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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술 미래, 사케에서 찾다] 수백 년 전통에 ‘젊음·혁신’ 더해 세계의 술로…
우리나라 전통주가 다시 붐이다. 젊은이·어르신 할 것 없이 우리 술 배우기 열풍이고 전국적으로 양조장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 주류시장의 전통주 비중은 아직 1% 수준. 미래 전망은 엇갈린다. ‘반짝 인기’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고, 급속도로 성장할 거란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K술의 대중화·세계화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부산일보>는 <서일본신문사>과 공동취재로, 우리보다 먼저 세계로 진출한 ‘사케(일본술)’의 현재를 살피고 우리 술의 미래를 짚어 본다. 전통주 전문가인 조태영 대표(양조장 ‘기다림’)와 사케 전문가 다카미 히로유키 대표(‘알 유니콘 인터내셔널’)가 동행했다.
■ 170년 전통과 최신 기술의 만남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 쌀 산지로 유명한 이토시마 지역의 한 도로변. 커다란 붓글씨체로 ‘白糸’(시라이토)라 적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855년 창업해 지역 대표 양조장으로 자리잡은 시라이토 주조의 본거지다.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한 은발의 다나카 노부히코(70) 대표는 7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양조장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거대한 나무 지렛대 모양의 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하네기’라 불리는 전통 술짜기 방식이다. 오후 2시께, 직원 2명이 달라붙어 8m 길이의 참나무 한쪽 끝에 커다란 돌을 하나씩 매달기 시작한다. ‘쩍쩍’ 무게에 눌린 나무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소리가 커질수록 기구 아래 놓인 통으로 걸러진 술이 채워진다.
하네기 방식으로 술을 짜는 건 일본 전체에서 시라이토 양조장이 유일하다. 생산 속도와 양을 늘리기 위해 양조장마다 술짜기 공정을 기계로 바꿨지만 시라이토는 170년째 전통을 고집한다. 다나카 대표는 “하네기는 술 한 통을 짜는 데 꼬박 48시간이 걸리고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지만, 기계가 할 수 없는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다”며 “나무와 돌의 조합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1855년도부터 지금껏 똑같은 기구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건넨 명함의 로고도 ‘하네기’를 본뜬 것이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 양조장의 근간이 로고 하나에 담겼다. 다나카 대표가 즉석에서 걸러지고 있는 원주를 받아 취재진에게 건넸다. 보통의 사케와는 다른, 갓 짜낸 신선함이 느껴지는 맛이다.
마지막 공정인 술짜기는 에도 시대 방식이지만, 나머지 공정은 현대식이다. 누룩방과 건조실, 효모 배양실과 분석실 등 공간마다 실험실 못지않은 기계 장비가 그득하다. 최신 설비를 활용해 잡균을 막고, 발효 온도를 관리해 술의 품질을 유지한다. 발효실에는 1500L짜리 대형 철재 탱크 14개에서 술이 익어 가는 중이다. 내년 봄까지 110개 탱크 분량이 만들어진다.
다나카 대표는 “과거에는 ‘도우지’(총책임자)의 경험에 의존했지만 요즘엔 데이터 덕분에 젊은 세대에게 술을 맡길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술도 만들고 있다”며 “새로움도 전통의 일부이며, 그래야 회사가 이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세 아들이 양조장 운영에 참여한 이후 개발한 술 ‘다나카65’는 출시되자마자 현지 주목을 받았다.
■ 기본기에 새로움 더하는 ‘젊은 리더십’
사케의 새로운 도전은 젊은 세대가 양조장을 물려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확산하는 추세다. 후쿠오카현 구루메 지역의 야마노 고토부키 주조도 5년 전 30대의 나이에 가타야마 이쿠요(44) 대표가 전면에 나서며 변화를 맞았다.
