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은 어른이 잃어버린 초심이다”
■투명하지만 깨지지 않는/박상아
초등 교사가 기록한 빛나는 아이들
서툴어도 온 마음을 다하는 모습
아이처럼 세상과 동행하자 제안
초등 교사가 찾은 아이들의 빛나는 순간을 기록한 책이 출간됐다. 사진은 스승의 날을 맞아 꽃선물을 전하는 초등학생들 모습. 부산일보 DB
초등 교사가 찾은 아이들의 빛나는 순간을 기록한 책이 출간됐다. 사진은 개학 후 다시 만난 선생님과 인사하는 아이들 모습. 부산일보 DB
문화부 기자로 경력이 쌓이며 세계적인 화가 혹은 시인, 소설가를 인터뷰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들에게 작품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질문한 적이 있다. 단어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어린이처럼 그리고 싶고 어린이 마음으로 단어를 길어 올려 작품에 넣는다고 답했다. 자신의 분야에 대가인 이들이 왜 서툴고 실수 많은 어린이를 언급했을까.
<투명하지만 깨지지 않는>은 이 같은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는 스무여 명의 어린이와 시종일관 바글거리고 지내는 생활을 시트콤이라고 소개한다. 시시각각 희로애락이 오가고 별의별 장면이 연출된다. 그 공간에서 저자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유일한 어른으로 질서를 잡아야 한다.
교사인 자신도 어린 시절 우정을 지키기 위해 친구에게 늘 양보하고 조심스러웠고 애정 표현을 잘하는 편은 아니어도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사랑해요”라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고 매 순간 온몸으로 부딪히며 어린 시절 중요했던 것들을 순위에서 점점 뒤로 밀렸다. 용기는 긁어 부스럼이 될 때가 많았고, 성실하면 궂은일을 도맡아야 했으며, 우정은 큰 의미 없게 느껴졌다. 순수함은 철없는 것이었고, 희망은 괜한 기대처럼 발목을 잡기만 했다. 대부분 그런 어른으로 변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소개하고 싶었던 건 지키고 싶었지만 어느새 잃어버린 어떤 마음을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동심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초심이었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잃어버렸던 마음의 퍼즐 몇 조각을 찾는 기분이었다. 20개의 일화는 어른의 마음에 여전히 있지만, 어느 순간 잊어버린 그 진심을 떠올려 보자는 동행의 제안이다.
아이의 행동을 통해 어른 세대에게 훈계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따분한 도덕 교과서도 아니고 교사와 아이들의 학급 운영 이야기도 아니다. 동심 주변에서 하루의 반을 머무는 사람이 소중히 건져 올린 순간들을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기록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책 제목을 <투명하지만 깨지지 않는>으로 정한 건 아이들은 맑고 순수하면서도, 의외로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악보도 볼 줄 모르면서 합주부에 지원한 윤채가 상처받을까 싶어 저자는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하려 하지만, 정작 윤채는 “그냥 해 볼래요”라고 답했다. 실제로 다른 아이에 비해 배움이 늦지만, 윤채는 자기가 못해서 연습을 더 해야겠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학예회 무대를 마치고, 내년에는 선배들이 하는 더 어려운 악기에 도전하겠다고 해맑게 웃는다. “잘하지 못하면 어쩌지”같은 계산은 처음부터 없다. 아이들은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냥 뛰어든다.
역사 덕후이자 책을 무척 좋아하는 한울이에게 사회 수업 질문은 너무 쉽지만, 결코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생각할 시간을 뺏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분리수거함 뚜껑이 고장 나면 아이디어를 발휘해 다른 걸 만들어내고, 청소 시간 자신이 맡은 영역이 일찍 끝나면 배정되지 않은 신발장 먼지를 닦는 아이가 있다. 이렇게 어린이들의 다정함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세상 구석구석에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다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다정한 상상력이 발휘되고, 두려움 앞에 멈춰 있기보다 그냥 뛰어들 수 있는 용기가 누구에게나 있었다. 모두에게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을 헤아릴 품 넓은 마음이 어린이에게는 있다. 책은 어린이와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세계를 한 뼘 넓히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나이가 더 들면 반짝 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마저 더는 알아채지 못하게 될지 걱정한다. 진심이 모이는 자리에 비로소 빛이 생겨나니, 여기 모인 아이들의 진심이 세상에 봄기운처럼 스며들기를 기원한다는 말로 책을 끝낸다. 어른은 이 책을 읽으며 편견 없이, 유연한 파도처럼 자유롭게 살던 원래의 우리를 만날 수 있다. 박상아 지음/부키/224쪽/1만 75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