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철호 외국인 커뮤니티 ‘HIBA’ 창립자 “외국인들이 부산에서 ‘사람을 만나는 경험’ 했으면”
외국인과 함께 ‘히든 부산’ 매력 발견
활동 담은 에세이집 이달 출간 예정
“관광은 속도가 아니라 기다림…
관계 속에서 도시 경험 더욱 깊어져”
황령산 야간 산행 날이었다. 체력이 약한 참가자가 있어 속도가 계속 늦어졌다. 정상까지 예상했던 시간보다 배 이상 걸렸다. 그런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서로의 걸음을 기다리며 함께 산을 올랐다.
부산 거주 외국인들을 위한 아웃도어 모임 ‘HIBA(Hidden Busan Adventures for Foreigners)’를 만든 창립자 박철호 씨는 그날 확신을 얻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관광은 속도가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걸요.”
지난해 3월 시작된 이 모임은 외국인과 지역 주민이 함께 산을 오르고 바다를 즐기며 부산을 경험하는 커뮤니티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영어 에세이집 〈JUST SAY, HI BUSAN〉을 썼고, 이달 발간을 앞두고 있다. 부산을 소개하는 또 하나의 관광 가이드북이 아니라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담은 책이다.
HIBA의 첫 모임은 오륙도에서 이기대까지 이어지는 해안 트레킹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근처 카페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 넘게 계속 이야기를 나눴어요. 외국인들이 이런 만남을 정말 갈망하고 있구나 느꼈습니다.”
그날 참가했던 한 이스라엘 여행자는 현장을 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 그 경험을 계기로 이후 활동들도 영상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책 곳곳에는 매달 1회 열리는 HIBA 활동을 담은 영상이 QR코드로 연결돼 있다. 독자는 산행과 서핑, 트레킹 등 모임 현장의 바람 소리와 웃음 소리를 그대로 만날 수 있다.
HIBA 활동을 하며 그는 외국인들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부산을 친절한 도시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대신 “부산은 기다려주는 도시다”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서툰 한국어를 기다려주고, 느린 걸음을 기다려주고, 액티비티를 잘 못해도 묵묵히 기다려주는 도시라는 의미다. “화려하게 친절한 도시는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묵묵히 기다려주는 정이 있습니다. 그게 이방인을 부산에 정착하게 만드는 힘 아닐까요.”
이 경험은 그가 관광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꿔 놓았다. 기존 관광이 도시를 방문하고 소비하는 경험에 가까웠다면, 그는 도시를 ‘관계의 공간’으로 보고 싶었다. “도시는 단순히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소속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자가 지역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도시의 경험도 훨씬 깊어집니다.”
이런 생각은 최근 관광 분야에서 강조하는 체류형 관광이나 워케이션 흐름과도 닿아 있다. 짧은 방문을 넘어 일정 기간 머물며 지역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외국인들이 지역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시의 일원이 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회성 방문객이 지역의 구성원으로 바뀌는 경험이죠.”
박 씨는 부산을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도시”라고 말했다. “부산은 없는 게 없는 도시입니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강도 있고 역사 유적도 있고 예술도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가 몰랐던 걸 더 많이 알게 되는 도시입니다.”
이런 경험과 생각들은 이번 에세이집에 그대로 담겼다. “거창한 관광 전략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Hi’라고 인사를 건네보라는 뜻입니다. 어디를 가라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사람을 만날지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그는 이런 작은 인사가 도시의 경험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관광이 도시를 소비하게 만든다면, 관계는 도시를 소속하게 만듭니다. 부산이 그런 도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