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쏘고, 잘 찌르고, 잘 차고…” 폭염 잊게 한 파리의 승전보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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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사격·펜싱에서만 금메달 10개
역대 최다 금메달 13개와 타이 기록
선수단 규모 48년 만의 최소 불구하고
10~20대 젊은 피 예상 밖 활약 덕에
금 5개 목표치 일치감치 초과 달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펜싱 대표팀. 연합뉴스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펜싱 대표팀. 연합뉴스

대한민국 선수단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기적을 연출했다.

21개 종목 선수 144명으로 이뤄진 ‘소수 정예’ 한국 선수단은 파리 올림픽 폐회를 하루 앞둔 11일 오후 6시(한국시간) 현재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9개를 획득해 종합 순위 8위를 달리고 있다. 2012 런던 대회(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9개) 이후 12년 만에 최대 성과를 거뒀다.

여자 핸드볼을 제외한 단체 구기 종목의 집단 부진으로 한국 선수단의 규모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래 48년 만에 최소로 쪼그라들었다. 금메달 목표치도 5개에 불과해 1984 로스앤젤레스 대회와 2020 도쿄 대회에서 남긴 금메달 6개보다도 적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그러나 파리 올림픽 개막과 함께 소수 정예 한국 선수단은 특유의 저력과 승부 근성을 발휘해 대회 기간 내내 거의 쉼 없이 메달을 수집하며 목표치를 일찌감치 초과 달성했다.

대회 개막 이틀째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확실한 금메달 후보인 오상욱(대전광역시청)이 예상대로 펜싱 사브르 남자 개인전에서 우승해 한국 선수단에 대회 첫 금메달을 선물했다. 같은 날 오예진(IBK기업은행)과 김예진(임실군청)이 공기권총 10m 여자 금메달과 은메달을 휩쓸면서 한국은 메달 행진에 가속도가 붙었다.

변함없는 우리의 확실한 금광인 양궁이 남녀 단체전, 혼성전, 남녀 개인전 5개 세부 종목을 싹쓸이하며 한국의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16세 고교생 명사수 반효진(대구체고)은 역대 한국 선수단 하계올림픽 100번째 금메달 수확과 하계 올림픽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라는 겹경사를 누렸다.

펜싱 사브르 남자 단체전 우승으로 오상욱은 2관왕에 올랐고, 양궁의 김우진과 임시현은 나란히 3관왕을 달성했다.

활(양궁 5개), 총(사격 3개), 검(펜싱 2개)이 대회 전반기 황금의 삼두마차로 한국 선수단을 이끌었다면 반환점을 막 돌 무렵에는 배드민턴의 안세영(삼성생명)이 28년 만에 올림픽 여자 단식을 제패해 힘을 실었다.

후반기에는 태권도의 박태준(경희대)과 김유진(울산시체육회)이 잇단 금빛 발차기로 2008 베이징, 2012 런던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기록한 역대 올림픽 최다 금메달(13개)과 타이를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목표를 크게 웃도는 결과는 반효진, 오예진, 양지인(이상 사격)과 박태준, 김유진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젊은 피의 예상을 깬 대활약 덕분이다. 이들은 경험이 재산이라는 올림픽에서 패기와 무서운 집중력으로 생애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금메달은 없었지만, 은메달 2개와 동메달 3개로 2000년 시드니 대회 이래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내 부활의 청신호를 켠 유도, 12년 만에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수영과 복싱도 희망을 쏘아 올렸다.

특히 한국 선수단이 따낸 금메달 13개 중 10개가 총, 칼, 활로 가져온 것이다.

한국 양궁 대표팀은 목표한 ‘금메달 3∼4개’를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 국제 대회 경험이 적은 여자대표팀을 향한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와 앵발리드 특설 사로가 있는 센강변의 강바람, 쨍한 햇볕과 구름 낀 하늘을 오간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등이 태극 궁사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금빛 화살로 보기 좋게 꿰뚫어버렸다.

활쏘기로 밥벌이하는 실업 선수가 404명이나 되는 ‘넘사벽’ 저변을 바탕으로 회장사 현대차그룹의 꾸준한 지원 아래 양궁 경기인과 행정인이 지금처럼 화합하며 최고의 선수 육성·평가 시스템을 지켜나간다면, 한국 양궁의 신화는 4년 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격 대표팀은 당초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 정도를 예상했는데 샤토루에서 이를 훌쩍 뛰어넘는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를 수확했다.

4년 뒤가 더 기대되는 한국 사격이다. 2003년생 양지인, 2005년생 오예진, 2007년생 반효진 등 2000년대에 태어난 어린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전성기를 예고했다.

펜싱 대표팀은 이 종목의 ‘본고장’ 격인 프랑스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로 ‘멀티 골드’의 값진 성과를 거뒀다. 금메달 2개를 간판 종목인 남자 사브르가 책임졌다.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이번 대회 직전 1년이 되지 않는 사이에 2명이 은퇴해 급격한 세대교체가 진행되는 변수가 있었는데도 파리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그랑팔레에서 ‘금빛 찌르기’에 성공한 것이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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