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이 해결책?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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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 노인 운전자 교통사고 급증
일부 지자체, 면허 반납 등 대책 시행 중
실제 운전능력 따른 제한 면허 대안 부상
노인 이동권·교통안전 확보 조화가 관건

열흘 전 충북 음성에서 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인도로 돌진해 귀가하던 중학생과 고교생 두 명을 치어 숨지게 했다. 음주 운전은 아니었으나, 운전자가 70대 후반의 고령자였다. 고령으로 인한 운전 미숙이 원인이었다. 사고 차량은 다른 차들을 아슬아슬 지나쳐 인도를 덮친 뒤 전신주까지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부산에서도 3월 20일 점심 시간대, 70대 운전자가 몰던 소형 SUV가 최고 번화가인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빠른 속도로 행인 3명을 치고 식당 입구를 들이받았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당시 식당엔 손님으로 가득 차 있던 상태여서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최근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가 크게 늘고 있다. 고령 운전자 대처 방안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고령 운전의 새 기준 마련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갈수록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2022년 4월 부산 서구에서 80대가 몰던 승용차가 주민센터 벽면을 들이받은 뒤 후진해 버스정류소를 덮친 사고 현장. 연합뉴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갈수록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2022년 4월 부산 서구에서 80대가 몰던 승용차가 주민센터 벽면을 들이받은 뒤 후진해 버스정류소를 덮친 사고 현장. 연합뉴스

■ 사망 사고 중 24%, 고령 운전

국내에서는 통상 ‘고령 운전자’ 기준을 65세 이상으로 본다. 65세 이상 인구의 빠른 증가세에 따라 앞으로 고령 운전자는 더 많이 늘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 고령 인구보다 고령 운전자의 증가율이 훨씬 더 가파르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 분석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고령 인구의 연평균 증가율은 4.6% 수준이지만, 고령 운전면허 소지자는 10.2% 증가 추세다. 2025년엔 전체 고령 인구의 약 절반인 500만 명가량이 운전면허를 소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비례해 교통사고 발생 비율 역시 증가세다. 2021년 기준 면허 소지자 1만 명당 제1 가해자 교통사고를 살펴보면 65세 이상은 79.3건으로, 가장 낮은 30대보다 약 1.7배에 달한다. 사망 사고로 좁히면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경우는 24.3%나 된다. 치사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높다.


고령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인적, 물적 피해가 더 큰 것이 특징이다. 2020년 5월 부산 영도구 한 회전교차로에서 70대가 몰던 승합차가 부근 세탁소로 돌진한 모습. 연합뉴스 고령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인적, 물적 피해가 더 큰 것이 특징이다. 2020년 5월 부산 영도구 한 회전교차로에서 70대가 몰던 승합차가 부근 세탁소로 돌진한 모습. 연합뉴스

■ 면허 반납, 공감 불구 참여 저조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면허 반납 등 여러 제안이 나오고 있다. 경찰청도 2024년 마무리를 목표로 면허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와 별도로 지금도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지자체 차원의 한두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고령자 면허 반납’이다. 제도에 대한 인지도가 제법 높고, 고령 운전자들의 반응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지자체에 따라 교통카드 지원 등 혜택도 준다. 반납 기준 연령은 조금씩 다른데, 만 65~75세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부산은 만 65세, 서울은 만 70세다.

하지만 면허 반납 취지에 대한 높은 공감과 달리 실제 반납 비율은 저조하다. 2018년 제도 도입 이후 아직 2%를 넘지 못했다. 면허 반납을 유도하기 위한 지자체의 지원이 실질적인 보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령 운전자 스스로 자기 운전 능력을 객관적으로 진단해 반납하기가 어렵다는 한계도 지닌다. 이 때문에 면허를 갱신할 때 고령자 운전적격성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고령자 면허 반납 제도가 시행 중이지만, 실제 반납 비율은 2%를 넘지 못할 정도로 저조하다. 경남 한 지자체에서 고령 운전자들이 면허 반납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부산일보DB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고령자 면허 반납 제도가 시행 중이지만, 실제 반납 비율은 2%를 넘지 못할 정도로 저조하다. 경남 한 지자체에서 고령 운전자들이 면허 반납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부산일보DB

■ 세계적으론 차등 면허 대세

고령자 운전적격성 강화는 결국 운전 자격에 대한 제한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 핵심은 면허를 차등 적용하는 조건부 면허인데, 경찰청의 개선안도 대체로 이 방향으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조건부 면허는 외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나이에 따라 면허 갱신 주기를 단축한다. 특히 신체·인지기능 검사 중심의 우리나라와 달리 실제 차량 주행을 통한 운전능력 평가에 중심을 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70세 이상 운전자에게 재심사를 받게 하는데, 주행능력 평가에 따라 조건이 붙은 면허를 발급한다. 일례로 운전자는 지역주행시험을 거쳐 거주 지역 내에만 운전할 수 있는 제한면허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71세 이상 운전자는 3년 주기로 면허를 갱신할 수 있으나, 갱신 시 고령자 강습을 의무 수강해야 한다. 75세 이상은 인지기능 검사가 필수다.

호주의 한 주에선 75세 이상은 매년 운전적합성 의료평가, 85세 이상은 2년마다 운전실기 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80세 이후 2년 주기로 면허를 갱신하는 뉴질랜드는 의학적으로 운전 능력에 이상이 없더라도 실제 안전운전 능력이 의심되면 조건이 붙은 한정면허가 발급되기도 한다.

조건부 면허는 기존 운전 자격 중 일부를 면허 갱신 과정에서 회수하는 셈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운전능력 평가가 핵심이다. 실제 주행능력 테스트 과정에서 기기 조작, 정보 반응 속도, 운전 자세, 주변 주시 등의 항목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고령 운전자의 결과 수용성도 높아진다. 경찰청의 개선안 마련도 시간, 지역, 속도, 보조 장치 등 고령 운전의 다양한 조건에 따른 맞춤형 평가 항목의 개발이 관건이 될 것이다.

운전면허 소지 여부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의 이동권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교통안전을 위해 어느 정도 면허 제한의 필요성이 조금씩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분한 여론 수렴과 설득 작업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동권과 교통안전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치를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활발한 토론 등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할 때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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