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老가 재조명하는 한국체육 榮辱의 어제 오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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샅바잡기 38년…황무지 씨름판 개척高3때 벌써 황소 세마리탄 「소년장사」로 13년간 國體단골한때 레슬링 대표도…전국대회 3연패"입상보단 경기임하는 자세 더욱 중요"

씨름은 나의 인생에 전부나 마찬가지다. 비록 어쭙잖게 시작한 씨름이지만 38년간 씨름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래판 현장을 떠난 지금도 씨름만은 나의 귀중한 스포츠로 자리를 잡고있다.

요즘 TV를 통해 민속씨름을 볼 때도 마치 내가 샅바를 쥐고있는 듯 절로 흥분에 빠져들곤 한다.

내가 씨름판과 인연을 맺은 것은 49년 진주동명고1년때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샅바를 잡은것이 아니라 단지 『체격이 크니 씨름을 해보라』는 주위의 권유때문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샅바인생은 이해 진양군 대평면에서 열린 지역대회에 첫출전, 생각지도않은 우승을 거머쥐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특히 우승부상으로 받은 소를 타고 대회장을 빠져나올땐 어린 마음에 마치 천하를 얻은 듯 나의 기세는 의기양양했고 몹시 들뜨기도 했다.

그뒤 당시 점배라는 별명으로 서부경남지역의 모래판에서 이름을 떨치던 양유식씨(작고)로부터 본격적인 씨름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나의 씨름기량은 날로 향상되어 갔고 지역씨름대회를 거의 석권하다시피 하며 승승장구했다.

고3때는 추석을 앞두고 소를 3마리나 탔다. 제수마련이 힘겹던 그시절 소를 몇마리씩이나 끌고오자 가족들의 칭찬이자자했으나 하루는 매어둔 소가 날뛰어 어머니가 몹시 다치는 불상사도 발생했다.

그때 어머니는 나를 보자 대뜸 『이놈이자라면서 속을 태우더니 소까지 애를 먹인다』며 흐뭇한 불평(?)을 하시기도 했다.

52년 동아대에 씨름특기생으로 입학한 나는 이후 유도 레슬링등을 두루섭렵하는 기회를 가졌다. 53년 제34회전국체전(서울) 씨름단체우승을 시발로 나는 66년 제47회대회까지 13년간 전국체전 단골손님이 되었다.

이기간동안 유도사범 황영규씨로부터 유도를 배워 학교를 중퇴해가며 경남도경 유도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렇게배운 유도실력이 6단에 이르렀다.

63년 동아대에 복학했는데 제18회동경올림픽(64년) 파견 레슬링국가대표3차선발전에 나가게 됐다. 씨름과 유도를 했으니 레슬링을 잘할거라는 주위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다. 레슬링계의 거목 차대우씨(작고)로부터 한일체육관에서 하룻동안 기본기만 지도받고 출전했는데 78㎏급에서 뜻밖에 우승, 국가대표가 됐다. 이듬해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입상권엔 들지 못했다.

그러나 63년부터 66년까지 4년간 연속 전국체전 대학부에 출전, 64년 인천대회를 빼곤 모두 우승했고 국내대회선 전부 폴승을 거두었다. 씨름과 유도의 기술이 먹혀 들었던 모양이다.

65년 제46회광주체전때는 씨름 레슬링 유도 역도등 4개 종목에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경기일정상 겹치기출전은 불가능해 4종목석권은 실패로 돌아갔다.

체전출전기간동안 평생 잊지 못할 일이 하나있다. 63년 제44회전주체전 씨름결승서 판정에 불만을 품은 동아대선수들이 심판을 집단구타한 사건이 그것이다.

결승에 오른 나는 경북대표 김학용씨(현 일양약품감독)와 맞붙었는데 내가 경기장밖에서 넘어진것을 이형배심판이 잘못 보고 김의 승리를 선언해 동료들의 구타사건을 유발한 것이다.

이 바람에 우리팀은 전경기 몰수패를 당했고 경찰에 쫓겨 밤차로 도망치듯 부산을 내려 와서도 여러날을 피해다니기도 했다.

그때의 씨름판은 부정투성이었다. 주심 1명이 전권을 행사했고 지방세의 텃세도 심해 터무니없는 판정이 비일비재했지만 그대로 승복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씨름꾼들은 가난했지만 의리와 인정만은 넘쳐 돌아갈 여비가 없는 출전 선수들에게 우승자가 소를 팔아 여비를 주는일도 많았다.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거창씨름대회때의 일이다. 나는 입상을 기대하고 가는 여비만을 마련해 출발했으나 초반에 강적을 만나 예선서 탈락, 오도가도 못할처지였는데 당시의 우승자 모희규씨(경남대감독)가 여비를 줘서 무사히 돌아온 일도 있었다.

스포츠맨에게는 입상도 중요하지만 경기내용과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며 선후배및 동료간에 서로 아끼고 예의를 갖추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1932년생 ▲진주동명고 동아대졸 1953~1966년 전국체전 대표 ▲1964년 제18회 동경 올림픽 참가 ▲제8회 부산시문화상 수상(65년) ▲1966년 한국전력 입사(씨름부) ▲1983년대한씨름협회 및 민속위원회 상벌 위원장 ▲1980~1987년숭덕체육관장 ▲現상업.

강두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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