둘째 딸로서 아버지의 뒤를 이은 가타야마 대표는 초반 2년간 기본 다지기에 충실했다. 그는 “‘다도’의 기본 정신을 떠올리며 술 빚기의 기본에 신경을 썼다”며 “우선은 업계 선배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각종 품평회에서 수상을 하며 기본기를 갖추자 비로소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20년 선보인 ‘프리스크 1·2’가 대표적이다. ‘프리스크 1’은 누룩 가스를 남겨 탄산감이 있고, ‘프리크스 2’는 수제맥주 같은 과실 향이 특징이다.
지난해부터는 또 다른 실험을 시작했다. ‘야마다니시키’ ‘오마치’ 같은 술전용쌀 품종이 아니라 일반쌀로 술 빚기에 나선 것이다. 가타야마 대표는 “코로나 기간에 우연히 200년 전 창업자의 일기를 발견했는데, 양조장 창업 배경이 적혀 있었다”며 “쌀이 풍부한 반면 겨울 산업이 없는 이 지역을 위해 양조장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창업 정신을 되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야마노 고토부키 양조장은 현재 전체 사케 생산량 중 70%는 술전용쌀, 30%는 지역에서 재배한 일반쌀을 쓴다. 작년 봄 첫선을 보인 일반 쌀 사케의 반응이 좋아 올해는 증산할 계획이다.
이에 더해 가타야마 대표는 200년 넘게 이어 오던 도우지 제도도 없앴다. 대신 직원 5명과 함께 디자인·영업·술 빚기·분석까지 모든 작업 내용을 단체 채팅방으로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나눈다. ‘대표-도우지-직원’의 수직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꾼 것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양조장이기에 가능한 실험이기도 하다.
다카미 대표는 “옛날 아버지 세대라면 인정받기 힘든 새로운 리더십”이라며 “요즘 시대와 잘 맞아떨어져 재밌는 술이 등장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쌀 생산자와 사케 양조장의 ‘공생’
일본 사케와 우리나라 전통주는 쌀·물·누룩을 쓴다는 점에선 비슷해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재료부터 공정까지 차이가 난다. 특히 원재료인 쌀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사케는 술전용쌀(주조호적미)을 주로 사용하는데, 1930년대 효고현에서 개발된 ‘야마다니시키’ 품종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술전용쌀은 생산자와 양조장 사이의 ‘계약재배’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야마다니시키가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후쿠오카현 이토시마 지역도 주 생산지 중 하나가 됐다. 한때 효고현에 이어 전국 2위 생산량을 자랑했는데 현재는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JA(농협)이토시마 양조쌀협회 호리타 가츠유키 협회장은 “야마다니시키는 일반쌀에 비해 재배가 어렵지만 가격이 높기 때문에 농가 수익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며 “계약 물량과 실제 수확량이 차이가 나더라도, 전체 양조장에 적절하게 물량을 배분하며 수요와 공급을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쌀 생산자와 양조장의 ‘상부상조’ 관계가 사케 산업의 든든한 토대인 셈이다.
구루메 지역 125년 역사의 모리노쿠라 양조장은 계약재배를 넘어 쌀 생산에 직접 관여한다. 자체 논을 보유 중이고, 계약재배 논도 수시로 방문해 일손을 돕는다. 모리나가 가즈히로(52) 대표는 “여러 음식에 어울리는, 식탁 활용도 높은 술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부재료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그러려면 원재료가 우수해야 하는데, 특히 대표 브랜드인 ‘모리노쿠라’와 ‘고마구라’ 2종은 지역 쌀만 고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리노쿠라 양조장의 ‘자연 순환’ 철학도 흥미롭다. 수확한 쌀로 사케를 만든 뒤 남은 지게미로 소주를 빚고, 소주 지게미는 비료로 써서 다시 쌀을 재배하는 식이다. 조태영 대표는 “10년 전 부산에 전통주 양조장을 설립하면서부터 비슷한 방식을 구상해 왔는데, 술 빚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전체를 재활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며 “우리나라 양조장도 적극 도입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사가현(일본)/글·사진=이대진·히라바루 나오코(서일본신문)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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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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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함께 건강한 여름 나기…중앙동 40계단 발효소 '복분자 약주' [술도락 맛홀릭] <15>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한여름 무더위는 전통주도 견디기 어렵다. 고온 탓에 술이 쉬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여름이 제철인 우리 술이 있다. ‘과하주(過夏酒)’, 이름 그대로 ‘여름이 지나도록 맛이 안 변하고, 여름에 마셔 건강하게 더위를 이겨 내는 술’이다. 부산 원도심에는 과하주를 빚는 작은 양조장이 있다. 복분자를 넣어 빛깔과 향미까지 특색 있다. 싱그러운 과실 향과 술 익는 내음이 있는 골목을 찾아 나섰다.
