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원픽] 미국의 송어낚시/리처드 브라우티건
정영선 소설가
<미국의 송어낚시> 표지.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단 한 문장으로 나에게 세상의 감춰진 면을 드러냈다. 그 문장은 보는 순간 몸속으로 순식간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웠다. 그 후로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인생을 걸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가끔 소설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다짐했다. 소설을 쓰는 일이 두려워 뒷걸음을 치던 나를 다시 소설 앞으로 끌어당겼던 것도 그 문장이다. 그 후에도 많은 문학의 별들이 세상과 글 사이에서 헤매는 나를 인도했지만 언제나 가장 빛나는 건 처음 만났던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다. 1987년, 구독하던 문예지의 부록으로 처음 만났는데 촘촘하게 편집된 글이라 유인물처럼 느껴졌던 책이었다. 표지에 실린 작가는 카우보이모자와 청바지, 요란한 셔츠를 입고 긴 목걸이를 했다. 그런 차림의 소설가를 본 적이 없어 보고 또 봐도 낯설었던 기억도 난다.
소설은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광장 벤자민 프랭클린 동상에서 시작하는데, 근처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샌드위치를 준다. 와도 된다는 신호를 확인한 후에 건너가 받은 샌드위치 안에는 시금치 한 잎뿐이었다, 미국의 송어낚시와 벤자민 프랭클린 동상, 시금치 한 잎이 든 샌드위치와의 거리는 아득했지만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을 환대할 곳은 없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건 분명해 보였다. 몇 년 전에 북한서 온 학생이 교회에 갔는데 수프에 버섯 한 조각 들어있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그 문장이 떠올랐다.
미국의 송어낚시 안에는 짧은 이야기 47편이 실려있는데 송어를 잡으러 가는 일과 개발로 달라진 하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야기 사이의 연결은 느슨하거나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다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세상에 사건과 서술자가 같다니. 나는 당황해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다, 그러니 다 읽어도 덜 읽은 것 같고 다 읽지 않아도 대충 다 읽은 느낌이다, 소설은 송어 하천을 잘라 길이대로 파는 중고 가게를 이어 마요네즈로 끝난다.
나는 내 글이 답답할 때마다 이 소설을 펼쳤다. 이곳저곳 영향을 받은 곳이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미국의 송어낚시>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안다. 여전히 시금치 한 잎을 찾지 못해 쩔쩔매고 있으며 빈약한 상상력을 감추려고 설명하고 채우고 연결한다고 야단법석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1984년 49세 때 자살했는데 주검조차도 한참 늦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멋진 소설을 쓴 사람이 왜 그렇게 빨리 죽었을까. 안타까움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얼마 전 2호선 마지막 전동차 안에서 그도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정말 소설을 끝까지 읽은 기분이었다.
정영선 소설가
정영선 소설가
*1997년 <문예중앙> 신익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2024~2025년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요산김정한문학상, 동인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