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공모전-고등부 해양수필 우수상] 조개껍데기 / 손민성
목뒤로 납작한 땀이 주르륵 흘렀다. 에어컨을 틀지 않은 집은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도 찜통처럼 더웠다. 이번 주도 열대야가 이어질 거라는 기사를 읽으니,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맨살과 맞닿아서 축축해진 의자 방석에 작은 틈이 생기도록, 비스듬히 앉은 자세를 바꿨다. 일어나자마자 소셜미디어를 너무 많이 봐서 머릿속이 꽉 막힌 듯했다. 핸드폰에 뜨는 광고는 온통 살충제와 땀 관리 제품뿐이었다. 한창 극에 다다른 8월 중순의 여름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덮고 누런빛이 아른거리는 형광등을 보았다. 불투명한 형광등 너머로 죽은 하루살이의 빈 몸이 무수히 많이 보였다. 학원 숙제를 못 할 수밖에 없는 핑계는 없을까, 개학일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반납 기간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한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성인이 된다면 나는 무얼 하면서 살아야 할까. 여러 생각이 무성한 나뭇잎처럼 습한 바람에 휘날렸다. 이즈음 나는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대학교, 입시, 다가올 수능이 나를 짓눌렀다. 친구들과도 그뿐인 대화였다. 모두 앞날에 대해 초조하고, 막연하고 막막했다.
나는 책상으로 눈을 옮겼다. 그 위에는 표지가 벗겨진 문제집과 소설책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학 입시가 끝나면 문제집을 전부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버티는 중이었다. 스무 살이 되면 연두색 곰돌이 벽지로 둘러싸인 이 방을 떠나, 단정한 자취방에 살고 싶다는 까마득한 생각도 지금을 견디게 해줬다. 미지근한 무기력 속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방 너머로 밥 먹으라는 엄마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머리를 높게 묶고 걸음을 옮겼다. 홍국쌀을 넣어 붉은 밥과, 달걀말이, 시금치 된장국, 언제나 비슷한 아침을 먹었다. 그러던 그때 아빠가 특유의 붕 뜬 목소리로 ‘바다에 가자’고 말했다. 일요일이었고, 어딘가에 갈 때 우리 가족은 계획을 미리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오랜만에 바다가 보고 싶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마지막 바다는 약 1년 6개월 전, 태안의 겨울 바다였다. 모래사장 위에 새하얀 눈이 두툼히 쌓여있었다. 먼저 온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눈사람이 우두커니 나를 반겼던 그곳. 나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눈사람은 녹았겠지. 바다로 갔으려나, 하늘로 갔으려나….
“10시 30분까지 준비해.”
엄마가 일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이번엔 태안이 아닌, 대천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한없이 하얀 햇볕이 쨍하게 내리쬈다. 그 아래 수많은 섬광을 머금은 바다는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시원해 보였고, 둔탁하면서도 부드러워 보였다. 소금기 어린 바다 향이 코끝에 실렸다. 먼저 온 사람들이 파도 속에서 놀고 있었다. 끊이질 않는 그들의 웃음과 함께 파도 소리가 귓가에 넘쳐 들어왔다.
바다다. 뺨을 스치는 바닷바람에 실감이 났다. 바다는 너무도 익숙한 곳이지만, 올 때마다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시야에 감탄하게 됐다.
우리 가족은 근처에 해물 칼국수를 파는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다시 바다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해변과 인도의 경계 역할을 하는 층고가 높은 돌계단을 힘겹게 내려갔다. 슬리퍼가 자꾸 벗겨져서 신고 오지 않은 흰색 샌들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슬리퍼가 미끄러지듯 두세 번 벗겨지고서야 마침내 고운 해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모래 위에서 발이 살며시 꺼져, 발바닥에 모래가 들어왔다. 발가락이 간지러웠다.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찍었다. 아빠는 두 걸음 뒤에서 나와 나를 찍는 엄마를 찍었다. 솜처럼 찢어진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이 예뻤다. 구름은 바람에 천천히 옆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바다에 짧게 발 담그고, 파라솔 아래에 있겠다고 했다. 혼자 남은 나는 파도가 오면 조금 뒤로 멀어지고, 물러가면 앞으로 총총 걸어갔다. 바닷물이 지나간 자리는 부드럽고 촉촉하고 연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본격적으로 바다에 발을 담갔다. 시원한 걸 넘어 털이 곤두설 정도로 차가웠다.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이었다. 여분의 옷을 가져오지 않아서 무릎까지만 잠길 때까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머리가 맑아지는 듯했다. 배에 튜브를 낀 채 더 깊이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끝없이 이어진 바다의 수평선을 보았다. 근래에 허리가 부서질 듯 아팠던지라, 나는 최대한 가슴을 펴고 곧게 서 있었다. 규칙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파도에 휘청이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줬다. 철썩, 철썩-.
나는 한 방울 바다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방울 바다가 된다면 곁에 있는 다른 물방울들과 함께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눈물을 닮은 그 밀도 높은 파랑이 갑자기 부러웠다. 나는 손바닥을 모아 바닷물을 들어 올렸다. 다 함께 한없이 무거워져 불안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을 텐데.
거세게 밀려든 파도에 결국 나는 바지가 젖었다. 나는 조금 쉴 겸, 파라솔 그늘 밑 돗자리를 펴고 쉬는 부모님에게 가기로 했다.
부드득. 모래사장을 걷던 중 슬리퍼 아래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발을 들었다. 산산조각 난 조개껍데기가 보였다. 바짓자락에서 바닷물이 한두 방울 떨어졌다.
