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축제 뒤, 부산 자본은 어디로 갔는가
심준식 비온미디어 대표
부산서 행사 열어도 수도권 수익 챙겨
이 구조 반복 '무대 제공 도시' 오명만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유치로 새 희망
BIFF·지스타 등 지역 콘텐츠 무궁무진
시민·투자자 직접 참여 지역에 수혜
전문인력 등 역량 지역화 준비해야
해마다 9월이면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인을 불러 모으고, 11월엔 지스타가 벡스코를 가득 채워도, 사람과 함께 몰려온 자본은 축제가 끝나는 순간 빠져나갔다. 흥행은 부산에서, 수익은 수도권에서. 이 구조가 반복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투자를 구하려면 서울로 가야 했고, 자본이 있는 곳으로 기업도 따라 움직였다. 부산은 무대를 제공했지만 금융의 의사 결정권은 끝내 지역 안에 없었다. 부가가치가 결정되는 순간마다, 부산은 바깥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했다.
이번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부산 유치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첫 시험대다. 금융위원회 예비인가를 받은 KRX(한국거래소) 컨소시엄에는 코스콤과 BNK금융 계열사 등 지역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설계 단계부터 지역이 참여했다는 점이 이전과 다르다. 본인가 요건 이행과 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기회의 문은 열렸다. 그 문을 결과로 이어붙이는 것은 이제 부산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 조각투자 거래소는 자산을 쪼개 발행하고 시장에서 유통하는 자본 순환의 마지막 고리이자, 그 자산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다면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부산에는 이미 자산이 있다. 영화제와 지스타를 통해 부산이 공들여 키워온 콘텐츠 IP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제에서 발굴된 유망 콘텐츠나 지스타를 통해 가능성을 증명한 게임들은 흥행 잠재력이 충분함에도 자금 조달을 위해 서울의 벤처캐피털을 찾아가야 했다. 조각투자거래소가 생기면 상황은 비로소 달라진다. 영화 판권이나 게임의 미래 수익권을 조각투자 증권으로 발행해 시민과 투자자가 직접 참여한다. 흥행의 결실이 부산의 거래소를 통해 지역에 남는 구조를 만든다. 행사를 여는 도시에서 자본을 설계하는 도시로, 그 실질적인 시작점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변화의 의미는 금융 지형에 그치지 않는다. 부산의 창작자와 제작사가 외부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지역 시장 안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생태계의 변화다. 축제가 열릴 때 자본이 스쳐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축제가 끝난 뒤에도 자본이 남는 도시. 그 그림을 완성할 자산은 콘텐츠에만 있지 않다.
콘텐츠가 출발점이라면, 부산항은 그 다음 무대다. 국내 최대 환적항인 부산항은 수산물·원자재·소비재가 쉼 없이 오가는 물류의 심장이지만, 그 흐름에서 파생되는 수익권을 지역이 직접 설계한 적은 없었다. 수산물 유통 수익권이나 해운 화물에서 발생하는 미래 수익 구조를 조각투자 증권으로 발행해 부산의 거래소에서 거래한다면, 부산항은 자본의 무게를 실어 나르는 통로에서 자본이 만들어지는 시장으로 바뀐다. 콘텐츠와 물류, 두 축이 하나의 자본시장 안에서 연결될 때 부산의 그림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나 인프라는 시작일 뿐이다. 진짜 과제는 역량의 지역화다. 발행의 구조 설계부터 유통의 리스크 관리, 자산 표준화와 투자자 보호까지, 그 역량이 지역 안에서 갖춰지지 않는다면 플랫폼만 부산에 있고 핵심 판단은 외부에서 이뤄지는 또 다른 분업 구조가 반복될 뿐이다. 이번에는 기능이 아니라 역량이 남아야 한다. 인력은 기회를 따라 움직이고, 기회는 시장을 따라 형성된다. 부산시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은 지역 대학·연구기관과 함께 전문 인력 양성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다. 부산에 조각투자거래소가 문을 여는 날, 그 안을 채울 사람이 외부인뿐이라면 지역화는 허울에 불과할 수 있다.
조각투자는 아직 대중의 신뢰를 충분히 얻지 못한 시장이다. 그렇기에 설계의 출발점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여야 한다. 이상거래 탐지, 투명한 공시, 안정적인 수탁·결제 구조는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이 체계를 외부 용역에만 의존할 경우, 거래소는 또 다른 취약성을 안게 된다. 한 건의 사고가 수년간 쌓아 올린 평판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다. 지역 대학과 기술 기업이 보안과 운영 역량을 지역 안에서 키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뢰가 먼저 쌓여야 부산의 이야기가 투자 상품이 되고, 부산의 항만이 포트폴리오가 된다.
부산은 오랫동안 선언의 도시였다. ‘동북아 해양수도’, ‘글로벌 허브도시’, ‘스마트시티’. 비전은 매번 화려했지만 구조로 이어지지 않았고, 자본은 끝내 머물지 않았다. 조각투자거래소 유치가 그 반복과 다른 것은, 이번엔 선언이 아니라 설계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발행·유통·수탁·보안이 지역 산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자본은 비로소 머문다. 그 연결을 완성하는 것이 지금 부산의 과제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자본이 남는 도시. 그 답을 부산이 스스로 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