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원 기자의 바른말 광] 고바위? 고바우? 고바이?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오랜만에 금정산에 올랐다. 만덕 석불사 앞 산중턱 전망대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쉬고 있는데, 3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부부가 올라왔다. 역시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들 가운데 부인이 이랬다.

"그래도 이쪽 길이 좀 더 올라오기 쉽네. 약간 고바위이기는 하지만…."

새소리와 솔바람소리 들리는 산속에서, 그것도 젊은 사람한테서 들은 깜짝 놀랄 만한 말이었다. 흔히 경사나 비탈길을 '고바위'라고 한다. 아마 '고(高)+바위'쯤으로 말뜻을 알고들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바위에 주차했다가 차가 밀리는 바람에 혼났다'거나 '고바윗길만 없으면 달리기는 어렵지 않다'처럼 쓴다.

그러나 '고바위'는, 써선 안 되는 말이다. 그러면 '고바우'? 이것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고바이'가 가장 비슷한 정도. 하지만, '고바이' 역시 쓰지 말아야 한다. '코우바이(勾配·こうばい)'라는 일본말의 찌꺼기이기 때문. 상황에 따라 '기울기, 비탈, 물매, 오르막' 가운데서 골라 쓰면 될 일이다.

이렇게 산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정도로, 우리말 속에는 아직도 일본말 찌꺼기가 적지 않다. 젊은 층도 많이 쓰는 그런 말 중에서도 자동차와 관련한 말이 유난히 많다.

우선 '기아'. '이 말이 왜?' 싶겠지만 제대로 된 표기는 '기어'다. 일본말에는 '어' 발음이 없으니 '기어'라고 하지 못하고 '기아'로 부르는 것. '마후라' 역시 '머플러'나 '소음기'로 써야 한다. 예전엔 덤프트럭을 '단뿌 도라꾸', '배터리(축전지)'를 '밧떼리', '펑크'를 '빵꾸', '모터'는 '모다, 모타'라고도 했는데, 이 말들 역시 외래어 쓰기에 제약이 많은 일본말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표기이다.

약어를 즐겨 쓰고 음운을 생략하는 방식 또한 일본어식 표기의 특징. 이를테면 '라디에이터(방열기)'는 '라지에타', '쇼크 업소버(완충기)'는 '쇼바', '브레이크(제동기)'는 '부레키'라 부른다.('액셀'은 하도 많이들 쓰는 통에 '액셀러레이터'와 함께 표준어 대열에 올랐다.)

게다가 반클러치 상태에서 액셀을 밟아 부릉거리는 경우에 '찐다(부풀린다)'는 뜻의 '후까시'라는 일본말을 응용해 쓰기도 한다. 써 봐야 별로 전문용어 같지도 않은 이런 말들, 이제는 좀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jinwoni@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