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50% 이상 동의해야 검토” 울산시 ‘조건부 통합론’
‘행정통합’ 울산시 기자회견
김두겸 시장, 기본 방향 발표
“美 연방제 주 수준 권한 필수”
통합 반대 기존 입장 유지한 듯
PK, 통합 언급 자체에 의미 둬
김두겸 울산시장이 21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행정통합 관련 울산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울산시 제공
급물살을 타는 부산과 경남의 행정통합 논의에 침묵을 지키던 울산시가 ‘연방제 수준의 자치권 확보’와 ‘시민 50% 이상의 찬성’을 핵심 전제로 제시하며 기존 입장에 변화를 줬다. 그러나 지방선거 전까지 물리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문턱을 스스로 설정함으로써 줄곧 견지해 온 ‘실익 없는 외형적 통합 불가’ 기조는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21일 오전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전략’과 광역 행정통합에 관한 울산시의 기본 방향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김 시장은 “자치권이 담보되지 않은 행정구역 확대는 지역 소외를 부추기는 정치 구호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하며 성급한 통합 논의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실질적인 권한 이양 없는 외형적 통합은 오히려 지역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 시장은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과거 마산·창원·진해 통합 사례를 언급하며 “정부가 약속한 재정 인센티브에 현혹돼 성급하게 통합했다가는 시간이 흐른 뒤 지원이 끊기면 다시 낙후된 상태로 회귀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자치권 없이 통합할 경우 120만 울산 인구는 부산·경남의 거대 인구에 밀려 예산 배분 등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라며 ‘들러리 통합’에 대한 거부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특히 울산시는 행정통합의 선행 조건으로 미국 연방제 주 수준에 준하는 자치입법권, 과세권, 산업 및 지역 개발 권한의 실질적인 이양을 거듭 요구했다. 이는 서울시에 준하는 위상을 부여하겠다는 정부의 인센티브 안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김 시장은 “실익 없는 통합은 울산을 다시 경상남도의 변방으로 되돌리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며 “부산과 경남의 발표 내용을 지켜본 뒤 정부의 권한 이양 의지를 확인하고 나서 공론화를 검토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중앙정부가 획기적인 권한을 내놓지 않는 한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울산시는 향후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응답자의 50% 이상이 동의할 경우에만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울산시의회와 긴밀한 협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일반적으로 공론화위원회 구성과 숙의 과정, 대규모 여론조사 실시에는 최소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 시의회 협의와 법적 절차까지 감안하면 올해 6월 예정된 지방선거 전까지 통합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행정적·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울산시는 시민 선택권 존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행정통합을 둘러싼 안팎의 압박을 차단하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시장은 “중앙정부 및 관계 지자체와의 논의 과정에서 권한 이양과 시민 선택권 존중이라는 원칙을 일관되게 제시하겠다”라며 “실질적 권한이 없는 통합에 매몰되기보다 울산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내실 있는 발전에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일단 이 같은 울산시의 입장에도 부산시과 경남도는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울산시가 부울경 통합을 언급했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고 환영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부산시와 경남도는 지난 19일 행정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 위해 실무협의체를 공식 출범시킨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울산·경남 시도당에서는 6.3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선출하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부산시는 “부산·경남 행정통합 논의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울산시의 발표를 크게 환영한다”라며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하기 위해 부울경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경남도 역시 “미 연방제 수준의 권한 이양 등 울산시의 요구 사항에 공감하며, 완전한 통합을 위한 협의를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울산시는 형식적인 통합보다는 실질적인 협력이 가능한 ‘부울경 초광역경제동맹’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판단을 유지 중이다. 2022년 출범했던 부울경 특별연합의 한계를 교훈 삼아, 현재 추진 중인 초광역 교통망 확충과 산업·에너지 분야의 실질적인 협력을 지속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행정통합 압박에 배수진을 친 울산시가 부울경 통합에 대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글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게 지역의 중론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