■ 40계단 역사 품은 신생 양조장
한국전쟁 피란민의 아픔이 서린 곳, 중구 중앙동 40계단 앞에서 인쇄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작은 상가 건물의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40계단 발효소’.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3층까지 오르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건물의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조심조심 한 계단씩 올라 회색 철문을 열자 바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밝고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고향이 영도여서 중앙동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동네였어요. 양조장을 차릴 땐 코로나 이전이라 관광객도 많았고, 술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지 않을까 생각했죠.”
취재진을 맞은 조부영(51) 대표는 꾸밈없는 말투로 양조장을 소개했다. 주인장을 닮아 공간은 소박하고 설비도 단출하다. 전체 60㎡에 제조실과 발효실, 저온숙성실이 오밀오밀 자리한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쪽에 보랏빛 술병이 전시돼 있다. 40계단 발효소의 대표술인 ‘꽃빛’과 ‘마주향해’다. 보라색은 복분자의 빛깔이다. 꽃빛은 세 번 빚은 삼양주, 마주향해는 이양주에 증류주를 더한 과하주다. 복분자를 넣어 만든 과하주는 마주향해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40계단 발효소는 조 대표 홀로 운영하는 1인 양조장이다. 한 달에 생산하는 술은 200병 남짓. 소규모 양조장이어서 인터넷 판매도 안 된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부산·경남지역은 물론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 등지에서 오는 방문객이 꾸준하다.
술과 양조장의 인지도와 달리 조 대표의 경력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4년 전 여름, 남편이 덜컥 벌인 일이 그를 전통주 세계로 이끌었다.
“2019년 봄부터 지인을 따라 미리내우리술공방에서 술을 몇 번 빚었어요. 소금도 만들 수 있다길래, 복분자주를 빚은 뒤 남은 지게미로 만들어 봤죠. 그런데 남편이 소금 아이템으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예비창업 프로그램에 신청을 한 거예요.”
예상과 달리 최종 선정되면서 일이 커져 버렸다. 소금의 원료인 술지게미는 사고파는 식재료가 아니라, 지게미를 얻기 위해 결국 양조장까지 차리게 됐다.
전업주부에서 양조장 대표가 됐지만 조 대표의 전통주 경험은 앞서 술공방에서 빚어 본 세 번이 전부였다. 조 대표는 미리내우리술공방 손승희 대표의 도움을 받아 부랴부랴 복분자 약주 레시피의 기본 틀을 완성하고 술 빚기에 몰두했다. 2020년 2월 소규모 양조장 면허를 내고 추석에 맞춰 첫 제품 ‘꽃빛’과 ‘꽃빛소금’을 내놓기까지, 단 1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 같지만 다른 복분자 약주·과하주
“너무 갑작스럽게 양조장을 열다 보니 한동안 밤잠을 설쳤어요. 주변에선 왜 홍보를 안 하냐고 그러는데, 술이 안 팔리는 건 전혀 신경이 안 쓰였어요. 술맛이 안정화되기 전까진 오히려 많이 팔릴까 봐 무서웠죠.” 판매보다 술맛을 우선하는 조 대표의 초심은 지금도 한결같다.
