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공모전-고등부 해양수필 우수상] 잔류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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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같은 창틀 사이로 하늘이 파랗게 퍼져있다. 그 아래 수 놓인 듯 빛나는 푸르름의 정체는 바다이리라. 바다에는 하늘이 선명히 담겨있는데, 하늘에는 그저 하늘일 뿐이니 마치 가여운 짝사랑과 같다. 나는 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이 풍경을 매우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그 어떤 비단을 가져와 고이 주름잡아 본들, 저 넘실거리는 파도의 일부조차도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한눈에 담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내가 사랑하는 이곳의 이름은 오륙도. 잿빛 가득한 도심에서 푸르른 이곳에 이사 온 지도 어언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내 푸른 사랑의 얄팍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단 한 번도 저 바다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저 청량함에 빠져본 적도, 발을 담가본 적도 없다. 두렵기 때문이다. 왜 때문에 두려운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멀리서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불어오는 바다내음은 좋지만, 조금만이라도 다가가는 순간 보이지 않는 곳까지 끌려내려 가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인 채로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여느 아침과 다를 것 없이, 커튼 휘날리는 바람 사이로 짠 내음이 코를 간지럽히고 요란한 뱃고동 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게으른 몸을 일으키지도 않은 채, 고개를 젖혀 커튼이 살짝 걷힌 창 밖을 바라보았다. 당장 신선이 나와도 놀라지 않을 만한 해무가 창 밖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고요한 새벽의 바다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몸을 겨우겨우 일으켰다. 어기적거리며 침대를 뒹굴다가 폰을 들여다보니 왠 모르는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것도 아주 친근한 말투였다. ‘누구세요?’라는 나의 답장에 오히려 상대가 적잖이 당황한 듯 싶었다. 얼마간의 대화 뒤에야 나는 상대방이 내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로 이사 간 뒤 연락이 끊긴, 그럼에도 여전히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부산으로 며칠 동안 와 있는다고 했다. 반가움을 한 점도 숨기지 않은 채 만날 날을 잡았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친구가 오륙도 앞바다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고등학생이나 돼서 바다가 무서우니 약속장소를 바꾸자는 말은 부끄러울 뿐더러, 더욱이 내가 그 장소를 반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바다에 대한 친구의 향수가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그 제안을 수락해 버렸다. 거의 타의에 가까운 동기였으나, 이번에야말로 바다에 가까이 다가가 바다를 느껴보자고 결심하였다. 그렇게 걱정과 설렘을 모두 가득 안은 채 수일이 지나고, 결국 고대하던 약속일이 되었다.

오륙도 앞바다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걸어갔는데, 해안가와 가까워질 수록 선명해지는 모습에 기대가 더 커졌다. 그러나 돌무더기가 가득한 오륙도 앞 바다의 모습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아마 모래사장인 광안리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나 오륙도를 사랑하다 외치면서, 정작 그 모습이 어떤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다만 그런 것은 당장의 나에게 중요치 않았다. 저 멀리에 두 손을 흔들며 날 반기는 친구가 점처럼 보인다. 돌무리를 밟았을 때 나는 사각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마치 청사과를 베어무는 소리와도 같더라. 소리를 즐길세도 없이, 나는 점점 빨라지는 그 청량한 사각소리와 함께 친구에게로 달려갔다. 몇 년 만에 만난 사이이니만큼 어색함이 느껴질 만도 한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너무나도 바다를 잘 즐겼다. 검은 암초 위에 앉아 발을 담그기도 하고, 밀물에 들어왔다가 썰물에 갇혀 숨 쉬지 못하는 물고기를 암초 밖으로 빼내어주기도 했다. 집 안에서 느꼈던 커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는 또 다른 내음이 느껴진다.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푸르름이 진실로 곱다. 그러나 아직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이 공포는 가시질 않고, 물과 닿는 몸의 표면적과 정비례하여 올라가기만 하였다. 그때, 귀에 불편한 소리가 내리박혔다. 조금 떨어진 곳의 주차장을 지키는 노란 개가 갑자기 미친 듯이 짖어댔다. 그와 동시에, 어린아이 셋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서럽게 울었다. 불편해하는 내 기색을 알아차린 것인지, 친구가 무안한 말투로 ‘이만 갈까?’라 물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여기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친구와의 만남은 물론 기쁜 일이었으나, 바다에서 쫓기듯 나온 그날의 경험은 내게 큰 사념을 남겼다. 바다와 멀어질수록 바다가 편하게 느껴지는 나는, 평생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는가? 창 밖을 보니 바다는 원망스럽게도 여전히 빛무리를 제 맘대로 왜곡시킨 채 아름답게 출렁이고 있었다.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나 두려워 마지않을 수도 없다. 나는 이 난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조차 없어 마음 한 구석에 밀어 넣고는, 한 달 뒤 시험이니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는 잊어버렸다.

