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비하인드]김동환이 내뱉은 ‘휴브리스’는 결국 자신이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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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기장 살해 김동환 “휴브리스·네메시스” 외쳐
그리스 신화 개념 빌려와 자신 범행 정당화 시도
심사 탈락·비행 배제 등 불만이 왜곡된 인식으로
대다수 경력 단절 조종사들, 생계 전환해 구슬땀
과거의 집착이 타인 생명 빼앗고 자신 삶도 망쳐


항공사 기장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동환(49)이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지난달 26일 오전 부산 부산진경찰서에서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항공사 기장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동환(49)이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지난달 26일 오전 부산 부산진경찰서에서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달 26일 오전, 항공사 현직 기장을 살해한 뒤 붙잡힌 김동환(49)이 부산진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부산일보 지난달 27일 자 8면 보도)됐습니다. 이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여러 언론사 기자들도 현장에 몰렸습니다. 그런데 이날 기자들은 느닷없이 ‘집단 지성’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부산일보> 사회부 경찰팀은 부산경찰청을 출입하는 팀장 격의 ‘캡’과 각 경찰서를 담당하는 기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캡을 맡고 있는 저는 부산진경찰서 담당 기자에게 현장 상황을 물었습니다. 그는 포승줄에 묶인 채 끌려가던 김동환이 내뱉은 말을 급히 받아 적었다고 합니다. 다소 당혹감이 묻어나는 그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악랄한 기득권이 한 사람의 인생을, 개인의 인생을 파멸시켜도 된다는… 미친 휴브리스… 김동환 발언입니다. 멘트가 뚜렷하지 않아 기자들끼리 확인 중입니다.”

휴브리스? 처음 듣는 단어였습니다. 김동환이 이날 외친 두 용어는 ‘휴브리스(Hubris)’와 ‘네메시스(Nemesis)’였습니다. 그리스 신화와 철학에서 유래한 말로, 휴브리스는 ‘인간의 오만’을, 네메시스는 ‘그에 대한 신의 응징’을 뜻합니다. 낯선 단어를 두고 현장 기자들이 의미를 확인하느라 서로에게 묻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부산경찰청에서는 사건 관련 백브리핑이 이어졌습니다. 한 기자가 수사 담당자에게 “김동환이 평소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담당자는 쓴웃음으로 답을 대신했습니다.

고인과 유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면,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김동환의 망언을 그대로 옮기는 일은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왜곡된 인식과 망상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해당 표현을 인용하고 그 의미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김동환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이후 미국 교육기관에서 자격을 취득해 민간 항공사에 입사했습니다. 재직 기간 동안 반복된 심사 탈락과 퇴직 이후 이어진 소송을 겪었고, 결국 자신이 비행을 할 수 없게 된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며 동료 기장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왔습니다. 그 끝에서 그는 6명을 살해하려는 범행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왜곡된 사고에 따르면, 오만한 동료들(휴브리스)이 자신을 나락으로 밀어 넣었고, 자신은 그들을 응징하는 존재(네메시스)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김동환이 살해한 기장을 포함해, 이른바 ‘데스노트’에 적힌 6명은 그의 평가 과정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인물들입니다.

김동환의 불행한 개인사를 두고 동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어떤 이유라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항공사에서 나온 모든 전직 조종사들이 김동환처럼 행동하지 않았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재빨리 다른 길을 모색해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계속 가꿔나가고 있었습니다.


현직 기장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부기장 출신 김동환(49)은 재직 기간 동안 반복된 심사 탈락 끝에 결국 항공사를 퇴직했다. 클립아트코리아 현직 기장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부기장 출신 김동환(49)은 재직 기간 동안 반복된 심사 탈락 끝에 결국 항공사를 퇴직했다. 클립아트코리아

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종사 출신 인사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사정을 듣기 위해 취재하던 중 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항공사와 전혀 무관한 업종에서 근무 중인 공군사관학교 출신의 한 인사는 유명을 달리한 기장과 김동환의 몇 기수 선배였습니다. 그는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그만큼 골도 깊은 항공기 조종사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저도 비행을 했지만, 조종사들이 밖에 나가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19살 때 사관학교 가서 졸업 뒤 전투기를 탔어. 그러면 전투기 타고 그다음에 민항사로 갔어. 그렇게 쭉 살아온 거예요. 한때 중국에서 조종사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많은 국내 파일럿들이 높은 연봉 받고 그쪽으로 이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중국서 일자리가 사라지자 이 분들이 한국에 다시 왔죠. 그런데 그때는 국내에서도 조종사를 안 뽑지 않습니까?”

이 분은 당시 한국에 돌아온 조종사들이 어떻게 버텼는지도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조종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있는 돈 까먹고 있는거에요. 그러다가 택배를 배달하거나 편의점 알바를 한 친구들도 있어요. 제 친구는 노가다(막노동) 뛰기도 했죠.”

파일럿 제복을 입다가 택배기사 옷으로 갈아입은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다 막노동이라니요. 그런데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저는요, 그 친구가 제일 자랑스러워요. 내가 지금 상황이 이러니 내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야죠. 내가 공군사관학교를 나왔든 항공기 조종사를 했든 모두 과거의 일입니다. 현재 내가 남한테 피해주지 않고 떳떳하게 돈 버는 게 중요하죠. 저는 그런 그 친구가 더 멋있더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두 김동환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지만, 과거에 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라는 사실을 이번 취재를 통해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습니다.

김동환이 했던 말을 그에게 되돌려주려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자신의 소중한 삶마저 망쳐버린 김동환의 행위야말로 휴브리스가 아닐까요. 그리고 결국 그는 법이라는 이름의 네메시스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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