‘꽃빛’은 이름부터 눈길이 간다. 복분자에 함유된 항산화 물질 ‘안토시아닌’의 라틴어 뜻을 우리 말로 푼 것이다. 술공방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선배이자 술 빚기 선배인 <부산일보> 김승일 기자의 작명이다.
꽃빛을 유리잔에 따라 빛깔만 보면 와인과 분간이 안 될 정도다. 한 모금 들이켜자 여느 복분자주처럼 너무 달지도 끈적거리지도 않는다. 담금주에다 복분자 열매와 설탕을 넣은 과실주가 아니라, 쌀로 빚은 약주에 복분자를 가미했기 때문이다. 누룩취를 줄이려고 전통누룩과 백국을 섞어 쓰고, 삼양주라 다른 복분자 약주와 비교해도 단맛이 덜하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세 번의 술 빚기 중 먼저 멥쌀 죽으로 밑술을 만든다. 그 다음 찹쌀 죽으로 첫 번째 덧술, 찹쌀 고두밥과 복분자로 두 번째 덧술을 한다. 복분자는 전북 고창군에서 따자마자 급속냉동한 열매를 쓴다. 8~9주 충분히 발효를 시키고 광목천으로 거른 뒤 저온숙성고에서 2달 더 숙성을 한다. 한 병이 나오기까지 넉 달가량 기다리는 셈이다. 침전물은 필터를 쓰지 않고 긴 숙성 과정에서 가라앉힌다. 이후 맑은 부분만 떠내 병에 담는다. 기계·필터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술 빛깔이 탁하지 않은 이유다.
조 대표는 지난해 설을 맞아 2가지 술(이양주)을 더 내놨다. 과하주 ‘마주향해’와 복분자를 뺀 약주 ‘은빛’이다. “술을 계속 빚어 보니 누룩을 많이 쓴다고 누룩취가 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전통누룩만 사용해 단맛과 산미가 좀 더 조화를 이룬 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증류주가 들어가는 과하주 ‘마주향해’는 약주 중에서도 고급이다. 복분자와 함께 덧술을 한 뒤 발효 후반부에 조 대표가 직접 만든 ‘증류주’를 가미한다. 서로 다른 약주와 증류주가 만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의미가 술 이름에 담겼다.
꽃빛과 마주향해는 같은 복분자 약주 계열이라 빛깔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 알코올 도수도 똑같이 17도다. 그래도 오감에 집중해 시음을 하면 향미의 차이가 느껴진다. 마주향해의 복분자 향이 더 분명하고, 뒷맛에서 증류주의 알코올 기운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 40계단서 하산하는 그날…
40계단 발효소는 자체 술 말고도 인근 비건 레스토랑 ‘아르프’에 전용 술을 납품한다. 계절별로 영도 녹차, 배·라임, 향신료 등이 들어간 약주다. 지역 음식점과 작은 양조장의 협업은 새로운 사업 모델로 업계 관심을 받고 있다.
40계단 발효소의 술은 양조장과 일부 보틀숍·전통주점에서만 만날 수 있어 귀하다. 양조장 근처에 술과 곁들일 만한 음식점이 여럿이어서 이왕이면 직접 방문할 만하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30여 년 역사의 ‘석기시대’는 오향장육이 대표 메뉴다. 그날그날 삶아 내놓는 고기는 부드럽고, 고기 위에 얹은 오이·양파·고추와 새콤한 양념이 시원함을 더한다. 양조장에서 두 블록 떨어진 중국음식점 ‘홍문’의 고추잡채는 겨울철 따뜻하게 즐길 만하다. 두 음식 모두 꽃빛 혹은 마주향해의 깔끔한 산미와 잘 어울린다.