순간 밀도 높은 바닷바람이 불어와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모래사장을 보았다. 눈앞엔 소금기 어린 몰랑한 생명을 머금었을 단단한 흰 등골이 수없이 많았다. 지킬 게 사라져 남은 텅 빈 허무가 그렇게나 많이 나뒹굴 수 있다니. 태양 빛에 반사되어 내 눈을 찌르고 있었다.
무른 살이 다치지 않도록 아꼈을 생명이 빠져나가고, 남은 자리는 얼마나 슬픈 것이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입을 꽉 다물며 지켰을 알맹이가 나간 세상에서 상처받으면 조개껍데기는 얼마나 아플까. 세상에 버려지면 얼마나 아까워할까. 세상이 내치면 얼마나 슬피 울까. 그 맑은 속살보다 더.
엄마와 아빠가 젊었을 적 같이 찍은 사진이 뇌리를 스쳤다. 엄마는 말랐고 기미 한 점 없이 피부가 매끈했다. 주름 한 획 없는 아빠의 얼굴은 수줍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둘은 남들처럼 환했다. 피부에 하얀 광이 났다. 나는 엄마 아빠의 시간은 갉아먹으면서까지 자랄 가치가 있던 것인가.
바다에서 나는 찬란했던 젊음을 보았다. 이제는 누렇고, 거칠게 불순물이 끼고, 다홍색 줄무늬가 있고, 그을린 햇볕 자국이 남은 조게 껍데기를. 바다에는 많았다, 그런 것이. 바다 속엔 가라앉은 그것들이 더욱 많을 거라고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나는 바다를 보며 속으로 속삭였다. ‘바다야, 이들을 넘실넘실 데려가 줘.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줘. 고통 없이, 부드럽게 부서지게 해줘. 네 품에서 빛나는 공허를 안아줘.’
허리를 굽혀 나는 조개껍데기 하나를 챙겼다. 저 멀리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나는 부모님에게 달려갔다. 따가운 햇빛에 빨갛게 탄 피부가 따끔거렸다.
나는 돗자리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양옆으로 엄마 아빠가 있었고, 매 순간이 참 평화로웠다. 파도가 밀려오는 잔잔한 소리가 묘하게 안심됐다. 파도의 흰 거품이며, 파도와 파도가 부딪쳐 당도한 포말의 향이며, 크고 작은 물결이 다가오는 모습이며, 나는 이 순간이 마음에 들어서 벌써 어느 과거의 추억처럼 느껴졌다.
바다의 너머에는 또다시 바다가, 그 바다의 너머에는 또 또다시 바다가…. 입시가 끝나면 다시 바다를 보러 오자고 나는 다짐했다. 그때는 나아진 마음으로 더 마음껏 바다를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 그다음 바다를 볼 때면 난 조금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무른 알맹이가 아마 세상에 맞닿는 껍데기가 될 준비를 하고 있을 시기일 테니.
나는 바다에 온몸을 던지고 싶다는 충동을 억눌렀다. 바다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과 수많은 해양 생명체를 모두 포용하고도 자유로웠다. 무엇과 비교할 수 없게 넓고도 깊었다.
아빠는 나를 다 키우면 바닷가 근처에서 집을 사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틈틈이 거실 텔레비전을 통해 동영상 플렛폼에 접속하여 새집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곤 했다. 영상은 집의 평수, 구조, 근처 전망 등을 차근차근 말했다. 나는 가끔 아빠 옆에 앉아 같이 그 영상을 보았다. 아빠는 나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아빠가 나중에 저런 데 살면, 찾아와 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트보다 저렇게 바다가 보이는 전원주택이 더 좋을 터였다. 나는 아빠를 보았다. 늘어진 눈꺼풀 살 아래, 아빠의 눈동자 속에 몽글몽글한 반짝거림이 있었다. 단순히 어두운 거실에서 텔레비전의 빛을 보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아빠가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앙상한 팔목이, 얇은 피부가, 거뭇거뭇 잡티가 인 얼굴의 아빠가.
“당연히 가야지.”
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울적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아빠에게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빠는 옅은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며 잔주름이 많았다. 문득 아빠가 언제 이렇게 늙은 건지, 가슴이 답답했다. 이제 곧 내 나이가 아빠와 함께 늙어가는 나이가 된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아빠는 항상 시간이 참 빠르다고 이야기했다.
해안가 근처 포장마차에서 회오리 감자를 하나 사서 먹으며 집으로 향했다. 회오리 감자는 먹기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먹은 만큼 정말 맛있었다.
몸 전체가 노곤했다. 자동차 창밖으로 해가 차츰 기울어졌다. 구름을 포함한 하늘 밑이 온통 붉었다. 불현듯 노을을 오랜만에 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이 시간에는 학원 혹은 독서실에 있거나, 커튼을 다 내린 방 안에만 누워 있었다. 그런 나의 시간 동안 해는 저렇게 저물고 있었다. 지금 쏟아지는 붉음을 품은 바다의 모습도 분명 아름다울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차에 블루투스를 연결하여 틀어놓았던 아빠의 플레이리스트가 끝났다. 나는 아빠 폰으로 다른 노래를 틀었다. 차에 타면서부터 계속 되뇌던 ‘조개껍질 묶어’ 였다. 그 곡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예회로 우쿨렐레 연주와 함께 불렀던 곡이었다. 저무는 차 안에 애틋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 소리,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질 않네, 랄랄랄 라랄라라, 랄랄라 라랄라라.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운전석과 보조석에 앉은 아빠와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부모님의 바다 같은 마음을 어떻게 받고 돌려드릴 수 있을까. 닮을 수 없는 너른 마음에 대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일단 나는 현재 내 상황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결심했다. 손바닥 속 단단하고 투박한 조개껍데기의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조개껍데기의 울퉁불퉁한 결을 쓰다듬었다. 차 안에 바다향이 맴도는 듯했다. 출렁이는 여운 속에서 졸음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