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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술 미래, 사케에서 찾다] 수백 년 전통에 ‘젊음·혁신’ 더해 세계의 술로…
우리나라 전통주가 다시 붐이다. 젊은이·어르신 할 것 없이 우리 술 배우기 열풍이고 전국적으로 양조장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 주류시장의 전통주 비중은 아직 1% 수준. 미래 전망은 엇갈린다. ‘반짝 인기’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고, 급속도로 성장할 거란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K술의 대중화·세계화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부산일보>는 <서일본신문사>과 공동취재로, 우리보다 먼저 세계로 진출한 ‘사케(일본술)’의 현재를 살피고 우리 술의 미래를 짚어 본다. 전통주 전문가인 조태영 대표(양조장 ‘기다림’)와 사케 전문가 다카미 히로유키 대표(‘알 유니콘 인터내셔널’)가 동행했다.
■ 170년 전통과 최신 기술의 만남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 쌀 산지로 유명한 이토시마 지역의 한 도로변. 커다란 붓글씨체로 ‘白糸’(시라이토)라 적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855년 창업해 지역 대표 양조장으로 자리잡은 시라이토 주조의 본거지다.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한 은발의 다나카 노부히코(70) 대표는 7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양조장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거대한 나무 지렛대 모양의 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하네기’라 불리는 전통 술짜기 방식이다. 오후 2시께, 직원 2명이 달라붙어 8m 길이의 참나무 한쪽 끝에 커다란 돌을 하나씩 매달기 시작한다. ‘쩍쩍’ 무게에 눌린 나무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소리가 커질수록 기구 아래 놓인 통으로 걸러진 술이 채워진다.
하네기 방식으로 술을 짜는 건 일본 전체에서 시라이토 양조장이 유일하다. 생산 속도와 양을 늘리기 위해 양조장마다 술짜기 공정을 기계로 바꿨지만 시라이토는 170년째 전통을 고집한다. 다나카 대표는 “하네기는 술 한 통을 짜는 데 꼬박 48시간이 걸리고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지만, 기계가 할 수 없는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다”며 “나무와 돌의 조합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1855년도부터 지금껏 똑같은 기구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건넨 명함의 로고도 ‘하네기’를 본뜬 것이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 양조장의 근간이 로고 하나에 담겼다. 다나카 대표가 즉석에서 걸러지고 있는 원주를 받아 취재진에게 건넸다. 보통의 사케와는 다른, 갓 짜낸 신선함이 느껴지는 맛이다.
마지막 공정인 술짜기는 에도 시대 방식이지만, 나머지 공정은 현대식이다. 누룩방과 건조실, 효모 배양실과 분석실 등 공간마다 실험실 못지않은 기계 장비가 그득하다. 최신 설비를 활용해 잡균을 막고, 발효 온도를 관리해 술의 품질을 유지한다. 발효실에는 1500L짜리 대형 철재 탱크 14개에서 술이 익어 가는 중이다. 내년 봄까지 110개 탱크 분량이 만들어진다.
다나카 대표는 “과거에는 ‘도우지’(총책임자)의 경험에 의존했지만 요즘엔 데이터 덕분에 젊은 세대에게 술을 맡길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술도 만들고 있다”며 “새로움도 전통의 일부이며, 그래야 회사가 이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세 아들이 양조장 운영에 참여한 이후 개발한 술 ‘다나카65’는 출시되자마자 현지 주목을 받았다.
■ 기본기에 새로움 더하는 ‘젊은 리더십’
사케의 새로운 도전은 젊은 세대가 양조장을 물려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확산하는 추세다. 후쿠오카현 구루메 지역의 야마노 고토부키 주조도 5년 전 30대의 나이에 가타야마 이쿠요(44) 대표가 전면에 나서며 변화를 맞았다.
둘째 딸로서 아버지의 뒤를 이은 가타야마 대표는 초반 2년간 기본 다지기에 충실했다. 그는 “‘다도’의 기본 정신을 떠올리며 술 빚기의 기본에 신경을 썼다”며 “우선은 업계 선배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각종 품평회에서 수상을 하며 기본기를 갖추자 비로소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20년 선보인 ‘프리스크 1·2’가 대표적이다. ‘프리스크 1’은 누룩 가스를 남겨 탄산감이 있고, ‘프리크스 2’는 수제맥주 같은 과실 향이 특징이다.
지난해부터는 또 다른 실험을 시작했다. ‘야마다니시키’ ‘오마치’ 같은 술전용쌀 품종이 아니라 일반쌀로 술 빚기에 나선 것이다. 가타야마 대표는 “코로나 기간에 우연히 200년 전 창업자의 일기를 발견했는데, 양조장 창업 배경이 적혀 있었다”며 “쌀이 풍부한 반면 겨울 산업이 없는 이 지역을 위해 양조장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창업 정신을 되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야마노 고토부키 양조장은 현재 전체 사케 생산량 중 70%는 술전용쌀, 30%는 지역에서 재배한 일반쌀을 쓴다. 작년 봄 첫선을 보인 일반 쌀 사케의 반응이 좋아 올해는 증산할 계획이다.
이에 더해 가타야마 대표는 200년 넘게 이어 오던 도우지 제도도 없앴다. 대신 직원 5명과 함께 디자인·영업·술 빚기·분석까지 모든 작업 내용을 단체 채팅방으로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나눈다. ‘대표-도우지-직원’의 수직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꾼 것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양조장이기에 가능한 실험이기도 하다.
다카미 대표는 “옛날 아버지 세대라면 인정받기 힘든 새로운 리더십”이라며 “요즘 시대와 잘 맞아떨어져 재밌는 술이 등장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쌀 생산자와 사케 양조장의 ‘공생’
일본 사케와 우리나라 전통주는 쌀·물·누룩을 쓴다는 점에선 비슷해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재료부터 공정까지 차이가 난다. 특히 원재료인 쌀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사케는 술전용쌀(주조호적미)을 주로 사용하는데, 1930년대 효고현에서 개발된 ‘야마다니시키’ 품종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술전용쌀은 생산자와 양조장 사이의 ‘계약재배’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야마다니시키가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후쿠오카현 이토시마 지역도 주 생산지 중 하나가 됐다. 한때 효고현에 이어 전국 2위 생산량을 자랑했는데 현재는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JA(농협)이토시마 양조쌀협회 호리타 가츠유키 협회장은 “야마다니시키는 일반쌀에 비해 재배가 어렵지만 가격이 높기 때문에 농가 수익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며 “계약 물량과 실제 수확량이 차이가 나더라도, 전체 양조장에 적절하게 물량을 배분하며 수요와 공급을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쌀 생산자와 양조장의 ‘상부상조’ 관계가 사케 산업의 든든한 토대인 셈이다.
