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발굴 '1938년 서울 기록영화' 전문가 시사회
'현존 최초 컬러물 확실' 사본 입수해 복원 추진
최근 발굴된 '1938년 서울 컬러 기록영화'(본보 6월 10일자 20면 보도) 의 DVD 시사회가 지난 5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관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서 재일 스웨덴 외교관 T H 위스트랜드가 촬영한 2분50초 길이의 이 무성 기록영화는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컬러 영상으로 확인됐다. 영상자료원은 이에 따라 원본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 사우스이스트필름비디오아카이브로부터 사본 필름 입수 및 복원의 절차를 밟기로 했다.
시사회에는 서울학연구소 전우용 수석연구위원,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이용관 교수,한국영상자료원 이효인 원장 등 전문가 1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역사,영화사적 측면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근대 이전의 삶을 보는 듯=영상기록으로서의 특징은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으로 조선 전통의 생활상,낙후된 모습을 주로 찍었다는 점이다.
광복 전 조선총독부나 외국 선교사가 찍은 흑백 영화들에서는 서양식 건축물,양복 입은 남자 등이 등장하지만,이 필름에서는 창경궁,광화문,경회루 등 조선 사적지와 함께 소달구지,아이 업은 여인 등 토속적인 장면들이 담겨 근대 이전의 삶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전우용 위원은 '양복,자동차가 배제되고 서민적인 모습만 찍혔다는 점에서 시대 대표성은 없지만 서울역사,복식사,건축사,풍속 연구에 있어서는 매 컷이 자료가치를 갖는다'면서 '특히 1930년대 청계천 이북 종로 남쪽,무교동 등이 중점적으로 찍힌 것 같은데 주변 약재상 등을 조사하면 실제 위치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1930년대 중반 중학천 복개 이후의 모습,건물 벽돌의 크기·두께에서부터 마고자 등 한복 양식에 이르기까지 컬러로 기록이 남아있어 미시사 자료로 활용 가치가 높다는 의견이다.
한편 영화 후반 1분 분량은 어촌 가옥의 모습이나 후지산을 닮은 설산,동력선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한국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모아져 한국 분량은 총 2분50초로 축소됐다.
△'현존 한국 최초 컬러물' 확인=1938년 16㎜ 코닥크롬 컬러 리버설 필름으로 촬영된 이 무성영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컬러 필름으로 인정되었다.
흑백 유리 필름에 컬러를 입힌 컬러 정지사진도 드물었던 1910~30년대에는 '당연히 흑백 필름이 주로 사용되었고,컬러 동영상은 이 시기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게 이용관 교수의 주장. 이효인 원장 역시 같은 견해를 보였다.
이에 덧붙여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김미현 연구원은 '1938년도에 제작됐다면 1935년 컬러 필름 발명 이후 아주 빠르게 도입한 편이어서,그 중간에 다른 영화가 제작됐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이라고 밝혔다. 이전까지는 1948년 미 502부대에서 16㎜ 리버설 필름으로 만든 군 홍보영화 '희망의 마을'이 한국을 찍은 최초 컬러 영상물로 추정돼 왔다.
△남은 과제=사료적 가치가 인정됨에 따라 영상자료원은 영국 사우스이스트필름비디오아카이브로부터 사본 필름 입수 및 복원의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현재 보유 중인 1910~40년대 영화 10여편 중 대부분이 해외에서 사본 필름을 사들인 것이어서 무리없는 절차로 보여진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이 영화가 첩보활동의 부산물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제기돼 검증이 요구되고 있다. 중일전쟁 중인 1938년 한국,중국을,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인 1939년 동남아 4개국을 방문했다는 점,고가의 컬러 필름·카메라를 개인이 소유했다는 점 등은 단순한 '관광'만으로 보기엔 석연찮다는 것. 전우용 위원은 '일본이 러시아를 칠 것인가,미국을 칠 것인가 고민하던 시기에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스웨덴의 대사가 일본·아시아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펼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임깁실기자 mar@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