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노란 리본, 사라지지 않는 봄-세월호와 감각의 정치
홍성담, 친구와 마지막 셀카, 2016. 홍성담 화백 제공
2014년 4월 16일, 바다는 아이들을 삼켰다. ‘전원 구조.’ TV에서 반복적으로 송출된 그 말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장면은 단순한 오보가 아니라,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보이지 않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의 작동이었다. 자크 랑시에르에 따르면, ‘치안’은 ‘감각적인 것의 분할’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통치 활동, 사회적 몫을 분배할 때 발생하는 불평등을 확정하는 통치 과정이다.
이에 반해 ‘정치’는 치안이 만든 특정한 분할선에 의해 나누어지고 할당된 기존의 불평등한 질서, 지각 양식의 질서를 다시 나누고 할당하려는 행위이다. 세월호는 바로 폭력적으로 작동하는, ‘치안’이 확립해 놓은 감각적인 것의 분할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리고 예술은 그것을 재배치하고자 한다. 이때 예술은 다른 방식으로 개입한다. 그것은 설명하지 않고, 대신 감각을 되살린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하고, 어떤 고통이 말해질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홍성담의 ‘세월오월’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작품은 홍성담 개인의 작업이지만, 형식적으로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걸개그림 전통을 호출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표현을 넘어 사건을 ‘집단의 기억’으로 확장하는 장치다. 이 그림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읽히는 구조를 가지며, 사건의 인과와 권력의 작동을 직조하듯 드러낸다. 그의 세월호 연작 중 ‘친구와 마지막 셀카’(2016)는 세월호에서 숨져간 아이들이 부모와 형제자매, 친구들과 마지막 문자를 보내거나 통화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과 권력을 탓하지 않는다.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기억을 공유하는 행위를 할 뿐이다. 그림은 그 지워진 목소리를 ‘다시 들리게 하는’ 장치가 된다.
이 지점에서 BTS의 ‘봄날’을 함께 떠올린다. 이 노래는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더 깊이 도달한다. “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다” 이 문장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다. 부재를 현재로 끌어오는 감각의 언어다. ‘봄날’의 시간은 도착하지 않는다. 눈꽃은 떨어지고,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세월호 이후의 시간이다.
홍성담의 그림이 사건을 ‘집단적 기억’으로 붙잡아 두었다면, ‘봄날’은 그것을 ‘감각의 지속’으로 남긴다. 하나는 보이게 하고, 다른 하나는 사라지지 않게 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끝까지 기억할 것인가. 세월호는 끝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감각’이다. 노란 리본은 지워지지 않는 감각의 매듭이며, 보이지 않게 하려는 힘에 대한 조용하고도 강한 저항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