구루메 지역 125년 역사의 모리노쿠라 양조장은 계약재배를 넘어 쌀 생산에 직접 관여한다. 자체 논을 보유 중이고, 계약재배 논도 수시로 방문해 일손을 돕는다. 모리나가 가즈히로(52) 대표는 “여러 음식에 어울리는, 식탁 활용도 높은 술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부재료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그러려면 원재료가 우수해야 하는데, 특히 대표 브랜드인 ‘모리노쿠라’와 ‘고마구라’ 2종은 지역 쌀만 고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리노쿠라 양조장의 ‘자연 순환’ 철학도 흥미롭다. 수확한 쌀로 사케를 만든 뒤 남은 지게미로 소주를 빚고, 소주 지게미는 비료로 써서 다시 쌀을 재배하는 식이다. 조태영 대표는 “10년 전 부산에 전통주 양조장을 설립하면서부터 비슷한 방식을 구상해 왔는데, 술 빚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전체를 재활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며 “우리나라 양조장도 적극 도입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사가현(일본)/글·사진=이대진·히라바루 나오코(서일본신문)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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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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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함께 건강한 여름 나기…중앙동 40계단 발효소 '복분자 약주' [술도락 맛홀릭] <15>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한여름 무더위는 전통주도 견디기 어렵다. 고온 탓에 술이 쉬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여름이 제철인 우리 술이 있다. ‘과하주(過夏酒)’, 이름 그대로 ‘여름이 지나도록 맛이 안 변하고, 여름에 마셔 건강하게 더위를 이겨 내는 술’이다. 부산 원도심에는 과하주를 빚는 작은 양조장이 있다. 복분자를 넣어 빛깔과 향미까지 특색 있다. 싱그러운 과실 향과 술 익는 내음이 있는 골목을 찾아 나섰다.
■ 40계단 역사 품은 신생 양조장
한국전쟁 피란민의 아픔이 서린 곳, 중구 중앙동 40계단 앞에서 인쇄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작은 상가 건물의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40계단 발효소’.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3층까지 오르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건물의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조심조심 한 계단씩 올라 회색 철문을 열자 바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밝고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고향이 영도여서 중앙동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동네였어요. 양조장을 차릴 땐 코로나 이전이라 관광객도 많았고, 술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지 않을까 생각했죠.”
취재진을 맞은 조부영(51) 대표는 꾸밈없는 말투로 양조장을 소개했다. 주인장을 닮아 공간은 소박하고 설비도 단출하다. 전체 60㎡에 제조실과 발효실, 저온숙성실이 오밀오밀 자리한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쪽에 보랏빛 술병이 전시돼 있다. 40계단 발효소의 대표술인 ‘꽃빛’과 ‘마주향해’다. 보라색은 복분자의 빛깔이다. 꽃빛은 세 번 빚은 삼양주, 마주향해는 이양주에 증류주를 더한 과하주다. 복분자를 넣어 만든 과하주는 마주향해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40계단 발효소는 조 대표 홀로 운영하는 1인 양조장이다. 한 달에 생산하는 술은 200병 남짓. 소규모 양조장이어서 인터넷 판매도 안 된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부산·경남지역은 물론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 등지에서 오는 방문객이 꾸준하다.
술과 양조장의 인지도와 달리 조 대표의 경력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4년 전 여름, 남편이 덜컥 벌인 일이 그를 전통주 세계로 이끌었다.
“2019년 봄부터 지인을 따라 미리내우리술공방에서 술을 몇 번 빚었어요. 소금도 만들 수 있다길래, 복분자주를 빚은 뒤 남은 지게미로 만들어 봤죠. 그런데 남편이 소금 아이템으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예비창업 프로그램에 신청을 한 거예요.”
예상과 달리 최종 선정되면서 일이 커져 버렸다. 소금의 원료인 술지게미는 사고파는 식재료가 아니라, 지게미를 얻기 위해 결국 양조장까지 차리게 됐다.
전업주부에서 양조장 대표가 됐지만 조 대표의 전통주 경험은 앞서 술공방에서 빚어 본 세 번이 전부였다. 조 대표는 미리내우리술공방 손승희 대표의 도움을 받아 부랴부랴 복분자 약주 레시피의 기본 틀을 완성하고 술 빚기에 몰두했다. 2020년 2월 소규모 양조장 면허를 내고 추석에 맞춰 첫 제품 ‘꽃빛’과 ‘꽃빛소금’을 내놓기까지, 단 1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 같지만 다른 복분자 약주·과하주
“너무 갑작스럽게 양조장을 열다 보니 한동안 밤잠을 설쳤어요. 주변에선 왜 홍보를 안 하냐고 그러는데, 술이 안 팔리는 건 전혀 신경이 안 쓰였어요. 술맛이 안정화되기 전까진 오히려 많이 팔릴까 봐 무서웠죠.” 판매보다 술맛을 우선하는 조 대표의 초심은 지금도 한결같다.
‘꽃빛’은 이름부터 눈길이 간다. 복분자에 함유된 항산화 물질 ‘안토시아닌’의 라틴어 뜻을 우리 말로 푼 것이다. 술공방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선배이자 술 빚기 선배인 <부산일보> 김승일 기자의 작명이다.
