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책세상] 얼씨구 절씨구 풍년이 왔네 /원동은 글·홍성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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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독 묻고 초가지붕 잇던 '그 시절'

우리 겨레의 얼과 혼이 담긴 전통문화와 생활양식은 근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 서서히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역대 왕조나 위대한 인물 중심의 역사는 명맥을 잇고 있지만 그 밑에 도도하게 흐르는 다수 민중들의 역사는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보통 사람들의 냄새가 짙게 베인 민족생활사를 담은 책이 나왔다.

'얼씨구 절씨구 풍년이 왔네'(원동은 글/홍성찬 그림/재미마주/1만3천원)는 옛날 우리 농촌생활의 정겨운 모습을 60여 컷의 그림과 설명으로 담아 1년 12달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홍성찬 할아버지와 함께 떠나는 민속·풍물화 기행 제1권'이란 부제가 달려 있는 책은 농촌 생활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웅숭깊은 생활사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책장을 펼치면 계절마다 바뀌는 농촌 생활을 담은 그림들이 푸근하면서도 정감있게 다가온다. 홍성찬 화백이 선조들의 삶의 모습,자취,풍속,풍물 등을 정확한 고증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려냈기 때문.

그림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깃발 아래 1년 내내 땀흘리며 부지런히 일한 조상들의 근면함과 삶의 지혜들이 오롯이 묻어난다. 조상들은 입춘과 우수가 들어있는 음력 정월부터 쟁기와 써레 등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 해 농사를 준비했다. 봄에는 보리밭에 똥오줌 끼얹기,밭작물 봄갈이,못자리판 만들기,장 담그기,누에치기 등을 하며 보냈다. 나른한 봄날도 이 많은 것들을 해야 하는 그들에게 너무나 짧게만 보인다.

조상들은 입하와 소만이 있는 음력 4월 이른 모내기와 밭작물의 김매기 등으로 본격적인 농사철에 돌입했다. 음력 5월엔 보리 베기와 타작,늦은 모내기,누에고치 따기 등을 했다. 날씨가 가물면 용두레와 맞두레로 물을 퍼 올리고 이웃간 물꼬 싸움이 대판 벌어지곤 했다. 틈틈히 원두막에서 장기 바둑을 두거나 참외 수박 등 과일을 먹으며 휴식을 즐기는 모습도 나온다. 특히 어린이들이 참외 서리를 하는 장면은 긴장감과 함께 옛 농촌의 정겨운 풍경을 떠올리게 해준다.

가을 풍경엔 땀의 댓가인 수확의 기쁨이 절절히 베어 있다. 지붕 위에 새빨간 고추 말리기,품앗이로 어울려 하는 벼베기,알곡을 거두는 '벼 바심' 장면이 나온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와 노력들도 느껴진다. 김장독을 깊게 파묻고 시래기를 엮고 초가지붕을 잇는 모습들이 펼쳐진다.

책은 농사 활동과 관련된 민요,가사,시조,속담 등을 함께 넣어 읽는 재미를 쏠쏠하게 한다. 또 재래식 간장·된장 만들기,짚신 삼는 방법 등을 그림과 함께 순서별로 자세하게 담은 것도 이채롭다. 농촌 생활의 이모저모를 통해 그 안에 깃든 조상들의 지혜,부지런함,삶의 깊이 등을 한 눈에 보여주는 책이다. 초등학생용. 한편 출판사는 민속놀이,옛사람의 생애,옛풍물,민속명절 등을 주제로 민속·풍물화 기행 시리즈를 5권까지 낼 예정이다. 김상훈기자 neato@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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