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만인소와 서훈 재평가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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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 사회에 울려 퍼진 민중의 외침이 있었다. 1792년 정조 16년. 영남의 선비 1만여 명이 상소를 올렸다. 이름하여 만인소(萬人疏). 하나의 상소에 이처럼 많은 이들이 서명한 사례는 조선왕조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그 요구는 사도세자의 신원(伸寃)이었다. 이는 영남만인소의 시작이기도 했다. 만인소는 단순한 청원서가 아니라 억압받은 백성들이 하나로 뭉쳐 왕실에 올린 절규였다. 상소 길이만 무려 100미터에 달했다. 1823년 서얼 차별 철폐 요구 등 조선시대 모두 일곱 차례 만인소가 있었다. 대부분 영남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됐다.

만인소는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대중의 의사로 끌어올려 공론화한 조선 후기의 집단 청원이었다. 유생은 물론이고 농민이나 상인, 하급 관료 등 다양한 계층이 신분과 지역을 넘어 연대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불만 제기를 넘어 부패 척결과 세제·법 집행 개선 등 구체적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만인소 같은 연대 서명 상소는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855년 장헌세자 추존 만인소와 1884년 복제 개혁 반대 만인소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됐다.

영남만인소가 1884년 이후 142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제8차 영남만인소 집행위원회는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봉소(奉疏) 의식을 열고 정부에 독립유공자 20인에 대한 서훈 재검토와 등급 상향을 요구했다. 이들은 1962년 확정된 상훈 체계가 충분한 검증 없이 굳어졌다고 지적하며 임시정부 국무령(대통령급)을 지낸 석주 이상룡,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만주 무장투쟁의 핵심인 일송 김동삼 등의 서훈을 형평성 문제로 제기했다. 실제 이상룡과 이회영은 독립장(3등급)에 머물러 있다. 지역사회와 학계는 독립운동의 위상에 걸맞은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 5등급 체계로 1등급에는 김구, 안창호, 안중근, 여운형 등이 포함돼 있다.

만인소는 특정 인물의 명예를 대신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다. 국가가 세운 기준을 다시 점검하라는 요구다. 역사는 이미 그들의 헌신을 기록했지만, 국가는 아직 그 무게를 온전히 달지 못했다는 게 만인소가 움직인 이유다. 축적된 연구 성과와 사료가 충분한 지금, 더 이상의 재평가 유보는 역사에 대한 책임 회피에 가깝다. 만인의 이름으로 묻는 이 질문에 국가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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