꽃빛을 유리잔에 따라 빛깔만 보면 와인과 분간이 안 될 정도다. 한 모금 들이켜자 여느 복분자주처럼 너무 달지도 끈적거리지도 않는다. 담금주에다 복분자 열매와 설탕을 넣은 과실주가 아니라, 쌀로 빚은 약주에 복분자를 가미했기 때문이다. 누룩취를 줄이려고 전통누룩과 백국을 섞어 쓰고, 삼양주라 다른 복분자 약주와 비교해도 단맛이 덜하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세 번의 술 빚기 중 먼저 멥쌀 죽으로 밑술을 만든다. 그 다음 찹쌀 죽으로 첫 번째 덧술, 찹쌀 고두밥과 복분자로 두 번째 덧술을 한다. 복분자는 전북 고창군에서 따자마자 급속냉동한 열매를 쓴다. 8~9주 충분히 발효를 시키고 광목천으로 거른 뒤 저온숙성고에서 2달 더 숙성을 한다. 한 병이 나오기까지 넉 달가량 기다리는 셈이다. 침전물은 필터를 쓰지 않고 긴 숙성 과정에서 가라앉힌다. 이후 맑은 부분만 떠내 병에 담는다. 기계·필터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술 빛깔이 탁하지 않은 이유다.
조 대표는 지난해 설을 맞아 2가지 술(이양주)을 더 내놨다. 과하주 ‘마주향해’와 복분자를 뺀 약주 ‘은빛’이다. “술을 계속 빚어 보니 누룩을 많이 쓴다고 누룩취가 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전통누룩만 사용해 단맛과 산미가 좀 더 조화를 이룬 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증류주가 들어가는 과하주 ‘마주향해’는 약주 중에서도 고급이다. 복분자와 함께 덧술을 한 뒤 발효 후반부에 조 대표가 직접 만든 ‘증류주’를 가미한다. 서로 다른 약주와 증류주가 만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의미가 술 이름에 담겼다.
꽃빛과 마주향해는 같은 복분자 약주 계열이라 빛깔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 알코올 도수도 똑같이 17도다. 그래도 오감에 집중해 시음을 하면 향미의 차이가 느껴진다. 마주향해의 복분자 향이 더 분명하고, 뒷맛에서 증류주의 알코올 기운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 40계단서 하산하는 그날…
40계단 발효소는 자체 술 말고도 인근 비건 레스토랑 ‘아르프’에 전용 술을 납품한다. 계절별로 영도 녹차, 배·라임, 향신료 등이 들어간 약주다. 지역 음식점과 작은 양조장의 협업은 새로운 사업 모델로 업계 관심을 받고 있다.
40계단 발효소의 술은 양조장과 일부 보틀숍·전통주점에서만 만날 수 있어 귀하다. 양조장 근처에 술과 곁들일 만한 음식점이 여럿이어서 이왕이면 직접 방문할 만하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30여 년 역사의 ‘석기시대’는 오향장육이 대표 메뉴다. 그날그날 삶아 내놓는 고기는 부드럽고, 고기 위에 얹은 오이·양파·고추와 새콤한 양념이 시원함을 더한다. 양조장에서 두 블록 떨어진 중국음식점 ‘홍문’의 고추잡채는 겨울철 따뜻하게 즐길 만하다. 두 음식 모두 꽃빛 혹은 마주향해의 깔끔한 산미와 잘 어울린다.
햇수로 4년. 40계단 발효소는 문을 열자마자 코로나 팬데믹을 만났지만 묵묵히 버텨 온 끝에 업계에선 술 잘 만드는 양조장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남들이 다 말릴 때 남편만 응원을 해 줬어요. 일단 2년만 버텨 보자고 했거든요. 힘 쓰는 일이나 각종 행정 업무를 남편이 도맡아서 도와준 덕분에 저는 술 빚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저보고 ‘(3층에서 1층으로)하산할 준비 됐냐’고 해요. 하하.”
부부의 바람대로 40계단 발효소의 다음 단계는 1층에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술을 매개로 사람들과의 접점을 넓혀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분야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술의 장점인 것 같아요. 새 공간을 마련해 저희 술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드리고, 각계각층 사람들이 술을 매개로 음식·문학·음악 등 다양한 주제로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40계단에서 ‘하산’하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제품명 : 꽃빛
-양조장 : 40계단 발효소(부산 중구)
-내용량 : 500mL
-알코올 : 17.0%
-원재료 : 정제수·쌀·복분자·누룩·효모·입국
-제품명 : 마주향해
-양조장 : 40계단 발효소(부산 중구)
-내용량 : 375mL
-알코올 : 17.0%
-원재료 : 정제수·쌀·복분자·누룩·증류소주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꽃빛
"일단 맛있다. 복분자가 들어가서인지 보통 풀내음이 연상되는 일반적인 약주와 달라 신기하다."
-마주향해
"복분자 재료의 특성을 증류주가 더 돋보이게 해 주는 것 같다. 향도 풍부하고 술 먹는 기분이 난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꽃빛
"약주와 복분자의 장점을 잘 블렌딩한 느낌. 상큼한 복분자가 약주의 묵직함을 훌륭히 완화시킨다."
-마주향해
"약주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묵직한 단맛. 술 본연의 향이 느껴진다. 치즈·크래커류와 잘 어울릴 듯."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꽃빛
"복분자의 상큼함이 입맛을 돋운다. 과일주처럼 가볍지 않고 알코올 향이 술 정체성을 지켜 준다."
-마주향해
"산미가 혀끝과 입안에서 전체적으로 오래 감돈다. 느끼함을 잡아 줘 기름진 육류와 어울릴 것 같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꽃빛
"포도주 마시는 느낌이라 알코올 도수가 17도 정도로 센 줄 모르겠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약주다."
-마주향해
"꽃빛보다 더 새콤하고 알코올 향도 더 많이 느껴진다. 꽃빛이 와인이라면 마주향해는 진짜 술이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꽃빛
"잘 익은 검붉은 과실의 짙은 컬러가 느껴진다. 외관상으로는 와인 같은 느낌을 물씬 전한다. 코를 갖다 대니 싱그러운 복분자 향과 함께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다가온다. 한 잔 머금으면 부드럽게 넘어가는 느낌에서 좋은 첫인상을 받고, 뒤이어 느껴지는 아주 적절한 단맛에 기분 좋게 잔을 비우게 된다. 밸런스가 정말 좋은 복분자 약주이며, 시중의 복분자주 강한 단맛이 싫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정도 퀄리티면 여름에 쟁여 놓고 초복·중복·말복을 장어와 함께해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잘 만든 복분자 약주를 만나서 기쁘다. 부드럽고 우아한 여운에 빠져들게 된다."