12시쯤 학교를 일찍 마치고 나왔다. 오늘 모든 시험이 끝났기 때문이다. 후련하면서도 섭섭한 기분이 응어리졌다. 그저 빨리 바람에 실려 유유히 날아가기를 바랬다. 집에 가는 길, 오랜만에 탄 24번 버스는 굉장히 낯설었다. 큰 통유리창, 넓은 복도, 청결한 시트까지. 아무래도 내가 새 버스를 운 좋게 탔나 보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며 덜컹이는 버스에 몸을 맡기니 시야도 함께 흔들거렸다. 거진 한 달 만에 보는 햇빛의 따스함에 지금이 겨울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시험기간에는 늘 새벽에 나가 한밤에 들어왔기 때문에, 한낮의 풍경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하였다. 낯섦도 잠시, 한 순간 수풀 너머로 쉴 새 없이 반짝이는 바다 위 윤슬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웅장한 수풀은 곧장 그 바다를 다시 가려버렸다. 수풀은 한참이 지나서야 내게 바다를 다시 보여주었다. 그 순간의 수풀은 마치 하이라이트 장면을 강조하기 위해 잠시 내려진 무대 위 장막 같았다. 수풀이 없어지자마자 보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고개를 넘어가는 도로는 마치 곡선으로 왜곡된 듯 하고, 제 이외의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가로로 뻗은 수평선이 마치 꿈 속의 한 장면이었다. 부드러운 능선 같기도, 아지랑이 같기도 한 파도가 끊임없이 교차하여 저 넓은 곳을 전부 메웠다. 그 아름다움과 황홀함에 매혹되어, 한 달 전 시험기간을 핑계로 도망쳤던 사념이 다시 돌아왔다. 나는 어디선가 솟아난 자신감에 부풀어, 이대로 가다가는 영영 바다를 한껏 순수하게 사랑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 앞 정류장을 통과하고 두세 개의 정거장을 더 지나쳐, 이윽고 종착역에 다다랐다. 친구와 바다에 갔던 그날과 다를 것 없이 푸르른 바다와 노란 개의 짖는 소리가 여전하다. 친구와 사진을 잔뜩 찍었던 암초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세수할 때 두 손으로 물을 담는 것 같이, 투박한 암초가 다정하게 빛무리 담긴 물을 안았다. 이름 모를 물고기가 갇혀있었던 바로 그곳이다. 만약 암초가 사람이었다면, 분명 내가 저에게 싸움을 거는 줄 알았을 것이다. 빛을 머금다 못해 빛이 녹아버린 암초 속 바닷물이 고인 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너무 밝아 눈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지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료되어 눈을 도무지 떼지 못하였다. 그러다 제멋대로인 바람 때문에 파도가 묘한 각도로 틀어지는 바람에, 자그마한 물 웅덩이에 내 눈이 담을 수 없을 양의 빛이 강하게 내리쬐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눈을 오래, 세게 감았던 탓일까? 눈을 뜬 순간 눈 앞이 새하얗고, 파도 소리 외엔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장님처럼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노려보았다. 내 눈에만 꼈던 해무가 찬찬히 걷히고, 나는 보고야 말았다. 정열 가득히 몰아치는 파도가 암초 가까이로 달려든다. 멈출 줄 모르던 파도는 이내 암초에 부딪히고, 깨지고, 퍼지고, 결국에는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파도가 휩쓸고 간 암초 더미에는 두 가지 색이 공존했다. 파도를 겪은 암초는 메마른 암초보다 훨씬 더 새카맣고 깊은 색을 뽐냈다. 색은 더 어두우면서도 물에 매끈히 닦여 메마른 것보다 빛을 더 잘 반사하였다. 아마색 빛에 홀린것일까,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그도 아니면 본능에 이끌린 것일까. 나도 모르게 해안선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암초와 바다가 만나는 그 사이에는 하얗디 하얀 거품이 가득 들어차있었다. 