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50 부산체육 2
손영찬씨 국제대회서 첫 금
부산체육은 63년 부산시체육회가 경남도체육회에서 분리 독립함에 따라 또 한차례 도약의 계기를 맞게 된다.
당시 부산시체육회는 의사출신 축구인 배치도씨, 부산지역 최초의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 최영기씨(54년 마닐라 대회) 등이 주축이 돼 출범했으며 초대회장엔 김현옥시장이 당연직으로 맡아 이끌었다.
60년대 부산체육은 극히 빈약한 선수층과 경제적 빈곤 상태에서도 대외적으론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대회 입상자를 배출하기 시작한 사실상의 태동기로 평가된다.
부산체육은 66년 방콕아시아대회에 부산출신 선수들이 대거 참가, 각종 메달을 획득하면서 국제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복싱 플라이급에 출전한 손영찬씨(현 동아대 감독)는 부산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아시아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 부산시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그 뒤 손씨는 복싱지도자로 변신, WBC 전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박찬희씨를 길러내는 등 부산지역 복싱계의 대부로 활약하고 있다.
홍상표씨(현 부산시체육회 사무처장)도 60년대 부산 육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홍씨는 5, 6회 방콕아시아대회에 장대높이뛰기 선수로 출전, 2회 연속 동메달을 따내 기염을 토했다.
전국체전에서도 63년부터 75년까지 무려 13년간 장대높이뛰기 부문 금메달을 거머쥐었으며 각종 대회에서 17회나 기록을 경신, 가히 독보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홍씨는 은퇴 뒤 체육행정가로 변신, 부산시체육회 사무처장직을 13년째 맡고 있으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유치에 견인차 역할을 하는 등 행정부문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권중현씨(현 부산시 사이클연맹부회장) 역시 초창기 부산체육의 국제화에 공헌한 주요 인물로 꼽힌다.
권씨는 5회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 6회 대회에서도 은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2개씩 따내 부산지역 사이클경기 발전에 기초를 닦았으며 부산출신으론 최초로 대한사이클연맹 부회장직을 역임하는 등 부산지역 체육계의 전국적 영향력 강화에 큰 역할을 했다.
부산지역 체육인들이 60년대를 논할 경우 특이한 인물로 거론되는 사람은 강두만씨.
강씨는 65년 전국체전에 레슬링 씨름 유도 역도 등 4개 종목에 출전, 레슬링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 씨름 헤비급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역도 및 유도에서도 금메달이 확실시됐으나 경기 시간이 중복돼 자동기권 처리되는 바람에 3관왕에 그쳤다는 일화를 남겼다.
이밖에 당시 최고 인기종목이었던 축구에선 부산출신 선수인 정강지(현 서울은행지점장) 서윤찬(현 개인사업) 김호씨(현 삼성축구단감독) 등이 태극마크를 달고 킹스컵 메르데카컵 등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 동남아권에선 최강의 전력을 과시하며 부산시민들에게 자부심을 불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