-마주향해
"컬러와 향의 결은 꽃빛과 비슷한 듯하지만 향에서 스파이시함과 담백함이 더해진 게 느껴진다. 스월링(술 따른 잔을 둥글게 돌리는 행동) 할 때마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감도 있다. 꽃빛보다는 덜 달고, 뒤로 갈수록 부드러운 단맛에 은근한 산미와 스파이시한 맛이 느껴진다. 후미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라 애주가들을 타깃으로 탄생한 복분자 과하주라 하겠다."
2023-08-16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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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담은 순곡주 ‘대담’…상쾌하거나 달콤하거나 [술도락 맛홀릭] <14>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고결한 군자에 비유해 옛 선조들이 시와 그림의 소재로 삼은 사군자. ‘매란국죽’ 중에서도 대나무는 가장 먼저 역사기록에 등장할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사시사철 푸르른 대숲을 마주하면 강인하면서 담백하고, 맑고도 건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느낌을 온전히 술맛에 담아내는 양조장이 있다. 손수 일군 대나무 잎과 수액이 술의 재료다. ‘대나무를 가꾸는 게 지구를 살리는 길’이라는 신념을 가진 한 양조인을 만나러 경남 사천시로 향했다.
■ 체험마을 촌장에서 양조인으로
사천시 곤양면 서정리의 한 마을. 뒷산에 울창한 대밭이 펼쳐진다. 숲속으로 몇 걸음 옮기자 듬성등섬 큼지막한 대나무 밑동이 베어진 채, 비닐 파우치가 씌워져 있다. 막바지 대나무 수액을 받는 현장이다.
“대나무 수액은 5월부터 7월 중순까지 채취합니다. 대나무의 적은 대나무라서 적절히 간벌을 해줘야 해요. 한 평에 한 그루 정도씩 베어 내 수액을 채취하면 자연스럽게 간벌도 돼요. 거기다 건강한 대나무숲은 일반 나무 3배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니 일석삼조인 셈이죠.”
대밭고을 강태욱(56) 대표는 취재진과 만나자마자 대나무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의 각별한 대나무 사랑엔 ‘오랜 이유’가 있다. 1998년 IMF 사태로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왔을 때, 10만 평의 대나무밭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평생 농민운동에 헌신한 아버지가 수십 년 동안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일군 대밭이었다.
대나무를 활용해 일을 해 보면 어떻겠냐는 아버지의 말씀에 강 대표는 수액을 떠올렸다. “당시엔 주로 일본에 대나무 수액이 있었고, 국내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수액을 받아 드시던 게 생각나 안정적으로 대나무 수액을 채취하는 방법을 연구했죠. 무더운 여름철엔 하루만 지나도 상해버리거든요.”
강 대표는 경상남도농업기술원과 함께 대나무 수액을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상온 장기 보관법’을 개발했고, 특허도 출원했다. 우연히 TV 프로그램 ‘6시 내고향’에 소개되면서 수액을 찾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강 대표는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기 미안해 대숲 산책코스 등을 개발했고, 2002년 ‘비봉내마을’이란 체험마을로 거듭났다. 당시로선 흔치 않은 농촌 관광의 시작이다.
강 대표가 본격적으로 대나무 술을 연구하기 시작한 건 2018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21년 봄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았지만 첫 번째 술(탁주)은 지난해 가을에서야 출시됐다. 체험마을 촌장에서 양조인으로, 뒤늦게 우리 술에 빠져든 이유는 뭘까. 대나무를 담았다는 뜻의 술 이름 ‘대담’에는 대나무와 술의 만남, 그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다.
■ 대나무잎과 수액, 200독의 술 빚기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강 대표는 대나무에 진심이었다. 정성스레 수액을 받고 죽순을 캤다. 2007년엔 영농조합법인(대밭고을)을 만들어 댓잎차를 생산하기도 했다. 이어 대나무 수액 고추장, 대나무 숯 등 다양한 제품 개발을 시도하다 그만 폭발 사고를 당했다. 큰 부상을 입은 데다 체험마을 방문객도 줄면서 강 대표는 가족과 함께 해외로 떠났다. 그러다 2018년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대나무밭으로 돌아왔다.
“남은 삶을 덤이라고 생각하니, 예전의 생각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사고 전까진 돈을 벌기 위해서 대나무 일을 했다면, 이후엔 이 대나무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며 품은 고민의 해답을 강 대표는 전통주에서 찾았다. 우리 술을 빚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그가 스스럼없이 두 번째 아버지라 부르는 분 때문이다. 대나무 수액을 연구할 때 도움을 줬고, 이후 경남도농업기술원장까지 지낸 이상대 박사다. 한국으로 돌아온 강 대표는 “수액으로 술을 만들고, 관련 공부도 하라”는 20년 전 이 박사의 조언을 떠올렸다. 서울과 사천을 오가며 대학원에서 전통주 공부(양조학)에 매진했고, 여러 곳의 전문교육기관에서 술 빚기를 배웠다.
“한 달에 열 독(항아리)씩, 3년 동안 200독 넘게 빚은 것 같아요. 항아리를 많이도 깨먹었죠. 이 정도 술맛이면 되겠다 싶어 양조장을 차렸는데, 200L짜리 대용량 통을 쓰니까 술이 다 망해버리는 거예요. 술을 빚고 내버리기를 반복하며 또 1년여를 허비했죠.”
5년간의 공부와 연구·실험 끝에 탄생한 ‘대담’은 세 번 빚는 삼양주다. 범벅과 누룩을 혼합한 밑술을 36시간 발효하고, 다시 죽으로 덧술을 해 24시간, 마지막으로 고두밥을 섞어 48시간 더 발효시킨다. 단계별 발효 사이에 하루이틀 급속냉각을 하는 게 특징이다. 마지막 저온 숙성 단계에서는 대나무잎을 넣는다. 대나무의 항균력이 잡냄새를 잡아 주고 숙성을 돕는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약주는 탁주를 걸러 6개월 더 숙성한다. 한 병의 술이 나오기까지 탁주 ‘대담13’은 3개월, 약주인 ‘대담15’는 9개월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 덤으로 더불어 사는 ‘술 익는 마을’
대나무의 기운이 담겨서일까. 대담13을 한 모금 가져가자 텁텁함 대신 입안 가득 상쾌함이 감돈다. 대담15는 달콤한 향미가 돋보인다. 인공 첨가물 없이 쌀의 힘만으로 만들어 낸 순곡주의 건강한 단맛이다.
