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여는 세상] 물의 과학
/ 정문성 울산대 물리학과 교수

지구 표면적의 4분의 3을 덮고 인체의 3분의 2를 구성하는 물은 평범한 듯하지만 사실 매우 경이로운 물질이다. 지구의 자연환경에서 액체,고체,기체의 세 가지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은 오직 물뿐이다. 물은 액체에서 고체로 될 때 보통물질과 다르게 부피가 늘어나고,온도변화가 가장 어려우며,가장 많은 종류의 물질을 녹이며,가는 관을 통하면 저절로 위로 올라간다.
물분자는 두 개의 수소원자와 한 개의 산소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의 특징은 수소원자의 전자가 산소원자에 끌리어 수소원자핵이 노출되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즉,노출된 양의 전하인 수소원자핵은 크기가 원자보다도 훨씬 작아서 물분자들 사이에 쉽게 끼어 들어가 물분자들을 전기적으로 묶는 수소결합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대체로 기체는 가벼울수록 더 낮은 온도에서 액화되는 규칙을 따르는데,물은 예외적이다. 상온에서 대기의 주성분인 질소와 산소 분자는 기체이고,그보다 더 무거운 이산화탄소도 기체이다. 물분자는 이들보다 훨씬 가벼우므로 규칙에 의하면 상온에서는 수증기의 형태만이 가능한데 액체로도 존재한다. 수소결합에 의한 응집력으로 상온이라도 기체분자들이 모이면 쉽게 액체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 물질은 액체에서 고체로 변하면 부피가 감소하는데 물은 고체인 얼음으로 변하면 오히려 부피가 증가한다. 물이 얼면 수소결합들이 100%가 되고 결합기둥이 네 방향으로 똑바로 선 구조를 만들어,액체보다 빈 공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얼음이 녹으면 부분적으로 결합기둥이 눕혀지고 무너져서 빈 공간이 메워지므로,액체가 되면서 밀도가 높아지며 부피가 감소한다. 그러나 액체인 경우에도 수소결합은 여전히 많아서 유일한 물의 성질을 가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분자들의 열운동이 활발하여 부피가 늘어난다. 물도 융점인 섭씨 0도에서 온도가 올라가면 열운동에 의하여 부피증가의 효과가 커진다.
그러나 온도가 올라갈수록 수소결합이 깨어져서 부피감소의 효과도 함께 커진다. 온도증가에 따른 부피변화는 두 효과의 경쟁에 의해서 결정되는데,실제로 섭씨 4도 이하에서는 수소결합이 깨어지는 효과가 더 크고,섭씨 4도 이상이면 열운동 효과가 더 크다. 그래서 물은 섭씨 4도에서 밀도가 가장 높다.
얼음은 물보다 10분의 1 정도 가볍다. 그래서 연못이나 바다에서 물이 얼기 시작하면 얼음은 표면 위로 뜬다. 어는 과정이 지속되면 표면의 얼음은 점점 두꺼워지고,그럴수록 부도체인 얼음층은 바깥 추위를 더 잘 막아주어 내부를 보호한다.
만일 보통의 물질처럼 얼음이 물보다 더 무겁다면 밑바닥부터 얼음이 쌓여 모두 얼게 되므로 생명은 살아남지 못하였을 듯하다.
물은 물질들 중에서 같은 양의 열을 흡수하면 온도가 가장 조금 올라가고,또 열을 방출하면 온도가 가장 조금 내린다. 수소결합 때문에 열용량이 가장 커서 온도변화가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밤낮의 온도 차이는 작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또한 물은 자동차 등 열을 많이 내는 엔진을 식히는 바람직한 냉각수이다.
수소결합에 의한 효과는 물의 양에 따라 반대로도 나타난다. 물의 양이 적으면 수소결합에 의한 접착력으로 물은 두 종이를 붙인다.
반대로 물이 많으면 물은 종이분자들 사이의 결합을 분리시키고 자기가 달라붙어 종이분자들을 서로 떨어지게 한다. 이와 같이 물은 다른 분자와의 부착력으로 훌륭한 용매가 되므로 이물질을 씻어내는 세척제이기도 하다.
물은 무동력 수송을 하는 모세관현상을 나타낸다. 모세관 현상은 유리컵의 물에 화장지를 담그면 물이 화장지를 따라 위로 올라가는 현상이다. 흙 속에서 물의 순환,식물줄기를 통한 물의 순환,혈관을 통한 물의 순환 등도 모두 모세관현상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생명체에 필요한 영양분이 물에 녹아들어 모세관현상으로 저절로 운반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외에도 물의 많은 기능이 구명되고 있다. 특히,물의 정화는 인체는 물론 자연생태계에도 필수임은 분명해 보인다. 탈레스의 말처럼 물은 만물의 근원으로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