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신의 아들과 어둠의 자식`
강호일 논설위원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지원온 원군 사령관 이여송은 동생들을 데려와서 최전선에 배치했다.왜장의 대부대에 포위된 연안성을 지키던 이정암은 마른 풀섶 위에 아들 준과 함께 서서 "성이 무너지면 불을 질러 타죽겠다"고 독전,사기를 돋워 적을 물리쳤다.경기의병장 홍언수는 아들 계남과,호남의병장 고경명은 아들 종후와,충청의병장 조헌은 아들 완배와 함께 싸웠다.그로써 의병결집의 구심력을 이루고 청사에 공을 남겼다.영국은 2차대전과 몇해전의 포클랜드전투에 왕세자를 참가시켜 승리로 이끌었으며 미국.소련.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은 아들을 2차대전이나 한국전에 내보냈다.이처럼 소중한 혈육을 전장에 앞장서게 함으로써 리더십을 확립한 사례는 동서고금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다시 사상 최대규모의 병무비리가 불거져 온나라가 떠들썩하다.돈을 주고 아들병역을 면제받은 사회지도층인사 브로커 군의관 등 1백명이나 구속됐다.서울에서만 이 정도이니 전국적으로는 얼마나 많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운동선수.연예인이 속속 걸려들면서 사태는 확산될 추세를 보이고 있다."신의 아들"은 병역면제받고 "어둠의 자식"만 군에 간다는 젊은층의 사회병리적 은어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유전 면제 무전 입대라는 자학적인 우스개도 맞는 말이 되고 있다.이번에 적발된자 가운데 62%가 서울 강남거주자로 밝혀졌다.
자기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한 법인데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의 빗나간 자식 과잉보호는 극에 달한 느낌이다.수천만원까지 뿌렸다니 IMF로 실직 소득감소에 고통을 겪고 있는 서민층의 소외감과 계층간의 위화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액 불법과외.대학 부정편입학 등으로도 지탄받은 이들은 만약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외국으로 도피할지도 모른다.
신분이 높을수록 사회적 의무도 무겁게 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정신은 서구사회의 덕목이자 오늘의 선진국을 만든 기초다.전쟁이 나면 지도층 아들들이 먼저 전쟁터에 나섰고 국가적인 어려움에 부딪치면 그들이 국민 앞에 솔선수범했다.우리네 대부분 사회지도층의 양식과 도덕성은 꺼꾸로 가고 있다.
국가공동체에 대한 국민의무 중에서도 병역은 특히 의미가 다르다.납세.교육.근로의무경우 수혜자부담원칙과 능력에 따라 이행방법이 다를 수 있다.그러나 병역은 국민개병원칙하에 모든 국민이 절대적인 평등개념에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국가가 국민에게 의무를 지우는 일에 공정하지 못한데가 있다면 그것은 곧 국민의 불만이 되고 나아가 사회불만요인으로 누적된다.많은 국민이 병역에 대해 막연한 피해의식을 갖는것은 병역제도가 합리적이지 못하거나 형평성이 결여됐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입대자들이 사회로부터 부당 불이익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한창 젊은 나이에 2~3년씩 소요되는 군복무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그러나 비록 힘들고 싫은 것일지라도 만인에게 공평하다면 아무도 불평 못할 것이다.
군내 기합,구타와 안전사고를 줄이는 등 병영문화를 개선해 안심하고 입대할 수 있어야 한다.이것이 병역기피 빌미가 돼서는 안된다.기피자는 취업 승진에 불이익을 주고 병무비리로 치부한 자는 재산을 몰수,패가망신하는 본때를 보여야 한다.병역실명제를 이번 임시국회서 꼭 처리해야 한다.헌법상 보장된 사생활비밀 자유침해 연좌제금지조항위배라는 일부의원들의 논리는 이미 시행중인 공직자재산공개법에 비춰서도 맞지 않는 주장이다.스스로 치부를 숨기려는 저의에서 비롯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병무비리는 우리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연례행사처럼 거듭되고 있는 고질이다.허술한 제도가 반사회적 범죄를 조장한다.군의 사기 기강뿐만 아니라 국가사회 전반의 기강과 안보를 해치는 범죄행위다.사회정의와 국민의무 형평성 차원에서 더이상 비리가 재발않도록 특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hkang@p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