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축제, 환대의 자리
이산들 프리랜서
어느 때보다 선선했던 6월이 지나고 여름이 온다.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다. 축제(祝祭, festival)는 축하와 제사를 아우르는 말이다. 개인이나 집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과 시간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삶에는 크고 작은 축제들이 있어 함께 축하하고 때로는 슬퍼할 기회를 준다. 인생에 그런 축제가 있다는 것은 개인과 사회를 끈끈하게 붙들어 매는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축제는 부산국제영화제이다. 지금은 영화의전당을 중심으로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가며 다양한 영화와 영화인의 이야기를 만났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 뒤로도 여러 축제를 만났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축제의 자리는 몇 안 된다.
크고 작은 축제들이 개인과 사회 연결
경계 허물고 연대 희망 주면 오래 남아
축제 단순 여흥 아닌 삶에 필요한 것
가벼움만 남고 환대 없는 축제 적잖아
부산 여름 축제 환대의 내력 되살려
도시를 사랑하고 이어 가는 힘 돼야
몇 해째 참가하는 ‘훌라당 댄스 페스티벌’이 있다. 하와이 전통 춤 훌라를 가르치는 커뮤니티가 여는 축제다. 작은 모임으로 시작해 지금은 수백 명이 모이는 자리가 되었다. 이 축제의 바탕은 알로하(Aloha) 정신이다. 알로하는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담고 있는 하와이의 인사말이다. 그래서인지 서툴고 어리숙한 몸짓도 있는 그대로 포용한다. 어떤 모습이든 받아지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곁의 사람들과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느낀다. 낯선 이들과 눈빛과 몸짓을 나누다 보면 편안함까지도 느껴진다.
다른 하나는 뜻밖의 자리에서 왔다. 재작년 여의도 일대에서 열린 탄핵 집회다.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나란히 서서 같은 구호를 외치던 그 밤을 나는 일종의 축제로 기억한다. 그 겨울 광장에는 슬픔과 분노만 있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함께 그려 보는 묘한 활기가 흘렀다. 그 축제 같은 집회의 동력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힘을 넘겨주어 우리 사회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 밤의 결속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세 축제가 나에게 남긴 것을 환대라고 부르고 싶다.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는 뿌리가 같다. 둘 다 낯선 이를 가리키는 옛말에서 갈라져 나왔다. 낯선 사람을 손님으로 맞아들일 것인가, 위협으로 밀어낼 것인가. 축제란 그 갈림길에서 환대를 택하는 자리다. 훌라에 흐르는 알로하의 정신이 그러하듯, 좋은 축제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너와 나 사이의 벽을 낮춘다. 그렇게 축제는 사람을 사람에게, 나와 사회를 잇는 오래된 방식이 된다.
축제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여흥은 아니다. 가볍기보다 무거운 것,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빈곤한 시대에도 사람들이 축제를 멈추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무게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자리가 죽음의 자리다. 옛사람들은 장례조차 잔치로 감쌌다. 떠나는 이의 곁에서 산 사람들의 웃음과 음식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누군가 세상을 등지는 동안에도 세상의 소리는 멈추지 않고 남은 이들이 서로의 곁을 지킨다는 신호와 같았다. 축제는 혼자 삼키는 침묵이 아닌 기쁨과 슬픔까지 함께 끌어안아 견딜 만한 것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만나는 축제는 그 무게를 자주 잃는다. 잠시 체험하고 발을 담갔다가 빼는 소비의 자리, 재미있는 경험 하나와 사진 한 장을 얻어 돌아가는 자리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가벼움만 남고 의미와 환대가 빠질 때 축제는 시든다. 그래서 어설프게 차려진 지역 축제 앞에서 느끼는 실망은 한 개인의 투정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축제가 본래 우리를 서로에게 이어 주던 자리인 만큼, 그 자리가 헐거워질 때 아쉬움은 지역 공동체와 사회의 몫이 된다.
여름을 기점으로 부산에도 여러 축제가 열린다. 8월 해운대와 광안리 해변의 바다축제, 가을 삼락생태공원의 록 페스티벌, 10월 전 세계 영화인이 모여드는 부산국제영화제까지. 화려한 볼거리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축제도 반갑지만, 나는 그 축제들이 조금 더 환대의 자리이기를, 그 가치를 잘 보존하기를 바란다. 잘 차려진 환대는 그 자체로 가장 오래가는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환대받은 사람은 그 도시를 마음에 담아 간다.
부산은 오래 사람을 맞아들이던 도시다. 피란의 시절 낯선 이들을 품었고, 항구를 통해 사람과 물건을 오가게 했다. 그 환대의 내력이 올여름 축제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면 어떨까. 함께 울고 웃으며 경계를 허문 기억은 몸에 남아, 이 도시를 사랑하고, 이어 가고 싶게 만드는 힘이 된다. 이번 여름 부산의 축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스쳐 가는 눈요기와 사진 몇 장일까, 아니면 낯선 이의 어깨에 스스럼없이 손을 얹게 하고 이 도시를 오래 아끼게 만드는 환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