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중구에서 생각해보는 BTS·나운규·부산
이재혁 (사)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방탄소년단 BTS가 일본, 미국, 멕시코에 이어 부산 공연을 마치고 유럽에 머물고 있다.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유럽을 휘저은 후에는 다시 중남미, 아시아, 오세아니아 공연이 이어진다고 한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유랑할 때 김구 선생은 일찍이 〈백범일지〉에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랬는데, 광복 70년 만에 실제로 청년 일곱 명이 세계 대중문화를 장악하여, 선한 영향력으로 세계 인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믿기지 않는 일이 우리 앞에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 12~13일 부산 공연 때만 해도 우리 도시를 찾은 BTS 팬이 2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 만물에 뿌리가 있듯이, 자랑스러운 ‘아리랑’ 세계 공연에도 뿌리가 있다. 그런데 BTS의 ‘아리랑’은 딱 100년 전인 1926년 춘사 나운규(1902~1937)가 만든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다. 본조아리랑 혹은 경기 아리랑이라고 불리는 이 노래는, 그러니까 까마득한 옛날부터 우리가 불러오던 곡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풍운아 나운규가 단성사 합주단과 협력하여 만든 창작곡이다. 노랫말도 물론 나운규의 작품이다. 식민지 시기의 민족적 울분을 통쾌히 달래준 영화 ‘아리랑’은 서울 유학 후 실성해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영진이 동네 악덕 지주의 하수인에게 시달리는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보며 겪는 수난과 핍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의 끝부분에서 영진이 일본 순사에게 살인범으로 붙들려 손을 묶인 채 끌려갈 때, 마을 사람 모두가 아리랑 고개까지 따라 나와 눈물과 합창으로 부르는 노래가 BTS의 ‘아리랑’이다.
김구 선생 열망한 '높은 문화의 힘'
BTS 아리랑 세계 공연으로 현실화
뿌리는 100년 전 나운규 동명 영화
민족적 울분 창작 주제가로 녹여내
당시 부산 중구서 곡 다듬었을 듯
관련 이야기 발굴, 도시 가치 높여야
나운규가 ‘문예영화’라는 잡지에 남긴 ‘나의 러시아 방랑기’라는 자서전을 보면, 함경도 회령 출신인 그는 1919년 3월 만주의 명동 중학교 재학 중에 3·1운동에 가담하여 일경에 쫓기는 바람에 ‘장발장처럼’ 북간도와 러시아 연해주를 2년간 떠돈다. 이후 비밀결사조직 ‘도판부’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서울에서 체포되어 청진 감옥에 2년간 갇혀있다가, 1924년 초에 “영화나 해보자”라며 책과 이부자리를 팔아 부산으로 내려온다. 당시 부산에는 일본인 자본가와 영화 기술자, 조선인 연출자와 배우들이 모여 한국 최초의 영화사인 ‘조선키네마 주식회사’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운규는 부산에서 ‘해의 비곡’ ‘운영전’ ‘심청전’ ‘농중조’ 등 네 개의 작품에 출연하여 단역을 맡거나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 영화인으로서의 새로운 꿈을 키웠다. 그리곤 2년 만인 1926년 초에 서울로 상경, 바로 그 해에 위대한 영화 ‘아리랑’과 그 주제곡 ‘아리랑’을 민족 앞에 터뜨렸다. 나는 그가 어릴 적 고향의 철도 공사장에서 처음 들었다는, 남쪽 출신의 어느 인부가 불렀다는 그 아리랑 가락을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청진 감옥에서도 계속 품고 있다가, 부산에서 그 씨앗을 개화했다고 본다. 중구의 40계단문화관에서 오른쪽으로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주)조선키네마가 있던 자리로 가본다. 원래는 러시아 외무부가 부산주재 러시아 부 영사관 건축용지로 사두었던 곳인데, 조선키네마의 영화 작업이 주로 이 터 안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그 당시를 알리는 벽화와 동판만 남아있지만, 나운규 선생도 밤낮없이 여기에서 작업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좁은 골목길과 계단을 내려가서, 매립지의 일본인 거리를 돌아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는 관부연락선 부두까지 수시로 오가면서 BTS의 아리랑 곡조와 가사를 속으로 다듬고 다듬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연결이 안 된다. 아무리 나운규이고 아무리 천재라도, 부산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간 바로 그해 10월 1일에 단성사에서 곧바로 ‘아리랑’ 폭탄을 터뜨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연속적이고,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뿌리가 있다. 오늘은 자랑스러운 BTS의 아리랑 세계 투어와 세계 인민의 아리랑 합창 깊은 곳에 청년 나운규의 방랑과 고뇌,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부산 중구의 담벼락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약속이 있어 연산동에서 수영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지민의 사진이 도배된 BTS 열차에 우연히 앉았다. 아리랑~나운규~(주)조선키네마 연결선 위에서 계속 곱씹다 보면, 지민과 정국의 고향이 부산이라는 것,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불리는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과제는 우리가 몰랐던 숨은 이야기를 더 발굴하고 얽고 접속하여 ‘아리랑의 도시’ ‘BTS 성지순례 도시’로서의 부산의 문화지도를 새롭게 더 보충하는 일일 것이다. 나운규와 아리랑과 BTS를 원본으로 새 형태의 창조적인 데칼코마니를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형성하여, 우리의 도시 가치를 스스로 높여가는 작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