“쌀과 물, 누룩만 쓴 순곡주여야 정상적으로 빚은 술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술은 쌀의 전분을 99% 이상 완전히 발효시키기 때문에 탄산이 전혀 없고, 누룩 함량이 일반 막걸리보다 적은 6% 정도라 누룩취도 거의 나지 않습니다.”
대담과 곁들일 만한 추천 음식으로 강 대표는 크래커류와 해산물을 꼽는다. 곤양터미널 인근 식당 ‘덕원각’에서는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2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해 온 주인장이 매일 새벽 삼천포 수산시장에서 해산물을 공수해 온다. 대표메뉴인 ‘곤양군수밥상’은 키조개를 비롯한 각종 조개류와 회·문어·전복·소라·멍게·새우·생선구이 등 상차림이 푸짐하다. 해산물은 크기부터 압도하는데, 지역에서 나는 제철 음식의 싱싱함에 대담의 깔끔함이 잘 어우러진다.
강 대표는 이달 중 증류주 ‘담53’도 정식 출시할 계획이다. 물 대신 대나무 수액으로 빚은 약주를 1년 더 숙성시켜 전통 소줏고리로 증류한 술이다. 대나무 3000그루에서만 받은 수액이어서 단 300병 한정이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주류박람회에 선을 보여 전통주 전문가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강 대표는 지난해 여름부터 지역민을 대상으로 술 빚기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산림복지진흥원과 연계해 ‘우리술 학교’를 열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올해는 국립경상대 평생교육원에 강좌가 개설됐다. 지금까지 강 대표가 가르친 교육생만 100명 정도. 하반기에는 중급반을 운영할 계획이다.
“지역에서 전통주를 제대로 배우려면 서울로 올라가야 해요. 지역에도 전통주 문화가 있어야 하잖아요. 언젠가는 지역 농산물로 술을 빚는 건강한 먹거리 문화가 생길 거란 생각으로, 술 교육을 통해 그 밑거름을 닦으려고 합니다.”
강 대표의 더 큰 꿈은 ‘술 익는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공유형 양조장을 만들어 지역 양조인을 키워 내면, 이들이 하나둘 주변에 양조장을 차리고, 마을 전체가 술 익는 내음으로 가득 차는 그림이다. 대밭고을은 올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덤으로 사는 인생을 지역 주민과 함께하겠다는 강 대표의 다짐이 조금씩 익어 가고 있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대담13) “뒷맛에서 알코올 기운이 확 올라온다. 담백하고 깔끔하다.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담15) “와인향에 더해 상큼하면서도 묵직한 약초향과 풀향이 난다. 깔끔한 해산물과 잘 어울릴 듯.”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대담13) “진하지만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단맛이 감돈다. 매운 음식하고 잘 어울릴 것 같다.”
(대담15) “와인향이 나서 새콤함을 예상했는데 아니다. 막걸리보다 더 달다. 약주에 한 표를 주고 싶다.”
▶김보경 디지털미디어부 PD
(대담13) “처음엔 알코올의 센 맛이, 끝에선 산뜻한 풀 내음이 난다. 깔끔한 막걸리 애호가에게 추천.”
(대담15) “향은 스파클링 와인 같은데, 탄산 없는 단맛이라 금방 물릴 수도… 막걸리가 좀 더 낫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대담13) “깔끔하고 마지막엔 향긋함이 감돈다. 진하지만 걸쭉하게 남는 게 없어 가볍게 즐길 만하다.”
(대담15) “일반적인 약주 같지 않고 달달해 진입장벽이 낮을 것 같다. 짭쪼름한 음식과 잘 어울릴 듯.”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대담13 “잔에서 부드러운 곡향과 단향이 살포시 피어오르며, 뒤이어 요구르트향과 가벼운 풀향, 청포도향 등이 나타난다. 향처럼 맛도 편한 느낌의 막걸리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잔을 들이켜게 되지만, 담백하면서도 산뜻함이 다가오다 뒤에서 느껴지는 쓴맛에서 알코올 도수가 느껴진다.”
대담15 “약간 불투명한 느낌의 라이트 골드 컬러의 약주다. 탁주보다 농밀한 향이 느껴지는데, 크리미하면서 단향도 좀 더 진하다. 적당한 곡물의 단맛과 함께 약간의 새콤함과 조금 강렬한 쓴맛이 자리 잡고 있다. 매콤하게 양념해 숯불에 구워 낸 돼지고기로 채소쌈을 크게 싸서 같이 먹고 싶다.”
-제품명 : 대담13(탁주) / 대담15(약주)
-양조장 : 대밭고을(경남 사천시)
-내용량 : 500mL
-알코올 : 13.0% / 15.0%
-원재료 : 정제수·쌀·누룩·대잎
2023-07-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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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평야 황금들녘을 한 잔에…‘전통주 세계화’ 도전하는 가야양조장 [술도락 맛홀릭] <12>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김해평야의 황금들녘으로 술을 만든다면 어떤 맛일까. 김해평야의 햅쌀로 전통주를 빚는 양조장이 있다. 외국 술만 다루다 우리 술로 ‘전향’한 양조장 대표의 이력도 흥미롭다. 금관가야의 고장 김해에서 ‘전통주 세계화’에 앞장서겠다는 양조인을 만났다.
■ 외국 술 끊고, 우리 술에 빠지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한림IC에서 빠져나와 몇몇 공장을 지나자 막다른 골목이 나타난다. 골목 끝 야산 중턱에 자리한 건물. 궂은 날씨에도 ‘가야양조장’ 다섯 글자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설립 3년이 채 안 된 신생양조장이지만 그동안 막걸리와 리큐르·증류주(소주)까지, 모두 7종의 술을 세상에 내놨다.
“주변에선 너무 빨리 여러 술을 출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어요. 하지만 양조장을 시작할 때부터 어떤 술을 언제 내놓겠다는 계획이 서 있었습니다.”
