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서면 오르막길" 독거노인 비만 부르는 안타까운 '집콕'[이슈 추적, 왜?]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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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 왜?] 비만율 높은 영도

노인 인구 많아 식단관리 힘들어
활동량 적고 탄수화물 위주 식단
산책 엄두 내기엔 경사 심한 지형
노인 쉽게 갈 수 있는 시설 모자라
공공 체육시설도 현저히 부족해
1㎢당 서구 6.3개 영도구 3.7개

부산 영도구 봉래2동 마을건강센터에서 운영하는 걷기 모임에 참가한 주민들이 지난달 21일 동네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영도구 봉래2동 마을건강센터에서 운영하는 걷기 모임에 참가한 주민들이 지난달 21일 동네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달 22일 오전 부산 영도구 청학동 영도구보건소 2층 운동처방실. 80대 장덕순 씨가 훌라후프 돌리기를 하고 있다. 키 149cm인 그는 심장이 좋지 않아 과격한 운동은 하기 힘들다. 장 씨는 “원래 몸무게가 80kg까지 나갔다”며 “코로나가 심할 때는 보건소 운동 프로그램이 중단돼 오지 못했는데, 다시 운동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재 몸무게는 69.5kg. 운동으로 10kg 이상 살을 뺐지만 체질량지수(BMI)가 31.3으로 여전히 비만에 속한다.


부산 영도구의 비만율과 평균 연소득. 인포그래픽=최예원(부경대 공업디자인 전공) 부산 영도구의 비만율과 평균 연소득. 인포그래픽=최예원(부경대 공업디자인 전공)

실내자전거 운동을 하던 60대 이성라 씨. 겉으로는 비만인 듯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몸무게가 80kg”이라고 밝혔다. 이 씨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까지 대사증후군을 다 갖고 있다”며 “6년 전 진단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예전에는 라면을 2개씩 끓여 먹었다. 아마 40대 때부터 이미 비만과 대사증후군이 시작됐던 것 같다”며 “병원에 안 가서 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보건소에서 식단 지도와 상담을 맡고 있는 이채원 영양사는 “어르신은 밥이나 떡 같은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많이 한다”며 “운동량은 많지 않은데, 간식마저 빵이나 과일 같은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니 남는 열량이 지방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선 지난달 21일 오전 봉래2동 마을건강센터에서는 걷기 모임이 열렸다. 70대 참가자 이숙연 씨는 “원래 몸무게가 70kg이었지만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해 60kg까지 살을 뺐다”며 “그래도 아직 비만”이라고 말했다.


부산 영도구, 서구의 위치와 면적 비교. 인포그래픽=최예원(부경대 공업디자인 전공) 부산 영도구, 서구의 위치와 면적 비교. 인포그래픽=최예원(부경대 공업디자인 전공)

영도구는 ‘2021년 지역사회 건강조사’ 결과 부산에서 비만율이 가장 높은 구·군으로 꼽혔다. 이 지역의 비만율(35.8%·부산시민 전체 29.8%)이 특히 높은 이유를 물었더니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지형적 원인을 꼽았다. 봉래2동 걷기 모임 참가자들은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 많아 쉽게 산책을 즐길 수 없는 환경”이라거나 “공원이나 운동시설도 부족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취재에 동행한 부경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소속 대학생 김규하·김동훈·나현준 씨는 부산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영도구의 공공체육시설과 동네체육시설의 숫자가 인근 서구보다 적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에 따르면 1㎢당 공공체육시설은 영도구 3.7개, 서구 6.3개(약 1.7배)였다. 1㎢당 동네체육시설은 영도구 3.8개, 서구 5.2개(약 1.4배)였다.

인포그래픽=최예원(부경대 공업디자인 전공) 인포그래픽=최예원(부경대 공업디자인 전공)

봉래동 주민 김둘남 씨는 “주변에 체육시설이라고는 빈집을 헐고 남은 땅에 운동 기구 몇 개를 설치해 놓은 것이 전부다. 너무 부족하다”며 “동네에 새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는데, 그곳의 공원이 넓고 평지여서 종종 간다”고 귀띔했다.

같은 날 오후 취재진은 영도구에서도 비만율이 높은 곳으로 꼽히는 동삼2동을 찾았다. 부산시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2016~20년 사이 비만율을 합산해 동별로 분석한 결과 동삼2동의 비만율은 39.0%로 영도구 내 1위, 부산시 읍·면·동 전체 2위였다.

지난달 21일 오전 부산 영도구 봉래2동 마을건강센터에서 운영하는 걷기모임에 참가한 어르신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달 21일 오전 부산 영도구 봉래2동 마을건강센터에서 운영하는 걷기모임에 참가한 어르신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동삼동 주민의 경우 연령대별로 비만이나 운동시설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활동 반경이 상대적으로 좁은 60대 이상 노령층은 “주민을 위한 동네 단위 운동시설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60대 주민 김명곤 씨는 “운동을 하려면 태종대까지 가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은 아무래도 힘들다”며 “결국 노인은 잘 안 움직이니까 살이 찌고, 몸이 무거워지니 더 못 움직이는 거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반면, 40~50대 주민은 “태종대나 방파제길, 해수천 등 운동할 곳은 크게 부족하지 않은 편이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나이가 많을수록 집 주변에서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접근성 높은 체육시설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이에 따라 비만 대책에도 연령별 접근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봉래2동 마을건강센터 관계자는 “상담을 하러 오는 주민 대부분이 독거 노인이다. 끼니를 잘 못 챙겨 먹는데다 비만 여부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체중 측정을 해 보면 대부분 정상 기준보다 10kg 안팎이 더 나가 식단이나 운동에 대한 조언을 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부산 영도구의 연도별 비만율(자가 보고) 추이. 인포그래픽=최예원(부경대 공업디자인 전공) 부산 영도구의 연도별 비만율(자가 보고) 추이. 인포그래픽=최예원(부경대 공업디자인 전공)

2021년 지역사회 건강조사의 경우 코로나19 시기에 이뤄지다 보니, 실제 계측이 아닌 자가 보고 형식으로 진행돼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전종이 영도구보건소 건강생활팀장은 “어르신의 경우 정확한 몸무게 등을 모르는 경우가 있어 체질량지수(BMI) 정상 경계 근처에 있는 사람까지 집계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젊은 사람은 헬스장 등에 다니며 개인적으로 체중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영도에는 상대적으로 노인 인구가 많다 보니 건강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계측을 통해 비만유병률을 집계한 ‘2019년 지역사회 건강조사’ 당시 영도구의 비만율은 36.1%였다. 자가 보고 형식으로 산출한 2021년의 비만율(35.8%)보다 오히려 높았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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