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한 뼘 더 성숙하길…” 잼버리 소녀 만난 이해인 수녀
지난해 새만금 찾았던 학생들
지리협회 초청으로 다시 방한
광안동 수녀회서 시를 통해 소통
다른 세계와 만남의 중요성 공감
영국 소녀가 이해인 수녀의 시 ‘차 한잔 하시겠어요’를 영어로 읊었다. 여든을 앞둔 수녀는 자신의 시를 한글로 낭송하며 화답했다. 지난 9일 오후 부산 수영구 광안동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이곳에 머무는 이해인 수녀 앞에 미주·아시아·유럽에서 온 소녀 4명이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 일행 중 말레이시아 학생 프래짐(21)을 제외한 3명은 지난해 전북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 참가한 10대 학생들이다. 대륙별 대표로 선발된 이들은 이번에 지리·생태학자 등이 결성한 ‘엄청난 지리협회’(GGS) 초청으로 ‘GG 서머스쿨’에 참여하면서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지난 5일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뒤 천안, 순천, 통영, 거제 등을 거쳐 부산을 찾은 길에 이 수녀와도 만났다.
소녀들을 만난 이해인 수녀는 세계 지도를 자신의 방에 붙여뒀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수도자로서 붙박이 삶을 사는데 한 자리에 계속 머물면 마음이 좁아지기 쉽다”며 “지도를 보면 많은 나라와 넓은 세계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어 “여행으로 다른 세계를 마주하면 마음이 넓어지고 더 많은 관용을 베풀 계기가 된다”며 “(여러분도)한 뼘 더 성숙했다고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GG 서머스쿨’은 지난 1일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이해인 수녀 시를 낭독하며 시작했다. 한국을 알릴 국제 인재를 키우려고 지리와 생태 교육, 진로 특강 등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이해인 수녀의 시에 특별한 의미가 담겼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6·25 전쟁 때 부산에 피란을 온 이해인 수녀는 필리핀에서 유학했고, 부산 바다를 보며 시를 쓰면서 해외를 다니며 세계관을 확장한 시인이다.
이해인 수녀는 자신을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구름 천사’라고 여기며 살아간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는 내가 광안리 바다를 보며 단조로운 일상을 보낸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날아다니는 시가 독자들과 인연을 맺어주고 있다”며 “시는 종교를 초월해 ‘날개 달린 천사’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비유에 감동한 영국 소녀 엘리스(18)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발현할 수 있도록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신다”고 화답했다.
이해인 수녀는 또 “놓친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며 “시간은 네가 꿰어야 할 구슬이라 생각하라”고 했다. 이어 “그렇게 덧없이 시간이 가기도 하지만, 오기도 하는 게 시간”이라며 “시간을 소중하게 잘 관리하면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부산을 찾아 수녀회에서 차담까지 나눈 소녀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나일라(18)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새로운 기회가 있어 영광”이라며 “지난해 잼버리가 힘들긴 했지만, 예쁜 추억으로 생각하려 한다”고 밝혔다. 멕시코 소녀 레나따(15)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 신나고 즐겁다”며 “저번에는 시간이 많이 없었는데 더 많은 걸 경험하고 싶다”고 밝혔다.
소녀들은 전북 군산, 고창, 전주 등에서 12일까지 자연·생태 탐험과 교류 행사를 이어갔다. 학생들을 인솔한 경인교대 김이재 교수는 “한국에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소규모 행사라도 교육적 원칙에 충실하게 준비했다”며 “지역 곳곳에서 국제 교류가 다시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우영·김준현 기자 verdad@busan.com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