가야양조장 조이덕(52) 대표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다. 양조장을 차리기까지 10년 가까이 준비 기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노트엔 여러 술에 대한 연구 결과와 출시 계획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조 대표는 외국 술 전문가였다. 잭다니엘로 유명한 외국계 주류회사에서 15년 동안 일했다. 오랫동안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다른 나라의 경쟁사 술까지 빠짐없이 꿸 정도가 됐다. 그러다 마흔 즈음, 우연히 우리나라 전통주를 접하면서 ‘술 인생’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술도 제대로 모르면서 남의 나라 술을 열심히 팔았던 거죠. 옛날 방식 그대로 빚은 전통주의 맛에 매료되면서, 일단 우리 술을 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 대표는 업무 틈틈이 독학으로 누룩과 발효 등 전통주에 대해 공부했다. 직업상 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었기에, 위스키·와인·맥주 등 세계의 다양한 술과 비교하며 이내 우리 술의 우수성을 알게 됐다. 술 빚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해, 전통주 고수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2015년 회사를 그만 둔 뒤에는 고향 김해지역에서 주류도매업체를 운영했다. 국산 술의 유통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5년이 더 흘렀고, 발효부터 술 빚기·유통까지 전통주의 전 과정을 섭렵한 뒤 비로소 양조장을 차렸다.
조 대표는 양조장의 근거지로 고향 김해를 고집했다. 맑은 물과 비옥한 토양이 있는 김해평야의 황금들녘이라면 좋은 술을 빚을 수 있겠단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공업지역이 많은 김해시의 특성상 양조장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반 년 넘게 김해지역을 이 잡듯이 뒤진 끝에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부지를 찾느라 집사람이 고생을 엄청 많이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장소가 여긴데, 이곳마저 허가가 안 나면 포기하려고 했죠.”
■ 원재료의 풍미를 살린 ‘어머니의 맛’
설립까지 진통이 있었지만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첫 작품이자 대표 술인 ‘가야 프리미엄 막걸리’(가야막걸리)는 2020년 7월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반 년이 채 안 된 12월 1일 첫선을 보였다. 먼 친척이자 동래아들 막걸리로 유명한 부산 기다림양조장 조태영 대표의 도움이 컸다.
“양조장 공사를 하면서 설비를 갖추는 동안 기다림양조장에서 조태영 대표와 함께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완성된 레시피를 가져와 바로 술을 빚었기 때문에 빨리 출시할 수 있었어요.”
두 대표는 첨가물 없이 전통 방식 그대로 술을 빚어야 한다는 데 뜻이 일치했다. 원칙대로 가야막걸리엔 물과 쌀, 누룩과 효모만 들어간다. 쌀은 김해평야의 황금빛 기운을 듬뿍 받은 김해산이다. 특히 겨울부터 봄까지는 고향 가동마을 들녘에서 조 대표의 부모님이 직접 재배한 자경쌀을 쓴다.
가야막걸리는 20대를 겨냥해 개발한 술이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단맛과 단향이 기본을 이룬다. 쌀가루를 분쇄해 밑술을 만들고, 고두밥으로 덧술을 한 이양주다. 발효 5일, 일반 숙성 25일, 저온 숙성 3일 등 술 빚기를 시작해 시중에 판매되기까지 33일이 걸린다. 초창기 전국의 롯데마트에 납품하며 한때 월 1만 5000병가량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대에 초점을 맞췄는데 의외로 어르신들이 더 좋아하세요. 옛날 막걸리처럼 걸쭉해서 ‘어머니의 맛’ 같다며 알아주시더라고요.”
두 달 뒤엔 어머니의 맛에 더 가까운 두 번째 작품 ‘님그리다’를 선보였다. 멥쌀과 찹쌀의 비율이 4 대 6으로, 가야막걸리와 반대다. 누룩을 다르게 쓰고, 숙성 기간도 배로 늘려 술 빚는 기간도 66일이나 된다. 가야막걸리보다 더 걸쭉하고 산미도 있어, 옛날 어머니가 빚으시던 막걸리에 더 가깝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뒤이어 지난해 7월엔 해외 수출용 리큐르 ‘블루문’을 출시했고, 지난달엔 증류주(소주) 3종을 선보였다.
특히 소주는 김해지역 농가에 도움이 되도록 지역농산물을 첨가해 맛을 완성했다. ‘가야25’(25도)는 장군차, ‘가야금주’(23도)는 유기농 생강, ‘탱자C’(23도)엔 야생 탱자가 들어간다.
소주 뚜껑을 열어 코를 가까이하니 재료의 향이 물씬 피어오른다. 술의 향을 중시하는 조 대표가 독자 개발한 증류방식 덕분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상압식에다 외국 술의 감압식을 혼합한 증류기로 재료의 향을 과하지 않게 살렸다.
■ 김해뒷고기와 가야의 술이 만나면…
가야양조장의 술은 우리나라 전통음식과 두루 잘 어울린다. 특히, 김해지역 대표음식인 뒷고기와 훌륭한 마리아주를 이룬다. 김해뒷고기는 부산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원조를 맛보려면 김해로 가야 한다.
김해시 부원동 부산김해경전철 부원역 인근 시가지에는 뒷고기 상호를 단 식당만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그중 20년 역사의 ‘불야성뒷고기’의 뒷고기는 암퇘지 앞다리살만 사용해 잡내가 없고 깔끔하다. 가마솥을 만드는 주물로 특수제작한 불판과 숯불은 고기를 바삭하게 잘 익혀 준다. 주인장이 직접 담근 묵은지와 함께 한 점 먹으니, 간도 적절하고 고소함은 배가된다. 여기에 가야막걸리를 곁들이면 ‘삼겹살+소주’ 부럽지 않은 궁합이다.
특히 불야성뒷고기는 손수 재배한 작물로 찬을 만든다. 김치를 비롯해 마늘·양파 장아찌, 마늘과 쌈채소 등 거의 모든 찬이 주인장의 밭에서 나왔다. 직접 쑨 메주로 끓이는 된장찌개도 지나칠 수 없는 메뉴다.
