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곳곳 과도한 가지치기 ‘닭발 가로수’ 수난시대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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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겹쳐 싹둑 간판 가려 싹둑
구체적 가이드라인 없이 진행
녹지행정 구현 시책과 ‘엇박자’
전문가, 장기 생장 악영향 지적

부산 곳곳의 가로수가 ‘닭발’처럼 흉물스러워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환경회의 제공 부산 곳곳의 가로수가 ‘닭발’처럼 흉물스러워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환경회의 제공

부산 곳곳에서 가로수 가지를 과도하게 잘라내는 바람에 가로수가 ‘닭발’처럼 흉물스러워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부산시가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며 곳곳에 도시 숲을 조성하면서도, 현재 심어진 가로수에는 무분별한 가지치기가 이뤄지고 있어 ‘엇박자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31일 부산 동구 범일역 인근 길가에는 잔가지가 잘려 큰 줄기만 남은 은행나무가 군데군데 서있다. 초여름 쯤이면 잎이 무성하게 자라 큰 그늘을 이뤄야 할 때이지만, 가지가 잘려나간 탓에 큰 줄기 주변으로만 잎이 붙어있다. 이곳뿐 아니다. 부산 북구 화명2동 일대에도 양버즘나무의 가지 대부분이 잘려나갔다. 큰 줄기에 작은 가지 몇 개만 남아 마치 ‘닭발’ 같은 모양새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당장 흉해보일 수 있지만, 몇 년 뒤면 또 잎이 무성하게 난다. 나무에는 이상을 주지 않을 정도로 가지치기를 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가지를 많이 쳐내는 것을 ‘강전정’이라 하는데, 부산 곳곳에서 강전정 가지치기가 이뤄지고 있다. 주로 전선에 걸릴 우려가 있거나, 교통표지판이나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으로 인해 가지치기가 진행된다. 각 구·군청은 가지치기 전 시에 심의 또는 실무협의를 거치는데, 가지치기와 관련한 부분은 대부분 실무협의 선에서 결정되는 실정이다. 현재 시에는 가지치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나 지침이 없다 보니, 무분별한 가지치기가 이뤄지는 실정이다. 시 산림녹지과 관계자는 “가지치기에 대한 명확한 지침은 없지만, 협의를 할 때 가로수 생육에 크게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가지치기를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도한 가지치기로 인해 ‘닭발’처럼 앙상한 가로수.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과도한 가지치기로 인해 ‘닭발’처럼 앙상한 가로수.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문제는 이 같은 과도한 가지치기가 나무의 생장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동아대 차욱진 조경학과 교수는 “현재 몇몇 곳은 강전정 수준이 아니라 나무의 머리를 잘라내는 ‘두절’ 수준의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나무는 잎과 뿌리의 비율이 같아야 하는데, 이처럼 가지를 잘라내서 잎이 부족하면 뿌리가 호흡을 하지 못해 썩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또 설령 겉보기에는 잎이 나고 문제가 없어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나무의 생장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강전정하는 나무들은 잎을 한꺼번에 틔우는 특징을 보이는데, 나무가 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어보여도 뿌리는 점점 쇠약해지고 결국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의 녹지 관련 행보가 엇박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대응에 대비하겠다며 도시 곳곳에 나무를 심고 도시 숲을 조성하지만, 정작 이미 심어놓은 가로수는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이사는 “부산시가 만들려는 15분 도시의 핵심은 ‘녹지’이고, 가로수는 녹지를 연결하는 통로다. BRT 도로를 낸다고 나무를 쳐내고, 재개발 공사한다고 잘라내고, 가지치기마저 무분별하게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행보”라고 지적했다.

환경단체는 가로수 관리와 가지치기에 대한 시의 지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진철 부산환경회의 공동대표는 “시의 명확한 지침과 규정이 없다보니 부산 곳곳에서 가로수 가지치기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가로수에 대한 시의 입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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