여 놓은 것 같았다. 말끔한 아빠 얼굴에서 보이지 않던 깊게 패인 주름은 아빠를 한층 더 늙어 보이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얼굴은 익히다 만 빨간 홍당무 같았다.
아빠의 그 모습에 나는 그 자리에서 큰소리로 울어버렸다. 엄마가 뭐라고 한 것 같은데 그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울어버렸다. 나에게 아빠는 바다 놀이터의 대장이었다. 수영도 잘하고 물고기도 낚아주며 바다에서 온종일 나와 놀아주는 나만의 슈퍼맨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멋진 바다 놀이터 대장이, 나의 슈퍼맨이 왜 저런 모습으로 여기에 서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게 그냥 울어버렸다.
이후 어떻게 집에 왔는지 생각은 나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집이었다. 무슨 마음이었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또 울며 아빠를 부르기 시작했다. 놀란 엄마가 먼저 달려와서 아빠를 불렀고 아빠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다가와 내 이마를 짚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아빠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는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아빠 다시는 그 회사 가지마. 그 장갑도 끼지 말고 그 앞치마도 입지 마. 그리고 배 타고 일하러 나가는 것도 너무 싫어. 그냥 그 회사 안가면 좋겠어.”
왜 그랬을까? 가끔씩 바다로 시운전을 나가는 아빠가 싫었다. 아빠가 없는 바다가 싫었다. 아빠를 데리고 가버리는 배를 멀리 멀리 보내주는 바다도 미웠다. 그런데 온몸으로 땀을 흘리며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는 아빠를 보고 더 싫었던 것 같다. 왜 나의 아빠가 저런 모습으로 저런 힘든 일을 하고 우리 가족을 두고 배를 타고 나가야 하는지 어린 마음에 그런 아빠도 밉고 아빠를 데려가는 배와 바다도 미웠던 것 같다.
그런데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던 아빠가 나를 꼭 안고 아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들, 아빠는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용접이라는 기술을 배우고 그 중에서도 고급 용접 기술을 배워서 지금 다니는 회사에 취직을 했어.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니까. 그런데 아빠는 이 회사가 나에게 용접을 할 일자리를 주어서 고맙고 또 회사에서 내가 가진 기술로 배를 만들 수 있어서 행복해. 물론 시운전을 가서 가족들과 잠깐씩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아빠와 회사 사람들이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든 배를 타고 다시 우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잖아. 멀리 일본까지 배를 타고 나가도 고마운 바다가 잔잔하게 거제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길을 내어주니 돌아올 수 있어. 그러면 회사에서 아빠에게 배를 열심히 만드느라 고생했다고 월급도 많이 주잖아. 그 월급으로 우리 수현이랑 바다에 띄울 고무보트도 샀고 낚싯대에 끼울 청개비와 라면도 사서 그늘막을 펼쳐 놓고 하루 종일 바다에서 놀다 올 수 있잖아. 그래서 아빠는 바다가 고마워. 바다가 있어서 배를 만들 수 있는 직장에 취직을 했고 만들어진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도 안전하게 다시 돌아오잖아. 그래서 아빠에게 배와 바다는 우리가족의 보금자리를 지켜주는 울타리고 아빠가 하는 힘든 용접은 그 울타리를 만드는 기술이야.”
아빠와 엄마는 늘 내가 이해를 하던 하지 못하던 꼼꼼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날도 아빠는 내가 울어버린 이유를 아는 것처럼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빠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나는 나의 슈퍼 히어로를 꼭 안아주었다. 나에게 바다는 아빠와의 추억들이 가득한 놀이터이자 또 다른 집이었지만 아빠에게 바다는 경제적 여유를 주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안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그날 이후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변한 게 있다면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그 바다를 지키기 위해 해변 줍킹이나 해변 정화 활동으로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자연 놀이터가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소중한 공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고 시운전을 다니는 아빠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내어주는 바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해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집게를 들고 포대를 둘러맨 체 해변을 청소하다 보면 어린 시절 아빠를 데려가는 그 바다가 미웠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평선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늘 불안했다. 아빠를 싣고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버리는 그 배가 다시 돌아올 때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그 바다가 다시는 나의 아빠를 데려가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수평선 너머에 가족의 생계를 이어주는 수많은 아빠들의 삶이 있고 그 삶을 발판 삼아 자신의 꿈을 쫓아 달리는 나 같은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가 되어준 고마운 바다가 언제나 그렇게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줄 수 있게 나는 바다를 청소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몸으로 마음으로 바다를 품은 열일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