가야양조장의 술은 김해 삼계동 일부 가게와 유명식당에서 만날 수 있다. 축협하나로마트 등 중소형 마트와 온라인 매장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조 대표는 앞으로도 다양한 술을 출시할 계획이다. 먼저 해병대전우회와 협업한 매실 증류주를 올여름 선보인다. 지역의 산딸기와 딸기를 활용한 ‘브랜디’, 알코올 도수를 높인 프리미엄 막걸리도 개발 중이다. 모두 수출을 염두에 둔 술들이다.
“국내에서 좋은 경쟁을 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결국 수출이 돼야 진정한 전통주의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주 세계화의 선봉장이 되고 싶습니다.”
조 대표의 포부를 듣고 다시 보니 가야양조장 로고부터 예사롭지 않다. 금관가야의 술잔을 중심으로 황금빛 벼 이삭이 둥그렇게 감싼 형상이다. 그 옛날 금관가야가 활발한 해상무역으로 번영했듯, 가야양조장의 술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는 그림이 그려진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제품명 : 가야 프리미엄 막걸리
-양조장 : 가야양조장(경남 김해시)
-내용량 : 75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정제수·쌀·누룩·효모
[기자들의 시음평]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가볍고 깔끔해 음료수처럼 마실 수 있다. 3주쯤 지난 술은 산미가 더 올라와 상큼한 느낌.”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흙 내음과 꽃향기가 나는데, 뒷맛에서 그 향이 이어져 독특하다. 상큼하게 마실 수 있을 듯.”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가벼운 단맛에 고소함도 살짝 느껴진다. 3주 된 술은 향이 더 강하게 올라와 입맛에 더 맞다.”
▶권채연 디지털미디어부 인턴
“탄산이 없는 편이라 먹고 나서 속에 더부룩함이 없다. 가볍게 견과류와 곁들이면 좋을 듯.”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차분한 베이지 컬러에 곡물과 미세한 누룩 입자들이 보여 적당한 밀도감을 보여 준다. 부드럽고 순한 곡향이 피어오르며,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참외 향 등이 느껴진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고소한 향도 조금씩 더 나타난다. 향의 속성이 맛에도 담겼는데, 담백한 가운데 적당한 산미가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부드럽고 밀키(milky)한 질감이 혀에서 느껴지며 후미에서 산미의 여운을 남기는데, 쓴맛이나 알코올감 없이 은은하게 마무리된다. 이 관능평은 제품 수령 직후 바로 맛보고 쓴 것이다. 라벨에 표기된 설명처럼 냉장고에서 숙성하는 동안 맛의 캐릭터가 조금씩 바뀌므로, 주 단위로 맛을 느껴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겠다.”
2023-06-0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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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솔향을 마신다…소나무, 명주가 되다 [술도락 맛홀릭] <11>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기개, 뚝심, 한결같음.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를 보면 떠오르는 말이다. 절개의 소나무와 전통의 우리 술이 만났다. 전통에 내음이 있다면, 왠지 솔솔 피어나는 솔향을 닮았을 것 같다. 경남 함양군에는 이름부터 소나무를 앞세운 양조장이 있다. 집안의 며느리가 오랜 가양주 맥을 이었고, 명주(名酒) 명인(名人)의 반열에 올랐다. 그 비결을 찾아 나섰다.
■ 오래오래 두루두루 대통령도 인정한 술
함양군 읍내에서 지곡면 개평마을로 접어드는 길. 마을 초입 야산 중턱에 소나무를 닮은 글씨체의 커다란 입간판(‘솔송주’)이 눈에 들어온다. 박흥선(70) 명인이 30년 가까이 남편과 함께 일궈 온 술도가 (주)솔송주의 본거지다.
양조장 방문에 앞서 ‘솔송주문화관’으로 향했다. 개평한옥마을 내에 있는 솔송주문화관은 솔송주의 역사와 전통을 알리는 공간이다. 15년 전, 박 명인은 자신의 생활공간이기도 한 시댁의 뒷마당에 자비를 들여 문화관을 지었다.
문화관 내부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에 낯익은 얼굴과 함께한 사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전직 대통령들이다. (주)솔송주의 술이 오랫동안 두루두루 인정받아 왔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솔송주는 2019년 대통령 설 선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정상회담 만찬주나 국제행사에서 건배주 등으로 여러 차례 소개됐어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이나 퇴임 이후 찾아 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27번째 식품명인이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박 명인은 전통주 세계에선 큰어른이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시어머니께 배운 대로 가끔 집에서 술을 빚던 박 씨는 1996년 덜컥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술이 맛있는데, 많이 좀 만들어 보라’는 주변 어르신들의 권유에 마음이 동했다. 박 씨 부부는 선산 골짜기에 술도가(‘지리산 솔송주’)를 차렸다.
“무식이 용기였죠. 근데 막상 뛰어들어 보니 너무 힘든 거예요. 처음에 술독 열 개를 쭈욱 해놨는데 온도를 못 맞춰서 술이 다 쉬어버렸어요. 술 홍보를 해주겠다며 가져가선 술값을 떼먹는 사람들도 많았죠.”
초반 7년은 계속 적자였다. 그러다 복분자를 재배하며 함께 선보인 복분자술이 인기를 끌었고, 양조장도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복분자가 효자 노릇을 했지만, 지금의 (주)솔송주를 있게 한 대표술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솔송주’(13도·약주)다. 박 씨를 명인으로 만들어 준 술이기도 하다. 증류주인 ‘담솔’(40도·리큐르)도 못지않은 호평을 얻고 있다. 두 술 모두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대한민국 주류대상 등 국내외 각종 주류대회에서 다관왕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담솔은 2020년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호주·캐나다 등지로 수출길을 넓히고 있다.
■ 전통주와 칵테일, 매력 넘치는 만남
(주)솔송주 술의 가장 큰 특징은 ‘송순’(소나무의 어린 싹)이다. 전통 방식의 솔송주는 4~5월 개평마을 주변 산에서 딴 송순을 쪄서, 밑술에 고두밥과 함께 넣어 발효시킨다. 담솔은 솔송주를 방울방울 정성스레 증류한 술이다.
“증류를 하고 난 뒤 숙성을 오래 하면 할수록 좋아요. 담솔은 최소 6개월 이상 탱크에서 숙성시키는데, 길게는 2년에서 5년이 넘은 술도 있습니다.”
