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은 숫자일 뿐… 톱 랭커 줄줄이 잡은 의지의 발차기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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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여자 57㎏ 금 딴 김유진
세계 랭킹 24위의 ‘유쾌한’ 반란
4경기 동안 5·4·1·2위 잡아내
국내·대륙별 선발전 고행 결실

김유진이 8일(현지시간)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결승에서 이란의 나히드 키야니찬데에게 승리한 뒤 태극기를 들고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유진이 8일(현지시간)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결승에서 이란의 나히드 키야니찬데에게 승리한 뒤 태극기를 들고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태권도가 파리 올림픽에서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최근 열린 올림픽마다 속절없이 무너졌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남자 58kg급 박태준(경희대)에 이어 여자 57kg급 김유진(울산광역시체육회)이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유진은 지난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여자 57㎏ 결승에서 이란의 나히드 키야니찬데(세계 2위)를 2 대 0으로 잡고 정상에 섰다. 국내 및 대륙별 선발전을 거치며 천신만고 끝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지만, 상위 랭커들을 모두 잡아내며 결승에 올랐고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김유진에게 랭킹은 숫자에 불과했다. 김유진의 세계 랭킹은 24위. 출전 선수 16명 중 12위였다. 하지만 그의 금빛 발차기에 세계 톱 랭커들이 하나 둘 ‘녹아웃’됐다. 결승까지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첫판인 16강전에서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하티제 일귄(튀르키예·5위)을 만났고, 8강전에서는 스카일러 박(캐나다·세계 4위)과 일전을 벌였다. 준결승에서는 세계 1위인 중국의 뤄쭝수와 마주쳤다. 5위, 4위, 1위, 2위를 연달아 격파하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세계 순위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올림픽에서 증명했던 김유진이지만, 파리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전까지 “너무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한국 태권도는 올림픽 출전권 3장을 확보한 뒤 대륙별 선발전을 통해 1장의 티켓을 더 딸 수 있었는데, 논의 끝에 여자 57㎏에 도전하기로 했다. 당시 김유진은 올림픽 랭킹 포인트를 충분히 얻지 못해 자력으로 출전권을 얻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자체 국내 선발전을 거친 뒤 대륙별 선발전에 출전해 상위 2명에게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김유진은 힘들게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훈련으로 약점으로 꼽힌 순발력과 체력을 키웠다. 그리고 갈고닦은 실력으로 상대를 향해 과감하게 금빛 발차기를 꽂아넣으며 모든 상대를 격파했다.

한국 태권도는 김유진의 우승으로 2000 시드니 올림픽(장재은), 2004 아테네 올림픽(장지원), 2008 베이징 올림픽(임수정) 이후 끊긴 종주국의 금메달 자존심을 다시 회복했다. 전날 남자 58㎏ 박태준에 이은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하며 당초 세웠던 목표(금메달 1개 이상)도 넘어섰다.

2012 런던,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는 이 체급 출전자가 없었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때는 이아름이 나섰으나 메달을 따지 못했다.

수차례 이변을 이어가며 ‘반전 스토리’를 완성한 김유진은 상위 랭커를 잡은 비결이 뭐냐는 취재진 질의에 평정심을 찾은 덕이라고 답했다. 결승 진출을 확정한 후 김유진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관두고 싶을 정도로 정말 힘들게 훈련했다”고 말했다.

남자 58㎏급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준(경희대)은 김유진의 우승을 예상했다. 김유진의 16강전 직후 박태준은 “(김유진)누나가 정말, 정말로 열심히 훈련했다”며 “오전에 내가 미트를 잡았는데 (몸 상태가)올라왔다” 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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