가장 어두운 곳을 굽어살피는 듯이, 가장 어두운 암초 주변을 둘러싼 바닷물에는 윤슬이 가득히 넘치듯 부유하고 있었다. 암초에 남은 물기에 그 빛이 반사되어 공기 중에 표류하다가 이윽고 나의 눈까지 들어온다. 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눈이 커지고, 빛무리로 인해 동공이 작아진다. 심장 고동이 이내 파도와 합을 맞춰 세차게 뛰는 것이 마치 연주를 듣는 듯 하다. 아름답다. 나의 비약한 표현력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조차 없는 아름다움이다. 왜 이걸 이제서야 볼 수 있던 것일까? 아, 이를 고민하다가 나는 내가 두려워했던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답을 내놓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그보다 더 선명히 보였던 것은 내 마음에 자리잡은 두려움의 실체였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가 무서웠던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마주하였을 때 공허를 느낄까봐, 그 무감각이 나를 집어삼킬까봐 지레 겁먹고 뒷걸음질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라는 압박을 내려놓고 강박에서 벗어난 순간, 바다는 오히려 제 본 모습을 한껏 드러내어 주었다. 이것이 바로 며칠 전엔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을 오늘에서야 본 이유이다. 찾으려 들면 찾고자 했던 그것은 곧장 달아날 것이다. 그저 표류한 듯이 살아가며, 아름다움을 즐기다보면, 도망치지만 않으면, 결국에 우리가 ‘찾던 것’은 잔류로써 떠밀려 내려온다. 찾으려 들 때에는 도망치던 것들이 그저 바라보고 머물자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올 것이다. 생각해보면 행복도, 사랑도 그러하다. 지나치게 갈망하면 부재를 실감하게 되고,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억지로 찾지않으면, 그것들은 뜻밖의 파도처럼 우리 발밑까지 내려와 조용히 선물처럼 머물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하루 종일 새하얀 동그라미가 넘실거리는 잔상만이 오래도록 어른거렸다. 눈을 감고는 바다를 다시 회상해 본다.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이름 모를 해조류가 물 속에서 넘실거리다가 돌에 달라붙었다. 파도가 휩쓸고 간 그 자리에는, 그리 아름다운 것은 없었으나 남는 것은 많았다. 평생 남겨져도 좋을 빛무리가 기화하여 사라진다. 눈 같은 거품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소리가 가슴을 여행하곤 다시 바다로 빠져나간다. 하늘에도 없는 갈매기가 내 머릿속에 수려한 곡선을 그리고는 날아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갈무리할 수 없는 들뜬 마음은 이내 머리에 잔존하여 비로소 우리가 찾던 것을 보여준다. 행복이든, 찾음이든, 깨달음이든, 사랑이든, 그 모든 것은 찾으려 하면 달아나는 것이다. 그저 감상하며 즐기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왔다가는 자의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나는 이제 더이상 바다가 아득히 두렵지않다.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할까봐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저 나에게 파도가 닿을 때까지 머물고, 때로는 표류하며 살아가면 될 일이다.

찾음의 본질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떠밀려 내려오는 잔류임을 알았으니, 나는 앞으로 천천히, 그러나 두려움 없이 표류해 흘러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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