처음엔 박 명인 혼자서 수작업으로 술을 빚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 자동화 설비를 갖췄고, 지금은 2000L짜리 대형 증류기로 술을 내린다. 대신 솔송주문화관에서 전통 방식인 소줏고리 증류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엔 박 명인이 직접 시연에 나섰다. 고택 마루 한편에 보관 중인 술독을 열자 송순 향이 어우러진 술 익는 내음이 은은하게 번진다. 수면 위로 동동 떠오른 쌀알과 송순은 술이 잘 익었다는 증거다.
가마솥에 한 바가지 술을 붓고 소줏고리를 올린 다음 아궁이에 불을 붙인다. 얼마쯤 지났을까. 주둥이 끝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맑은 액체가 떨어진다. 명인의 정성이 빚어낸 영롱한 빛깔이다.
“발효는 온도를 비롯해 환경을 잘 만들어야 해요. 술을 ‘빚는다 빚는다’ 하는데, 진짜 비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 된다는 걸 많이 느끼거든요.”
담솔은 알코올함량이 40%나 되지만 향만 놓고 보면 고도주스럽지 않다. 병에서 잔으로, 잔에서 코끝으로 은근히 퍼져 나가는 솔향엔 상쾌함을 넘어 향긋함마저 감돈다. 한 모금 입으로 가져가면 그제서야 알코올이 본색을 드러낸다. 그래도 독한 정도가 비슷한 고량주나 양주보다 덜 자극적이고, 목넘김도 부드럽다.
독한 술이 부담스러운 이들은 칵테일로 즐길 수도 있다. 한복 차림의 명인이 만들어주는 전통주 칵테일이라니.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지만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칵테일 4종 중 가장 인기 있는 ‘담솔 줄렙’은 담솔 한 잔과 라임·민트·탄산수·얼음 등이 들어간다. 블루 큐라소를 살짝 넣은 ‘솔바람’은 파란 빛깔부터 매력적이다. 담솔을 맛본 바텐더가 직접 칵테일 레시피를 추천했다고 한다. 과연 술 초보자도 즐길 만한 상큼하고 시원한 맛이다.
■ 지리산 흑돼지와 나물, 반주로 즐겨도…
서로 닮은 한국인과 소나무처럼, (주)솔송주의 술도 우리나라 전통 음식과 두루 어울린다. 도수가 높은 담솔은 생선회·돼지고기 등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입맛을 깔끔하게 잡아 준다.
함양은 지리산 흑돼지가 유명해 곳곳에서 흑돼지 요리를 만날 수 있다. 그중 상림공원 인근 ‘까망꿀꿀이’는 현지 주민들도 즐겨 찾는 흑돼지 맛집이다. 두툼한 생삼겹·목살은 빛깔부터 신선함이 감돈다. 흑돼지답게 식감 역시 일반 삼겹살보다 훨씬 쫄깃하다. 바삭하게 구운 비계도 느끼하지 않다. 여기에 담솔 한 잔을 더하면, 돼지고기의 고소함에 상쾌한 솔향이 어우러지면서 입이 더욱 바빠진다. 지리산 기슭, 산이 많은 고장답게 쌈 채소엔 취나물 등 제철나물이 함께 나온다. 묵은지와 조피 가루를 넣은 겉절이 등 찬도 입맛을 돋운다.
솔송주는 한식에 곁들여 반주로 즐겨도 좋다. 고깃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예당’은 산채비빔밥 전문이다. 함양 할머니들이 채취한 취나물·피마자·머위나물·고사리 등 10여 가지 푸짐한 나물에다 산양삼이 화룡점정이다. 쌉싸름한 산양삼과 함께 매일 달라지는 나물반찬은 접시째 비우면 약이나 다름없다.
함양의 청정 자연과 소나무의 기운 덕분일까. 박 명인의 시어머니는 97세까지 솔송주를 드셨고, 100세 넘게 장수하셨다고 한다. 정작 명인은 술을 잘 못 마신다. 그래서 술 빚기에 더 진심이다.
“제가 시작할 때만 해도 외국 술에 비해 무시당하곤 했는데, 지금은 젊은이들이 전통주 양조에 뛰어들 정도로 열기가 대단해요. 특히 우리 솔송주 술은 해외로 수출되는데, 외국에선 우리나라의 얼굴이잖아요. 그러니 더 열심히, 더 좋은 술을, 더 잘 빚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은 상당수 작업을 직원들이 담당하고 있지만, 박 명인은 여전히 오전 8시 30분 출근해 하루 종일 양조장에서 보낸다. 한결같은 모습이 소나무를 닮았다. 그 뚝심으로 조만간 25도짜리 담솔을 출시할 예정이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동영상=김보경 PD harufor@
-제품명 : 담솔40
-양조장 : (주)솔송주(경남 함양군)
-내용량 : 375mL
-알코올 : 40.0%
-원재료 : 정제수·쌀·입국·누룩·송순농축액·꿀 등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목넘김이 좀 부담스러운데, 얼음을 넣으니 훨씬 깔끔하다.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리겠다.”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도수는 굉장히 높지만 깔끔하고, 달짝지근한 향도 느껴진다. 차갑게 마시면 더 좋을 듯.”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비슷한 도수의 독하기만한 고량주와 달리 상쾌하고 좋은 향이다. 느끼한 음식과 먹고 싶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너무 독해 식도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려운 맛인데, 얼음이랑 같이 마시면 좋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바닐라 향과 함께 달콤한 향이 메인 캐릭터로 다가온다. 흰 꽃 향과 아주 약간의 바나나 향, 참외 같은 과일 향이 함께 느껴진다. 향의 강도는 중간 이상으로, 알코올 감이 조금 강한 편이다. 맛에서도 부드러운 곡물의 단맛이 혀를 적시며 퍼져나가는데, 여기에 향이 함께 움직이듯 춤춘다. 맑고 깨끗한 소나무라는 이름 그대로 입안에서의 느낌도 부드럽고 깔끔하다. 후미에서 40도의 존재가 강하게 발산되며 여운이 길다. 상온에서 즐기면 좋을 것 같은 증류주도 있지만, 담솔은 청량함을 더하는 게 이 술의 매력을 살려 주는 듯하다. 차갑게 맛보는 걸 추천한다.”
2023-05-24 [0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