햇수로 4년. 40계단 발효소는 문을 열자마자 코로나 팬데믹을 만났지만 묵묵히 버텨 온 끝에 업계에선 술 잘 만드는 양조장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남들이 다 말릴 때 남편만 응원을 해 줬어요. 일단 2년만 버텨 보자고 했거든요. 힘 쓰는 일이나 각종 행정 업무를 남편이 도맡아서 도와준 덕분에 저는 술 빚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저보고 ‘(3층에서 1층으로)하산할 준비 됐냐’고 해요. 하하.”
부부의 바람대로 40계단 발효소의 다음 단계는 1층에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술을 매개로 사람들과의 접점을 넓혀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분야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술의 장점인 것 같아요. 새 공간을 마련해 저희 술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드리고, 각계각층 사람들이 술을 매개로 음식·문학·음악 등 다양한 주제로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40계단에서 ‘하산’하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제품명 : 꽃빛
-양조장 : 40계단 발효소(부산 중구)
-내용량 : 500mL
-알코올 : 17.0%
-원재료 : 정제수·쌀·복분자·누룩·효모·입국
-제품명 : 마주향해
-양조장 : 40계단 발효소(부산 중구)
-내용량 : 375mL
-알코올 : 17.0%
-원재료 : 정제수·쌀·복분자·누룩·증류소주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꽃빛
"일단 맛있다. 복분자가 들어가서인지 보통 풀내음이 연상되는 일반적인 약주와 달라 신기하다."
-마주향해
"복분자 재료의 특성을 증류주가 더 돋보이게 해 주는 것 같다. 향도 풍부하고 술 먹는 기분이 난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꽃빛
"약주와 복분자의 장점을 잘 블렌딩한 느낌. 상큼한 복분자가 약주의 묵직함을 훌륭히 완화시킨다."
-마주향해
"약주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묵직한 단맛. 술 본연의 향이 느껴진다. 치즈·크래커류와 잘 어울릴 듯."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꽃빛
"복분자의 상큼함이 입맛을 돋운다. 과일주처럼 가볍지 않고 알코올 향이 술 정체성을 지켜 준다."
-마주향해
"산미가 혀끝과 입안에서 전체적으로 오래 감돈다. 느끼함을 잡아 줘 기름진 육류와 어울릴 것 같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꽃빛
"포도주 마시는 느낌이라 알코올 도수가 17도 정도로 센 줄 모르겠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약주다."
-마주향해
"꽃빛보다 더 새콤하고 알코올 향도 더 많이 느껴진다. 꽃빛이 와인이라면 마주향해는 진짜 술이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꽃빛
"잘 익은 검붉은 과실의 짙은 컬러가 느껴진다. 외관상으로는 와인 같은 느낌을 물씬 전한다. 코를 갖다 대니 싱그러운 복분자 향과 함께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다가온다. 한 잔 머금으면 부드럽게 넘어가는 느낌에서 좋은 첫인상을 받고, 뒤이어 느껴지는 아주 적절한 단맛에 기분 좋게 잔을 비우게 된다. 밸런스가 정말 좋은 복분자 약주이며, 시중의 복분자주 강한 단맛이 싫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정도 퀄리티면 여름에 쟁여 놓고 초복·중복·말복을 장어와 함께해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잘 만든 복분자 약주를 만나서 기쁘다. 부드럽고 우아한 여운에 빠져들게 된다."
-마주향해
"컬러와 향의 결은 꽃빛과 비슷한 듯하지만 향에서 스파이시함과 담백함이 더해진 게 느껴진다. 스월링(술 따른 잔을 둥글게 돌리는 행동) 할 때마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감도 있다. 꽃빛보다는 덜 달고, 뒤로 갈수록 부드러운 단맛에 은근한 산미와 스파이시한 맛이 느껴진다. 후미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라 애주가들을 타깃으로 탄생한 복분자 과하주라 하겠다."
2023-08-16 [0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