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야 놀자] 화폐단위 '원'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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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스페인 동전 모양이 기원

이 재 모 한국은행 부산본부 차장

현재 UN 회원국 기준으로 보면 전세계에는 192개국이 있다. EU처럼 한 종류의 화폐를 사용하는 국가들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많은 종류의 화폐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 수만큼의 화폐단위도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우리나라에도 화폐단위가 있다. '원'이라고 부른다. '원'이라는 화폐단위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중국에 들어온 스페인 은화
둥글게 생겨 은원으로 불러

근대 들어 환·원 번갈아 유통
1962년 긴급조치로 원 사용



중국은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기원전 259~219년)이 도량형을 정비하면서 만든 양(兩)-전(錢)-문(文)의 화폐단위를 아주 오랜 기간 사용했다. 16세기 후반, 스페인이 남미에서 은광을 발견한 덕에 스페인 은화가 무역을 통해 전세계로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중국도 비단, 차, 도자기 등을 수출하면서 스페인 은화를 손에 넣게 됐다. 중국사람들은 둥글게 생긴 스페인 은화를 은원(銀圓)이라고 불렀는데 이때부터 둥글다는 뜻의 원(圓)이 화폐이름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스페인 은화가 유입되기 훨씬 전부터 중국에서는 부유층이나 권력층을 중심으로 말발굽 모양으로 생긴 은(마제은(馬蹄銀) 또는 사이시(細絲)라고 불림)이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동전과 함께 화폐로 사용됐으며 단위는 위안(元·으뜸 원)이었다. 스페인 은화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은화의 유통도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위안(元)이 화폐단위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일본은 1871년 신화폐조례를 발표하면서 화폐단위로서 료(兩)를 폐지하고 엔(円·둥글 원)을 채택하였다. 이때 엔이라는 단위를 채택한 것은 '중국에서도 둥글다는 뜻의 원(圓)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마도 당시 중국사람들이 말하는 은원(銀圓)이 스페인의 은화를 말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양(兩)-전(錢)-문(文)의 화폐단위를 사용했는데 그 비율은 1량(兩)=10전(錢)=100푼(文)이었다. 그러다가 조선말 화폐개혁을 추진하며 환이라는 단위를 채택하려 하였는데 이는 둥글다는 뜻의 원(圓)과는 다른 의미였다.

어쨌든 한·중·일 3국이 모두 근대국가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화폐개혁 등을 통해 과거의 화폐단위가 사라지고 새로운 화폐단위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화폐제조기관은 1883년 7월에 설립된 경성전환국이었다. 이 때 처음으로 환이라는 화폐단위가 도입됐고 6종의 주화가 제조됐지만 궁핍한 국가재정과 근대화된 화폐에 대한 국민의 인식부족 등으로 화폐로서의 구실을 못하고 사라졌다. 사실 환이라는 것은 "고르게 잘 통한다"라는 뜻으로 중국의 오래된 화폐제작 법규에서 유래한 단어다. 고려사절요와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정약용의 경세유표 등 우리나라의 역사서 등에도 등장하던 단어이지만 정작 환이라는 단위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킨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한일합방이전에 원(圓), 환, Yen이 함께 표기된 일본 제일은행권을 조선에 처음으로 유통시켰다. 그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환과 원(圓)이 번갈아가며 화폐단위로 사용됐다.
이 재 모
한국은행 부산본부
차장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원'은 1962년 6월 화폐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고 환과 '원'의 교환비율을 10대1로 하는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하면서 처음 사용됐다. 그러나 '원'은 한자표기를 하지 않을 뿐, 원(圓)에서 유래한 것으로 서로 동일한 단어로 봐도 될 것 같다.

결국 우리나라의 화폐단위인 '원'은 둥근 모습의 외국동전을 보고 만들어진 단어가 기원이 됐으며 일본에 의해서 정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잘 반영하는 단어를 화폐단위로 사용하는 것이 더욱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라면 '원'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또한 '원'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을 우리의 돈에 지어줄 수 있다면 그것도 굳이 마다할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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