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 '힘'은 한국기술'
DR의 스텝들에게 사인해주는 미야자끼 감독.지난 18일자 일본 신문들은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출한 애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제5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금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1면에 큼지막한 활자로
대서특필했다.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 방일 뉴스가
오히려 옆으로 밀려 날 만큼
일본에선 단연 화젯거리였다.
그러나 그 영광 뒤에
한국 애니메이션회사들의
'땀'이 서려있음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바로 디지털 애니제작사인
서울의 디알 디지털(DR Digital)과
부산의 디알 무비(DR Movie)다.
이들 업체는 이번 작품에서 동화(밑그림과 컬러링 사이에 행해지는 중간작업)와 디지털 부문의 컬러링(색깔 입히기)에 직접 참여했다. 2시간짜리 애니의 30%에 이르는 분량.
이미 디지털 분야에 관한 한 업계에서 정평이 나있던 디알 디지털이지만 그래도 세계적 업체인 지브리 스튜디오가 작업을 맡긴 건 의외. '처음 제의가 왔을 때 거짓말인 줄 알았다'고 정정균(41) 대표는 돌이킨다.
'하야오 감독과 지브리 스튜디오가 '해외 협력은 않는다'라는 원칙을 어겨가면서 한국의 조그만 업체에 메인 작업을 맡겼기 때문이죠.'
디알 무비의 정온영(50) 대표는 정 대표의 누나. 이번에 남매가 함께 작업하게 된 건 지난해 3월 먼저 디알 디지털에 제의가 들어오면서부터. 곧바로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디알 무비가 가세했다.
당시 디알 디지털로 낙점된 사연은 이렇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지난해 7월 일본내 개봉을 앞두고 극장을 잡아놓은 상태에서 납품일자를 맞추지 못해 해외제작사를 수소문하던 터였고,디알 디지털이 이 분야에 관해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듣게 된 것.
'작업 자체가 모험이었다'는 정정균 대표의 설명. '저희 회사로서는 촉박한 일정에 보통 작품보다 난도마저 높아 사실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정이 난 후에도 지브리측은 PD를 포함해 스태프 4명을 파견할 정도로 반신반의했죠.'
그러나 작업과정을 지켜본 일본 스태프들은 연일 '원더풀'을 외쳤다고 한다. 당초 할당된 작업량도 20%였으나 예상보다 빨리 진행돼 10%를 더 맡길 정도로 신뢰했다.
부산의 디알 무비도 작업 초반부터 동화부 50여명을 동원,총력을 기울였다. 정온영 대표는 '한국에 할당된 작업량의 60%를 부산에서 소화해냈다'며 '하야오 감독이 워낙 꼼꼼해 애니메이터들이 하루 10~15시간씩 3개월여를 꼬박 작업했다'고 그간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로부터 4개월의 시간이 흘러 '센과 치히로의…'가 개봉된 일본극장가에선 당당히 한국 스태프들의 이름 세글자가 자막에 올랐고,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도 주가를 높였다.
지브리 스튜디오측도 제작이 끝나면 자체 시사회를 한다는 관례에 따라 일본 개봉 직후 한국에서도 제작팀 시사회를 가질 정도로 완성도를 높게 평가했다.
지난 90년 설립된 디알 디지털은 96년 '야경꾼'으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난도 높기로 소문난 매드하우스와 선라이즈 등 일본내 유력 제작사들의 OEM제작을 맡아왔다.
디알 디지털은 올여름 TV시리즈 '미셸'을 국내에 선보인 뒤 2003년 개봉을 목표로 가족용 극장판을 준비 중이다. '지난 10년간이 준비기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세계무대 공략이 목표'라는 정정균 대표. 그는 '머지않아 한국에도 세계에서 알아주는 극장용 애니 제작사가 있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며 꿈에 부풀어있다. 배동진기자 djbae@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