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일의 문학세상] <1> 소설쓰기, 그 구원의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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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비현실의 일 결코 직업이 될 수 없지만 중도포기 또한 할 수 없어'

달이 뜨지 않은 탓에 바다 쪽 허공이 새카맣다. 오직 검정 입자로만 가득 채워져 있을 뿐 하늘도 바다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대만 건너편 두송반도 위로 은백색 전등불빛들이 먼 은하계에서 날아온 일등성 별빛처럼 떠있다. 아직 밤이 깊지 않았는데도 그 광경이 적막하기 그지없다. 집안이 텅 비어있다. 이따금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나지막하게 들려올 뿐 적막하기 짝이 없다.

때 아닌 고요를 타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가로이 밤의 고적함이나 음미하고 있다니…. 소설을 쓴답시고 평탄했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버렸던 나였다. 모두들 저마다의 삶을 위하여 모진 애를 쓰고 있는 이 시각,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일들을 접어두고 이렇게 빈 방에 홀로 앉아 가슴을 끓이고 있는 것일까?

연전에 대마도엘 다녀온 적이 있었다. 날씨만 좋으면 우리집 창가에서도 희무끄레하게 보이는 곳인 터라 난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과거 직장을 다니며 몇 차례 일본을 다녀온 적이 있어 비자 얻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리라 생각을 했다.

한데 회사원이 아니라 전업작가가 된 지금 비자를 얻어내기가 단순하지 않았다. 출발을 불과 하루 앞두고 영사관에 나와 면접을 받으라는 통지를 받았다.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간 나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그곳 직원과 마주 앉았다. 그가 묻는 것은 여행 목적과 일정에 관한 뻔한 것들뿐이었다. 그런 질문이라면 이미 제출되어 있는 서류에 다 나와 있었다. 그런 것들을 물으러 일부러 사람을 부를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나를 부른 목적은 다른 데 있을 터였다. 아마도 그는 내게서 불법체류 가능성을 애써 살피고 있을 것이었다. 신청서에 적힌 소설가라는 직업을 인정치 못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한데 소설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상당수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는 소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나는 밤잠을 못 이루어 가며 싸워야 하는 것일까.

어느 날 한 사람이 날 찾아왔다. 소설을 배우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낸 그는 뜻밖에도 육순을 훨씬 넘긴 할머니였다. 그 나이에 새삼 소설을 배우겠다고 나선 사연이 궁금했다. 한마디로 기구한 인생이었다. 갓난아이 때 어머니를 잃고 계모 슬하에 자랐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하였지만 술집작부에게 한눈이 팔린 남편은 그녀를 조금도 돌보지 않았다. 서른을 넘겨 남의 집 후처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의 삶 역시 순탄칠 못했다. 좋지 않은 일만 생기면 네가 재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허물을 뒤집어 씌우고 구박을 했다. 그러다 잘못 얻어맞아 안구가 터지게 되었고 남편은 형사입건되었다. 그랬더니 너 때문에 전과자가 되었다고 또다시 주먹질을 해 대었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생을 떠듬떠듬 회고한 할머니는 한 뭉치의 낡은 대학노트를 나에게 보여줬다. 틈틈이 써온 일기장이었다. 지금 어느 양로원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그분은 자신의 생을 소설로 쓰고 싶어했다. 이것을 글로 남겨놓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토록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삼 글쓰기를 소원하던 그 할머니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인생의 한을 소설쓰기로서 정화해 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은 흔히 듣는다. 견딜 수 없는 절실함,아픔,절망,고통을 하나하나 풀어 문자로 표현해 내는 과정을 통하여 그들은 삶의 의미를 찾고 의욕을 부추기려 한다. 문학은 비현실의 일일지도 모른다. 소설가란 돈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이 황금만능의 사회에서 국외자 혹은 무능력자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삶을 구원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소설이란 종교와 같은 것이며 소설을 쓴다는 일은 그만큼 성스러운 일일 것이다.

작가 황석영은 이렇게 말하였다.

'글 쓰는 일은 직업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낚시,등산,독서처럼 취미란에나 적을 수 있는 일거리였다. 하지만 이렇게 '글 쓰는 일'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삶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느낌 때문에 도중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약력: 86년 부산문화방송 신인문학상,계간 '한국소설' 신인상 등단. '고백''전갈자리''폭우''마지막 하이킹' 등 중단편을 발표. 중편소설집 '회색강' 출간,인터넷 이노블타운에 장편 '아무 것도 아닌 모든 것' 연재중. 현 반년간 소설전문지 '소설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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