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광기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나
극단 415의 연극 '파란나라'
"게임 한 번 해 보는 건 어때?"
교사 제안으로 시작된 실험
섬뜩한 파시즘 탄생 보여줘
13~17일 부산 일터소극장
극단 415 단원들이 동서대 연기과 학생들과 함께 연극 '파란나라'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극단 415 제공
“얘들아, 우리 게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시작은 너무나 단순했다. 봉숭아학당이 연상될 만큼 제멋대로 굴던 아이들은 게임을 한다는 얘기에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선생님을 주목했다. 게임이 비극의 서막을 열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극단 415의 연극 ‘파란나라’가 13일부터 17일까지 부산 동구 일터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사 이종민은 영화반 동아리 수업에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감상 과제를 냈지만 대부분 해 오지 않았다. 과제를 한 몇몇 학생조차 진부한 내용의 옛날 영화를 왜 봐야 하나며 불만을 토로한다. 더군다나 힘없는 비정규직 교사 이종민은 교장 중심의 주류 집단에도 끼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학생들은 이 교사를 대놓고 무시한다.
도저히 수업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한 교사는 수업 대신 게임을 제안한다.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며 교실은 곧 게임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반은 파란나라혁명단이라는 조직으로 바뀌고 대장을 뽑고 규칙을 정했다. 대장이 된 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파란나라 회원증을 발급하고 경례와 구호 등 나치식 규범을 따르게 한다. 무시당하던 교사는 어느샌가 학생, 아니 단원들로부터 추앙의 대상이 된다. 단원들이 발언하려면 대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그의 한 마디에 모두 “네, 이종민 대장님”이라고 복창해야만 한다.
극단 415 단원들이 동서대 연기과 학생들과 함께 연극 '파란나라'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극단 415 제공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이종민 대장의 말투는 점점 명령조로 바뀐다. 때때로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공동체 규율이라는 명분으로 무시당한다. 그런 단원은 오히려 반역자나 불만 세력으로 몰려 축출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처단하라’는 무시무시한 구호까지 등장한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귀도처럼 나치의 삼엄함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연극은 1967년 미국의 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진행한 실험에서 비롯됐다. 나치 독일의 집단 동조 현상을 체험하고 비판 의식을 갖도록 설계된 실험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달렸다. 연극 ‘파란나라’는 이 실험을 한국의 교실로 옮겨온 작품이다. 김수정의 희곡을 극단 신세계와 남산예술센터가 공동 제작해 2016년 국내 초연했다. 당시 꼼꼼한 학교 현장 취재와 학생들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
13~17일 일터소극장에서 선보이는 연극 '파란나라' 포스터. 극단 415 제공
김수정 희곡을 원작으로 한 극단 415의 부산 공연은 동서대학교 연기과와 협업으로 진행된다. 극단 전문 배우와 함께 3~4학년 학생 배우 10여 명이 무대에 올라 교실 분위기를 실감 나게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또한 김예빈 배우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김예빈은 문화판 모이라가 지난해까지 2년 연속 무대에 올린 ‘슬픔이 찬란한 이유’에서 카페 주인 소연을 연기한 중견 배우이다.
“그저 어떤 생각으로 공동체 안에서 존재해야 하는가 한 번쯤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예빈 연출은 “교실에서 펼쳐지는 파란나라의 모습이 우리 사회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면서도 관객들에게 특정 메시지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공연은 중간 휴식 없이 120분간 진행된다. 13~16일 오후 7시, 17일 오후 3시 일터소극장. 관람료 일반 2만 5000원, 할인(대학생, 청소년, 단체, 장애인 등) 1만 2000원이다. 수험표 지참 수험생은 1만 원만 받는다. 예매 네이버.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